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라소 실책 없는 명품 경기 선보여… “한국 야구의 미래는 밝다”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의 도전이 멈췄다. 한국은 퀴라소에 패하며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사진=이동섭 기자
[일요신문] 충청도 소년들로 구성된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의 도전이 끝났다. 리틀 대표팀은 퀴라소와의 패자부활전 최종 라운드에서 3대 5로 석패하며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8월 23일 오전 4시 미국 펜실베니아주 윌리암스포트 라마드 스타디움에선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패자부활전) 최종라운드가 진행됐다. 한국과 퀴라소는 인터내셔널 토너먼트 챔피언십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놓고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펼쳤다.
한국과 퀴라소는 18일 볼룬티어 야구장에서 ‘인터내셔널 토너먼트 2라운드’에서 맞붙은 경험이 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양수호-나진원 원투펀치의 무실점 투구를 앞세워 4대 0 완승을 거둔 바 있다. 한국은 퀴라소를 상대로 또 한 번의 승리를 다짐했고, 퀴라소는 설욕을 노렸다.
중요한 일전,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선발투수로 ‘좌완 에이스’ 나진원을 낙점했다. 퀴라소는 고무줄 같은 팔로 강력한 속구를 던지는 우완투수 주드릭 프로파를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선취점을 뽑은 건 한국이었다. 1회 초 투아웃 상황. 한국 3번 타자 박민욱은 프로파와의 풀카운트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냈다. 그리고 타석엔 한국의 4번 타자 양수호가 등장했다. 양수호는 퀴라소전 이전까지 3경기에서 9타수 무안타 타격 부진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양수호가 결정적인 상황 마수걸이 안타를 때려냈다. 양수호는 프로파의 속구를 시원하게 밀어쳤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양수호의 타구는 우익수 오른쪽으로 떨어졌다. 페어볼이었다. 박민욱은 전력질주해 홈을 파고들었고, 양수호는 3루까지 안착했다. 0의 균형은 생각보다 일찍 깨졌다. 한국은 1대 0으로 1회 초를 마쳤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에서 2연승을 거두며, 살아 돌아온 퀴라소의 기세는 놀라웠다. 퀴라소는 1회부터 나진원을 적극 공략했다. 퀴라소 1번 타자 프로파, 3번 타자 컬리 마르타, 4번 타자 네이선 카스티요는 3안타를 합작하며, 2아웃 만루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타석엔 퀴라소 1루수 클레이 윙클라가 등장했다. 윙클라는 원볼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방망이를 힘차게 돌렸다. 윙클라 방망이에 맞은 타구는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라마드 스타디움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만루 홈런이었다. 경기는 순식간에 1대 4로 뒤집혔다.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됐을 당시, 더그아웃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한국 리틀야구 소년들. 사진=이동섭 기자
2회 초 한국의 공격, 퀴라소 선발투수 프로파는 위력적인 투구로 한국 타선을 잠재웠다. 그러던 오전 4시 40분 경기가 갑작스레 중단됐다. 라마드 스타디움 현지에 뇌우 예보가 있었던 까닭이다.
대회 주최 측은 경기 중단을 결정했고, 그라운드엔 방수포가 깔렸다. 예보는 적중했다. 오전 5시부터 라마드 스타디움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단됐던 경기는 1시간 50분 만인 오전 6시 30분 재개됐다.
한국 입장에선 경기가 좋지 않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숨을 고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긍정적인 장면이 곧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 선발투수 나진원은 1시간 50분의 휴식 이후 긴장감을 떨쳐버린 듯 보였다. 나진원은 2회 말을 삼자범퇴로 간단히 끝냈다.
그리고 한국 중심타선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3회 초 원아웃 상황 한국은 박민욱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며, 기회를 맞이했다. 1회 마수걸이 안타를 때려낸 양수호는 절묘한 번트안타로 살아나갔다. 5번 타자 정기범 역시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엄청난 구위를 자랑하는 퀴라소 선발투수 프로파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아웃 만루상황. 임현진은 침착하게 볼 4개를 골라내며,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 찬스는 이어졌다. 이시영 타석에서 프로파가 폭투를 하면서, 한국은 1점을 더 추가했다. 스코어 3대 4. 한국은 퀴라소를 턱 밑까지 추격한 채 3회 초 공격을 마무리했다.
퀴라소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3회 초 1아웃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 등장한 퀴라소 3번 타자 컬리 마르타는 나진원의 공을 정확한 타이밍에 때려냈다. 타구 소리에서부터 힘이 느껴졌다. 마르타의 타구는 정중앙 담장을 가뿐히 넘어갔다. 솔로 홈런이었다. 스코어는 3대 5가 됐다.
한국전 승리에 큰 환호성을 지른 퀴라소 중계진. 사진=이동섭 기자
마르타의 쐐기포는 이날 경기의 마지막 점수였다. 양팀은 더 이상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3대 5 퀴라소의 승리로 끝났다. 석패였다. 결과와 상관없이 양팀은 상당히 수준높은 경기를 펼쳤다. 한국과 퀴라소는 경기 내내 실책 없이 멋진 승부를 펼쳤다.
이로써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의 위대한 도전 역시 멈추게 됐다. 2014년 이후 5년 만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챔피언 왕좌를 노리던 리틀 대표팀은 패자부활전에서 기세를 올린 퀴라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야구 소년들이 선보인 짜임새 있는 플레이는 많은 현지 팬들의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리틀 대표팀 선수들은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꿈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다.
나진원, 양수호, 현빈, 손원규, 박준서, 이시영, 박민욱, 정기범, 임현진, 임성주, 민경준, 유준호, 차정헌. 이젠 ‘2019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함께한 13명의 태극전사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언젠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지 모르는 까닭이다.
미국 윌리암스포트=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