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 “정은순 선배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변연하 “정은순은 그야말로 ‘농구의 신’이었다”
여자농구 레전드이자 후배들로부터 ‘농구의 신’이라 불린 정은순.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인터뷰를 이어가던 정선민이 한국 여자농구의 또 다른 레전드인 정은순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여고 랭킹 1위란 타이틀을 안고 SKC(선경증권) 여자농구단에 입단했을 때 언론에서는 대선배인 은순 언니와 나를 라이벌 구도로 만들었다. 그래서 은순 언니가 있는 삼성생명과 SKC가 맞붙을 때는 매번 라이벌 매치로 회자되며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나야 어린 선수니까 그런 타이틀이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은순 언니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후 대표팀에서 언니를 처음 만났는데 언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훈련 때도 다소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셨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언니가 나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정은순과 정선민은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에서도 해후했다. 정선민으로서는 정은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하루는 정은순이 정선민을 방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때 언니가 처음으로 내게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주셨다. ‘선민아, 나 때문에 힘들었지?’하시면서. 내가 왜 갑자기 그런 말씀 하시느냐고 묻자 언니가 마치 독백하듯이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가 최고였거든. 나를 능가할 만한 선수가 없다고 믿었는데 네가 나타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거야. 기자들 모두 너랑 나를 비교하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참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널 미워했었어.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나도 그동안 쌓인 게 있어서인지 언니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라. 그때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다.”
한국 여자농구 레전드 변연하와 정선민은 이야기 도중 ‘농구의 신’ 정은순을 떠올렸다. 사진=연합뉴스
정은순, 정선민이 뛰었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농구는 사상 최초의 4강 진출을 달성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이후 은순 언니가 은퇴하고 내가 대표팀 주전으로 자리 잡았을 때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다. 나는 은순 언니처럼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은순 언니가 내게 ‘너 정신 차려’라는 의미로 언니의 이야기를 해줬는지도 모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변연하는 삼성생명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정은순을 회상했다.
“당시 은순 언니는 ‘농구의 신’이었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넘사벽’ 그 자체였다. 하루는 은순 언니랑 사우나를 가면서 이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농구의 신’이나 다름없는 언니도 신경 쓰이는 후배가 있느냐고. 그때 언니가 조용히 이름을 말하시더라. ‘정선민’이라고.”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