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경영 아니냐” 의혹 제기…사측 “운영하지 않는 회사 청산 작업의 일환”
2017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와 호송차로 향하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연합뉴스
내년 1월 정 전 대표의 만기출소를 앞두고 최근 네이처리퍼블릭이 정 전 대표와 관련된 계열사에 대해 줄줄이 청산절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법인등기부 등에 따르면 정운호 전 대표는 지난 7월 말 네이처리퍼블릭 계열사인 세계프라임과 오성씨엔씨의 사내이사에 선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프라임은 유통업을, 오성씨엔씨는 화장품 제조·도소매업을 담당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국내 계열사 현재 10개 중 정운호 전 대표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곳은 앞서 2곳 외 세계프라임개발, 에스케이월드, 쿠지코스메틱, 네이처리퍼블릭온라인판매를 합해 6곳이다. 구속수감 중에도 네이처리퍼블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사내이사로 등재된 계열사 6곳 가운데 5곳은 현재 ‘1인 사내이사’ 체제다. 정 전 대표가 대표이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정 전 대표는 세계프라임개발의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다.
정 전 대표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직을 내려놨다. 회사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정운호 전 대표는 여전히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75.37%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 있으며 그의 부인 정숙진 씨가 네이처리퍼블릭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정운호 전 대표가 옥중경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 전 대표가 옥중에서 계열사 사내이사에 등재되자 내년 만기출소 직후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정 전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은 청산 수순을 밟기 위한 절차“라며 ”오성씨엔씨처럼 운영하지 않는 회사를 청산하려면 회사를 다시 살린 후 재해산해야 하므로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오성씨엔씨는 지난해 12월 해산하기로 결정했으나 지난 7월 26일 주주총회를 열고 이를 번복, 계속 운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날 정 전 대표는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청산절차를 밟기 위해 굳이 구속수감 중인 정운호 전 대표의 이름을 올려야 하느냐는 의문도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두 회사는 정 전 대표가 지분을 가진 관계사로 2015년부터 기능을 못하고 있어 청산하려고 했지만 당시 정운호 전 대표 관련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어서 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청산절차를 밟지 말라고 했고 이후 대법 판결 후 법원에서 청산해도 좋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정운호 전 대표 회사다보니 금전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생길 수 있어 정 전 대표 명의로 청산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봐 사내이사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점포 전경. 연합뉴스
그 이전에 금고형 이상 징역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정 전 대표가 등기이사로 계속 있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의 취업제한 조항을 보면,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경제사범 가운데 5억 원 이상으로 금액이 많아 ‘가중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자의 경우 유죄를 확정받으면 ‘유죄 판결된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에 따르면 정 전 대표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돈을 횡령·배임한 만큼 관련 계열사 이사직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정 전 대표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나머지 4개 법인이 기능을 하고 있다면 사내이사 등재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들 법인도 대부분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며 “법적 검토를 이미 거쳤을 것이며 법원에서도 정 전 대표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프라임과 오성씨엔씨뿐 아니라 정운호 전 대표가 사내이사로 올라 있는 다른 4개 계열사도 청산절차를 밟을 예정이라는 의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침체된 화장품 시장, 정운호 온다고 살아날까 정운호 전 대표는 과거 화장품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서울 남대문에서 보따리장수로 시작한 정 전 대표는 28세던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3년 중저가 화장품 매장 ‘더페이스샵’을 오픈, 공격적인 매장 확장 정책으로 2년 만에 미샤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다. 이후 정 전 대표는 더페이스샵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4년여 만인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100%를 사들이면서 화장품업계로 돌아왔다.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로 중국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고속성장을 하던 네이처리퍼블릭은 기업공개(IPO)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 및 법조계 로비 등 혐의로 구속되며 주춤했다. 실제 네이처리퍼블릭은 올해 상반기 매출 983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6억 원에서 올해 25억 원 손실로 적자전환했다. 당기순손실 역시 전년 상반기 5억 원에서 올해 45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일각에서는 정 전 대표가 실제 출소해 경영일선에 복귀한다면 브랜드 개편이나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부진은 현 경영진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시장의 부진과 국내 경기침체 탓이 크며 다른 화장품업체들의 실적도 좋지 않다”며 “정 전 대표의 경영 복귀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크게 반등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