유해진 “그분들 삶 대변해도 되는지 고민했었다”…류준열 “나라 빼앗긴 심정 짐작조차 어려웠다”
8월 7일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마침 일본의 무역제재에 따라 격화된 한일관계, 갈수록 심화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 ‘노 재팬’ 움직임 속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항일의 메시지로 이야기를 꽉 채운 영화는 광복절인 15일을 기점으로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지난해 여름 강원도와 제주도 일대를 누비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완성한 유해진과 류준열을 영화 개봉을 앞두고 차례로 만났다. 유해진은 “과연 내가 맡아도 되는 작품인지 양심의 측면에서 고민했다”고 돌이켰고, 류준열은 “나라를 빼앗긴 심정이 도대체 어떤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쇼박스
유해진이 최근 몇 년간 출연한 영화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겪으면서도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의 삶을 연기해왔다. 올해 2월 주연한 ‘말모이’에서는 일제강점기 한국어 사전을 만들었고, 앞서 ‘택시운전사’에선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평범한 택시운전사였다. 6월 항쟁 소재의 영화 ‘1987’도 마찬가지다. 유해진은 “전부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그 역할과 작품을 과연 내가 맡아도 되는지, 고민이 컸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그런 작품들만 선택한 건 아니지만 돌아보니 드러나지 않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어요. 민초의 삶을 그리는 영화는 의미가 크죠. 그만큼 부담도 큽니다. 제가 그 분들의 대변인이 될 수 있을까? 정말 대신해서 보일 수 있나? 그런 고민이 생겨요. 양심적인 고민이죠. 혹여 그분들께 해가 되지 않을까 싶고요.”
이번 ‘봉오동 전투’에 출연하기까지도 유해진은 같은 고민을 겪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조심스러웠다”는 그는 “그동안 그려지지 않은, 희생된 독립군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했다. 수많은 분의 희생이 나를 영화로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영화에서 독립군 무리의 리더다. “어제 농사짓던 농부가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고 외치는 그의 대사가 당시 독립군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실제 봉오동은 특수한 산악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그대로 재연하기 위해 제작진은 촬영을 대부분 고지대에서 진행했다. 변변한 무기도 없고, 말에 올라타 달릴 수도 없는 지형에서 유해진은 쉼 없이 산을 오르고 달리면서 일본군과의 전투 액션을 완성한다.
상당한 체력전이 요구되는 촬영이었지만 거뜬했다. 매일 3~4시간씩 등산하거나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이다. 출연 배우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오히려 20대 배우들까지 가뿐히 따돌릴 정도로 탁월한 체력을 자랑했다.
“연기자로 막 데뷔했을 때 허준호 선배가 ‘40대가 되면 외롭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지금은 느끼죠. 지금 제 나이가, 여느 회사라면 딱 부장님 나이잖아요. 부장님들 외로우니까 다들 잘 챙겨드려야 해요. 하하! 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촬영장에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그것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요.”
사진제공 = 쇼박스
류준열은 ‘봉오동 전투’ 출연을 결정한 뒤 뜻밖의 고민에 빠졌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익히고 배우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 식민지의 아픔과 나라를 빼앗긴 고통을 직접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막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고, 나라를 되찾은 감격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만으론 짐작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누이를, 빼앗긴 심정으로 접근했어요. 그동안 출연작 가운데 청춘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청춘의 고민’을 대변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이번엔 달라요. 일제강점기의 벅차고 슬픈 시대의 감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류준열은 앞서 주연한 영화 ‘뺑반’ ‘독전’ 등을 통해 액션연기를 소화했지만 이번엔 고지대와 절벽을 맨몸으로 달리며 총격전까지 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다. 그는 “절벽 추격전을 찍을 땐 두꺼운 군복 바지를 몇 겹씩 입었는데도 찢어지기 일쑤였다”고 했지만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날 것’의 액션연기였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그 분들(독립군) 덕분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또 나라를 되찾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촬영 준비하면서 자료도 찾아보려 했지만 기록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만큼 우리가 잊고 살아서인지도 모르겠어요.”
‘봉오동 전투’는 항일 메시지로 무장한 영화다. 일제가 우리에게 행한 잔혹한 폭력이 영화 곳곳에 담겼다. 30대 스타 배우의 입장에서 출연 제안을 받고 혹시 망설이지 않았을까. 일본에서의 활동, 일본 팬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따랐을지도 모른다. 류준열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한 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봉오동전투’ 홍보 스틸 컷
“하지만 그 분들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은 입장이기 때문에 (일본 반응을) 걱정할 수는 없었어요. 다른 부수적인 상황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요. 대학 때 연기 공부하면서 ‘배우는 시대를 반영하는 얼굴’이라고 배웠어요. 제 생각도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류준열은 ‘봉오동 전투’가 기획될 때는 최근 벌어지는 한일 관계 악화나 ‘노 재팬’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돌이켰다.
“이슈와 맞물릴 수밖에 없지만 ‘봉오동 전투’는 기록의 영화, 희생에 대한 기록으로 봐주길 바라는 게 제 마음입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