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 잡혀 가는 원정 도박·환치기 혐의…경찰 ‘자료’로 승부 본다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입건된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피의자 신분으로 29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8월 28일과 29일, 각각 승리와 양 전 대표를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조사 12시간 만에 귀가한 승리는 미국 원정 도박 혐의에 대해 대체로 인정했다. 반면,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8시 30분까지 23시간 가량 조사가 진행된 양 전 대표는 성매매 알선과 원정 도박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4월 양 전 대표와 승리의 상습 해외 원정 도박과 ‘환치기’ 첩보를 입수하고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해 왔다. 이 첩보에는 미국 네바다주 카지노협회가 제공한 자료가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경찰은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도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양 전 대표의 환치기 혐의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자금 흐름을 확인하기도 했다.
자료에 따르면 승리와 양 전 대표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호텔 카지노 VIP룸을 드나들며 각각 4차례 약 20억 원, 11차례 약 10억 원 상당을 도박에 쓴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현지에서 달러화를 빌려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뒤 국내에서 원화로 갚는 무등록 외국환거래 ‘환치기’를 한 혐의도 포착됐다.
해외 원정 도박 의혹이 불거진 그룹 빅뱅의 전 멤버인 승리(본명 이승현)가 28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중랑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이틀간의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이 자료가 사용됐다. 이를 통해 승리는 해외 원정 도박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경찰이 도박 자금의 출처를 추궁하자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치기’ 부분에 대해선 부인한 셈이다.
반면 양 전 대표는 그를 둘러싼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6월 성매매 알선 혐의로 비공개 경찰 조사를 받았던 때와 입장이 그대로였다. 그의 경찰 조사가 승리에 비해 2배 가까이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양 전 대표가 2000년대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를 드나들며 수십억 원대의 도박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미국 당국과의 공조 하에 카지노 출입 기록과 판돈의 액수 등 양 전 대표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도 확보한 상태다. 양 전 대표가 혐의를 시인하든, 그렇지 않든 ‘증거 자료’로 승부수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양 전 대표의 도박 자금 출처다. 경찰은 양 전 대표가 YG엔터테인먼트의 회삿돈을 도박에 이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YG 미국 법인의 자금도 포함됐다. 경찰은 최근 미국 재무부에 YG 미국 법인 금융계좌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양 전 대표의 횡령 혐의가 발견될 경우에는 별건으로 입건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사진=이종현 기자
미국 법인 자금 외에 국내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양 전 대표의 ‘쌈짓돈’에도 경찰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입·출국 시에 달러와 원화를 포함한 1만 달러(약 1200만 원) 이상의 통화를 반출하기 위해서는 자진 신고가 이뤄져야 하는데, 양 전 대표가 카지노에서 쓴 돈은 그의 출입국 기록과 비교한다 하더라도 한도를 훌쩍 넘어선다는 것이다. 앞서 경찰이 가닥을 잡고 있는 직접적인 ‘환치기’ 외에, YG 소속 가수나 직원 등 양 전 대표의 주변인들이 법망을 피해 출입국을 함께 하며 자금을 조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양 전 대표의 성접대 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경찰의 또 다른 숙제다. 그는 지난 2014년 7~9월 말레이시아의 재력가 조 로우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유흥업소 여성들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이 여성들은 접대를 명목으로 조 로우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거나, 조 로우 또는 YG 측으로부터 명품 가방 등 금품을 대가로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의혹과 관련한 본격적인 경찰 조사가 시작된 시점은 지난 6월이다. 당시 참고인 신분으로 비공개 조사를 받았던 양 전 대표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식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지난 8월 29일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 전 대표의 전격 부인과는 별개로 경찰은 양 전 대표에게 성접대 여성을 소개한 일명 ‘정마담’과 성접대에 동원됐던 유흥업소 종사자로부터 성매매 알선 관련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와 더불어 양 전 대표의 2014년 당시 지출 내역을 파악해 성접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도 밝혔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 7월 양 전 대표에 성매매 알선 혐의를 적용, 피의자로 정식 입건한 바 있다.
양 전 대표의 성접대 혐의는 9월로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양 전 대표와 승리의 추가 소환이나 신병 처리 방향 등 향후 수사 계획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기소될 경우 양 측 모두 동종 전과가 없어 사회적 여론에 비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상도 따른다. 그러나 경찰이 현재 정조준하고 있는 양 전 대표의 YG 법인 자금 횡령 혐의가 구체화 돼 추가될 경우, 실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