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엔 “다음 생에 그러면 또 죽인다”…모텔 주인에겐 “이렇게 만들어 죄송하다”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가 18일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검정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 17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포승줄에 묵인 채 경찰과 함께 구로구 한 모텔로 들어온 장대호는 모텔 주인을 보고 사과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함께 현장에 있던 모텔 직원은 “장 씨는 이상하게도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 허름한 모텔인데, 사건 이후 더 장사가 안 될 걸 우려해 한 말로 보였다”고 말했다. 장 씨는 해당 모텔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비교적 한 곳에서 오래 일한 편이다. 보통 3~4개월 일하고 관두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장 씨가 오랜 기간 축적한 피해의식에 기인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장 씨는 자수하기 전 한 방송사에 제보를 하는 행동을 보였다. 자신의 범행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이 억울하다고 자수하기 전 언론사에 제보했다. 방송사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길 바랐을 것”이라며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쌓여왔던 사회를 향한 불만과 피해의식에 기인한 반사회적 범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따르면 장 씨는 20여 년간 노래방, 안마방, 모텔 등 임시직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장 씨는 그동안 사회를 향한 불만을 쌓아왔다고 보인다.
전 동료 A 씨는 “장 씨는 항상 진상 손님이 오면 맞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며 “처음 일하러 왔을 때 하는 말이 ‘여기서 일하기 편할 거다. 여기 조선족도 많고 진상들 많은데 내가 다 싸워서 돌려보냈다. 이젠 그런 손님 안 올 거다. 너도 누가 쌍욕하면 쌍욕해라’였다”고 전했다.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가 18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 출석해 피해자를 향해 “다음 생에 또 그러면 또 죽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를 두둔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장 씨가 사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나이에 맞는 단어를 쓸 줄 알고 무식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면서도 “당황스러웠던 점은 장 씨는 PC방 살인사건 피해자가 100% 먼저 잘못했다고 나름의 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걸 적나라하게 입 밖으로 꺼내곤 했다”고 말했다.
장대호는 지난 8일 마스터 키로 피해자가 자고 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둔기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12일 새벽 시체를 토막 낸 뒤 비닐봉지에 담았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도림천을 따라 한강으로 가서 시체를 유기했다.
장 씨가 일하던 모텔에선 24시간 교대로 1명씩 근무한다. 손님이 적어 방을 청소하는 중국인 직원은 상주하지 않고 저녁에 와서 장 씨가 지정해주는 방만 치우는 방식으로 일한다. 장 씨가 시체를 방 안에 사흘 동안 유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장 씨 말곤 아무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장 씨는 좁혀오는 수사망이 두려워서 자수한 게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표출하고자 자수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 씨와 함께 일한 B 씨는 “경찰이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 기록이 이 근방이라며 모텔에 두 번 방문했는데, 전혀 장 씨를 수사선상에 올려둔 것 같지 않았다. 자꾸 남자 두 명이 함께 묵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며 “장 씨가 직접 경찰에 CCTV가 낡아서 보관이 안 됐다고 말하니까 별 의심 없이 나갔다. 그걸 보고 장 씨도 불안한 기미를 보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주인 입장에선 아주 성실하고 말 잘 듣는 직원이었다. 장 씨는 세면대를 직접 고치기도 하고 돈 계산도 철저하게 했다. 나름의 주인의식이 있었다”며 “심지어 자수하기 직전에 갑자기 자기 전화번호도 주고, 물품 매입 방법도 알려줬다. 인수인계였던 것 같다. 자수한 건 자신의 정당하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시신을 훼손하는 등 잔혹한 범죄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신을 훼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행처럼 돼 가고 있다. 피해자 가족이 갖는 박탈감은 상당하다. 시신 훼손할 경우 인명경시살해 사건으로 보고 양형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