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내역·사업구조 파악 힘들어…편법 증여에 활용될 소지 높아
최종구 금융위워장이 22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사모펀드를 활용한 편법 증여 사례가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없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투기자본을 견제하고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사모펀드가 도입됐다. 사모펀드에 자산가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장기투자를 유도해 국내 기업의 M&A를 활성화할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해왔다.
도입 취지와 달리 사모펀드가 소위 쩐주와 정재계 인사들의 묻지마 투자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크다. 우선 사모펀드 투자는 ‘사인’간의 거래에 해당한다. 비공개로 49인 이하의 투자자를 모집해 재산을 운용한다. 운용주체가 경영권을 행사하지만 외부에서는 투자자 구성이나 경영현황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실력자와 자산가가 돈을 넣고 굴리는 과정에서 고급 정보나 인맥을 활용한 투자 결정이 가능하다. 고위험인 대신 고수익 투자처인 셈이다.
사모펀드를 악용하는 방법으로는 위법적인 투자처에 돈을 넣고 불리는 것과 인맥을 활용해 정부 인허가 사업에 투자하고 짬짜미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있다. 2018년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대부업체와 협약을 맺고 개인을 대상으로 대출 영업을 해온 사례를 적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는 정부 인허가 사업에 사모펀드가 투자하고 그 뒤에서 정관계 인사 등 특정 세력이 이권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편법을 쓰는 사모펀드의 수익내역이나 사업구조를 당국조차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가 일부 거액 투자자들의 편법 증여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펀드의 환매수수료와 절세비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투자자가 중도에 펀드를 해지할 경우 이익의 일부를 벌금 식으로 떼고 나머지만 고객에게 돌려준다. 이를 환매수수료라고 한다. 이렇게 뗀 벌금은 운용사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펀드에서 계속 투자되고 결국 남아있는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공모펀드의 경우 환매수수료가 많게는 이익의 70%에 달한다. 사모펀드의 경우 운용사와 투자자 간 자율적 합의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부모와 2인 자녀가 투자자인 사모펀드를 가정해 보자. 펀드 투자 후 수익이 나면 투자했던 부모가 이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지급하고 펀드를 중도 해지한다. 부모가 낸 환매수수료는 규정에 따라 남아있는 자녀에게 넘어간다. 형식적으로 자녀가 받는 돈은 펀드 수익금이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잔존 투자자인 자녀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부모로부터 거액을 증여받을 수 있다. 또 국내 주식형펀드는 주식 매매차익이 비과세이기 때문에 이중의 절세효과가 있다.
금융당국과 투자업계에서는 신탁형태의 사모펀드가 편법 증여에 활용될 소지가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소수의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만 이뤄질 수 있어 그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또 사모펀드 투자자 정보가 폐쇄적이라 과세당국이 정확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사모펀드를 부의 이전 도구로 활용하기 좋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각자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어떤 용도로 활용되는지 알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법의 맹점이 있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악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면 투자업계가 위축될 수 있어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