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반사이익 볼 것” 전망 솔솔…일각선 조국 카드 여전히 유효 반응도
‘조국 나비효과’가 여권 차기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청문회 정국 이전까지만 해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유력한 여권 대권주자였다. 잘생긴 외모에 높은 인지도,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8월 9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로비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준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를 꺼내든 표면적인 이유는 ‘사법 개혁’이지만 정치권에선 조 후보자를 차기 대권주자로 키우기 위한 스펙 쌓아주기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조 후보자는 후보 지명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소주 세 병이 나란히 놓인 사진을 올렸다. 상표를 순서대로 읽으면 ‘대선’ ‘진로’ ‘좋은데이’였다. 이 일로 조 후보자 대권 도전설에 더 힘이 실렸다.
조국 대권 플랜은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균열이 생겼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조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검찰이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에 나섰고, 일부 대학에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올랐다.
조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대권 도전은커녕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 후보자의 중도탈락 경우 여권 차기 구도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첫 번째 가능성은 새로운 친문(친문재인) 주자의 등장이다. 과거 더불어민주당에 몸 담았다가 탈당한 한 인사는 “내가 아는 친노(친노무현)는 권력을 나누지 않는 집단”이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대안이 없으니 친문이 비문(비문재인) 주자와 손잡고 잘해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친문 주자를 세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비밀이 해제된 주한미국대사관 기밀문서에 따르면 2007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2명은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을 만나 “이번 대선에서 (자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노무현 지지자들은 (무소속) 문국현 후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친문 진영은 자기 진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당 후보라도 돕지 않을 만큼 폐쇄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이번 사태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게 될 인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목했다. 이 인사는 “유시민 이사장은 친노로 분류되면서 영남권이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반대로 친문 진영이 비문 대권주자와 연대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 당직자 출신인 한 인사는 “친문이 아무리 폐쇄성이 강한 조직이라고 해도 정권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비문과 협력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 거다. 노무현 때 정권 뺏기고 어떻게 됐나. 굉장히 비극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선이 임박해서는 (대선승리 가능성이 높은) 비문 주자를 적극적으로 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문 주자들 사이가 크게 나쁘지 않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비문 주자가 대권을 잡는다고 해도 전직 대통령 예우에 신경을 쓸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차기 주자로 꼭 친문 인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러 주자를 인위적으로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자 대립관계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손을 잡기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아직 대선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문 대통령이 당분간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며 관망할 것”이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9룡’ 전략을 쓸 수도 있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이회창, 김덕룡, 최형우, 이수성 등 이른바 9룡을 내세워 후계 경쟁을 유도했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을 유도해 레임덕을 방지하는 전략이다.
비록 안희정, 김경수, 이재명, 조국까지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들이 줄줄이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야권보다는 여권 대권주자 숫자가 더 많다.
여권이 조국 대권 후보 카드를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평론가인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조국은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라며 “청문회 과정에서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조 후보자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보는 분들이 많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 청문회를 무사히 넘기고 장관에 임명되면 다시 기회가 있다고 본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재기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설사 비판 여론에 밀려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해 살아 돌아온다면 대권 주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의 민주당 당직자 출신 인사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이 인사는 “여론이 이렇게 악화됐는데 청와대가 조 후보자를 감싸고 도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 청와대가 ‘조국 대권후보 카드’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이유가 있을까. 청문회만 잘 넘기면 전화위복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거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이런 청와대 시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인사는 “당 지지율보다 대통령 지지율이 항상 10%가량 높게 나온다. 친문 진영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당내 경선이나 본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다. 친문 진영은 차기 대권 주자를 자기들이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조 후보자를 무리하게 방어하다가는 예상보다 빠르게 레임덕이 올 수 있다. 친문 진영이 차기 구도를 주도적으로 그리지 못하고, 차기 대선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