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민사 판결서 불법 체포 등 인정 됐음에도 형사 소송서 불기소
경찰관의 불법 체포에 대해 징계를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지난 2014년 10월 7일 영등포역 일대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유종화 씨의 이야기다. 이날 영등포역 앞을 지나던 유종화 씨는 노숙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른 남성에게 추행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스스로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를 말리고 나섰다.
하의를 내리고 쭈그려 앉아있던 여성에게선 술 냄새가 풍겼다. 그는 근처 찜질방이라도 가라며 현금 1만원을 쥐어줬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남성들이 ‘왜 참견 하냐’며 시비를 걸어왔다. 오히려 유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유 씨를 가해자로 몰았다. 돈을 쥐고 자리를 떠났던 여성도 돌아와서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경찰은 유 씨의 손가락을 강하게 젖히며 제압했고 팔을 꺾어 경찰서로 연행했다.
그에겐 공무집행방해라는 죄가 씌워졌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CCTV를 확보해달란 요구가 들어지지 않아 직접 녹화 본을 찾아 나섰다. 그를 딱하게 여긴 인근 주민이 힌트를 줬고 사건의 전말이 담긴 화면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찰에선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화면이었다. 결국 검찰은 “공무집행방해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리했다.
TV 뉴스에서도 공개된 유 씨가 체포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유 씨는 처벌을 면한 것으로 일을 마무리 할 수 없었다.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는 마음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인권위의 결론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피진정인(가해 경찰관)을 징계할 것을 권고한다”이었다. 이들은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진정인(유 씨)이 손가락과 팔뚝에 부상을 입었다. 이에 체포 행위는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씨는 이를 토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유 씨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와 경찰관이 유 씨에게 약 553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건 발생 이후 4년이 걸렸다. 판결 이후 TV 뉴스에서도 사건이 다뤄졌다. 유 씨의 억울함이 풀리는 듯 했다. TV 뉴스에선 경찰관이 ‘항소 계획은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예고와 다르게 흘러갔다. 유 씨는 “재판에서 판사가 경찰관에게 ‘빠져나갈 수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반성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관이 당시 언론에 밝힌 것과 다르게 항소를 진행했다. 유 씨도 CCTV 화면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증거인멸’로 인정해달라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배상금이 낮아졌지만 체포 행위가 위법한 것이었다는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 피의자가 다수의 죄명에 혐의가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에 유 씨는 “인권위와 민사소송에서 내려진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판단”이라면서 “시민단체와 함께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시민단체 ‘무죄네트워크’의 이춘발 운영위원장은 “‘투캅스’ 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과도한 공권력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공무집행방해죄가 불기소되고 인권위에서 제동이 걸렸으며 민사 재판에서 결정이 난 사건에서 어떻게 아직까지 경찰관에 대한 처벌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평했다.
유 씨는 지난 5년여 간 이 같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이유로 “더 이상 나처럼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피의자 등에 대한 경찰의 독직폭행이나 가혹행위에 대해 바로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처럼 민사에서 인정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고 들었다”며 “내가 좋은 케이스가 돼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끝까지 갈 생각이다”라는 그에게 경찰관을 용서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그에게선 “과격하게 말하자면 지금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그땐 용서를 해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