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강호동·신동엽·김구라·전현무 ‘TV 켜면 나와’…최근엔 이상민·서장훈·장성규 ‘쏠림현상’
현재 한국 예능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두 문장이다. 각 방송사들의 적자폭이 커지며 10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 편수를 줄이고 예능 편성을 확대하는 추세다.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오판이다. 여전히 한국 예능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보는 얼굴이 또 보인다. 결국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다는 측면에서 ‘회전문 예능’이라 불리는 이유다.
# 메인 MC는 아무나 하나?
국민 MC라 불리며 양강 체제를 구축했던 유재석, 강호동을 비롯해 신동엽, 김구라, 전현무 등 단독 MC로서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방송인은 손에 꼽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상파 출연을 고집하던 유재석, 강호동은 상대적으로 출연 편수가 적은 편이었으나 최근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여기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다작을 해왔던 신동엽, 김구라, 전현무 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어림잡아 20여 개. 언제 어느 시간에 채널을 돌려도 그들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JTBC ‘아는 형님’ 홈페이지
왜 제작진은 그들을 고집할까? 이에 현장 관계자들은 “메인 MC는 아무나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인지도가 높다고, 방송 경력이 많다고 메인 MC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뛰어난 방송 센스 외에도 주변에서 그들을 메인 MC로 인정하고,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그릇이 돼야 메인 MC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유재석, 강호동 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면 패널 구성뿐만 아니라 게스트 섭외도 쉽다. 평소 예능 출연이 뜸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홍보차 예능 나들이에 나서는 배우들이 유재석 혹은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한다는 것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들이 일종의 흥행보증수표이자 ‘알아서 즐겁게 해주는’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메인 MC는 해당 프로그램의 얼굴이다. 단순히 진행 솜씨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인지도에 따라 프로그램의 마케팅 및 제작협찬 규모도 달라진다”며 “무엇보다 그들의 맨파워를 바탕으로 쉽게 섭외하기 어려운 이들까지 프로그램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들의 높은 출연료에 진행비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 SBS ‘미운우리 새끼’ 홈페이지
이 관계자는 “그들에게 프로그램 출연 개수를 관리하라고 바라는 것은 무리”라며 “그들은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제작진은 유명하고 지명도 높은 인물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려 하다 보니 같은 얼굴을 제목만 다른 프로그램에 갈아 끼우는 식의 회전문 예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OOO사단, 친분이 우선?
예능가에서는 ‘OOO사단’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돈다. 대표적으로 유재석 사단은 MBC ‘무한도전’과 SBS ‘런닝맨’ 등에서 호흡을 맞춘 하하, 박명수, 김종국 등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는 조세호, 양세형, 양세찬 등이 유재석의 곁을 자주 지킨다.
강호동 곁에도 그의 측근이 있다. KBS 2TV ‘1박2일’의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고 지금도 JTBC ‘아는 형님’, tvN ‘신서유기’ 등에 동반 출연하고 있는 이수근, 은지원을 비롯해 이승기, 송민호 등이 강호동 사단으로 분류된다.
물론 그들이 공식적으로 ‘사단’이라는 개념을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당대 가장 주목받고 재기발랄한 후배들을 발탁돼 활용하는 솜씨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사단이라 불리지 않지만 항상 함께 움직이려는 짝꿍도 있다. 송은이와 김숙, 이영자와 최화정, 이수근과 서장훈, 김성주와 안정환, 이진호와 이용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 일반적으로 더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 편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듯, 방송인들도 궁합이 맞는 이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설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MBC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캡쳐
최근 가수나 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잦다는 것도 회전문 예능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인지도는 높으나 예능 출연이 뜸했던 가수나 배우는 화제성 면에서 제작진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당장 높은 예능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그들 곁에 베테랑 예능인을 붙여줌으로써 자연스러운 예능의 흐름이 나오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의 활동은 본의 아니게 신인 예능인의 앞길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새 얼굴이 필요하다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해 타 프로그램의 작은 역할로 주목받은 이들을 기용하며 역할을 키워주는 것이 선순환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유명 가수나 배우가 메움으로써 실력은 갖췄어도 굳이 지명도 낮은 방송인을 쓸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도 처음부터 메인 MC였던 것은 아니라. 그들 역시 누군가의 보조 역할을 하며 성장해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이라며 “그런데 요즘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스타가 많아지며 신인 방송인들이 타고 올라올 사다리가 없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눈앞의 시청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매번 같은 얼굴이 모든 예능을 메우는 결과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