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사업계획 미이행·지분 매각 우려…“투자자에 휘둘리면 어차피 생존 못해”
항공면허 취득 직후 대표 변경 논란에 휩싸였던 에어프레미아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변경면허를 취득하면서, 비전문가인 투자자들이 항공 전문가를 앞세워 면허를 취득한 뒤 ‘입맛’에 맞는 대표로 바꿔 항공사를 장악하는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합뉴스
국토부는 지난 16일 에어프레미아의 대표 변경에 따른 항공운송사업 변경면허 신청을 받아들여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교통연구원과 법률·회계 전문가, 현장 관계자 등 전문 의견을 수십 차례 듣고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외국 임원 등 결격사유가 없었고 자본금과 항공기 도입 계획 등 요건을 충족했으며 부정행위도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에어프레미아는 지난 3월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받은 직후 투자자와 대표가 갈등을 벌였고, 두 달 뒤인 5월 기존 김종철 대표에서 심주엽·김세영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이어 6월 국토부에 대표 변경에 따른 변경면허 발급을 신청했다. 항공사 대표 변경은 사업계획 이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관련법상 재심사 대상이다.
국토부의 변경면허 승인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투기자본이 신생 LCC들의 경영권을 흔드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어프레미아 역시 투자자들이 전문경력을 보유한 대표를 내세워 면허를 발급받고 태도를 돌변해 투자자 측 사람을 앉혔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7월에는 한 임원이 청와대에 ‘투기꾼이 항공사를 장악했다’는 내용의 투서도 보냈다. 이해관계에 의해 투자자 측 사람이 항공사를 운영할 경우, 대주주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해 정상적 경영이 어렵고 결국 항공 안전과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 경영진 교체 후 기존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않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먹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신규 LCC에서도 투자자들이 입맛에 맞게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는 명분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에어로케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최대주주 에이티넘파트너스가 면허를 신청했던 강병호 대표를 해임하고 대주주 측 인사로 교체하려고 시도했던 것. 하지만 에어로케이 이사회는 지난 10일 강 대표의 연임을 승인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표가 연임했지만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항공운항증명(AOC)부터 진행하려고 일시 봉합한 것으로 안다”며 “에어프레미아가 변경면허를 발급받은 이상 에어로케이도 추후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토부가 항공안전과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표 변경에 대해 별다른 기준 없이 허술하게 승인해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토부 입장에선 대표 교체를 막을 법적 근거도 없고 면허를 허가해준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바로 취소하는 것도 부담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공적 영역에서도 자본가들 입맛에 맞게 경영이 이뤄진다는 건 문제다. 정부가 막을 수 있었음에도 시장논리로 판단한 것은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면허 발급 직후 대표를 바꾼 에어프레미아에 변경면허를 승인해준 국토부 판단에 대해, 항공안전과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표 변경에 대해 별다른 기준 없이 허술하게 승인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논란이 불거지자 국토부는 면허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대응했다. 에어프레미아가 신규면허 취득 당시에 부과 받은 1년 내 AOC 신청, 2년 내 취항 조건을 지키지 못하거나, 자본잠식 50% 이상 지속 등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면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추가 투자계획 이행과 일정 기간 지분 5% 이상 보유한 주주의 지분 매각 상황 등도 보고받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에어프레미아에 이어 다른 LCC들도 같은 사태를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면허 유지 조건은 사업 계획 이행으로, 불가피한 사유 없이 계획이 지연되면 조건을 지키는 데 영향을 미치기에 대표를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변경할 경우 재심사를 통해 엄격히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변경면허 발급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투자자들이 항공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문 이력보다 이해관계에 맞는 대표를 앉힐 경우, 어차피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사가 투자자들에게 휘둘리면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어질 것이기에 변경면허 발급 자체는 업계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도 투자자 지원으로 신생 항공사들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항공업이 커가는 과정이다. 주주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항공업은 장기 안목·투자와 전문경력을 가진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위기 벗어난 LCC들, 취항 위해 남은 과제는? 대표 변경으로 면허 취소 위기에 놓인 에어프레미아가 변경면허를 발급받으면서 본격 취항 준비에 들어간다. 에어프레미아도 기존 대표의 연임으로 경영권 다툼이 일단락되면서 플라이강원을 시작으로 신규 저비용항공사(LCC) 세 곳이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나선다. 플라이강원은 항공운항증명(AOC) 절차를 10월 초 마무리하고 10월과 12월 각각 국내·국제선을 취항할 계획이라고 지난 17일 밝혔다. 기존 항공사들이 내국인을 해외로 보내는 아웃바운드 위주라면, 플라이강원은 외국인을 국내로 들여오는 인바운드 수요에 집중해 항공권과 관광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관광융합항공사(TCC)로 승부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청주공항 기반의 에어로케이도 9월 말 AOC를 신청해 내년 3월 취항할 계획을 잡고 있다. ULCC(초저비용항공사)를 목표로, 공항에서의 항공기 턴어라운드 시간 단축, 서비스 간소화 등 철저한 원가절감 전략을 강조했다. 인천공항을 거점으로 한 에어프레미아는 내년 1월 말 AOC를 신청해 9월 취항을 목표로 삼고 있다. LCC와 대형항공사(FSC) 장점을 융합한 하이브리드서비스캐리어(HSC) 형태로, 미국‧캐나다‧베트남 등 중장거리 9개 노선 취항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획이 순조롭게 흘러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선 심사 조건이 까다로운 AOC 절차를 거쳐야 한다. AOC는 전문인력 보유, 기자재 정비, 안전성 등 1500여 심사 조건을 통과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하자가 생겨 지연되면 불필요한 항공기 리스료와 인건비 부담 등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취항 후에도 운수권·슬롯(공항 이착륙 시간대)을 확보해야 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좋은 슬롯과 운수권 확보는 항공업 성패를 좌우하지만, 이미 기존 항공사들이 대부분 차지해 후발주자들이 따내기 쉽지 않은데다 저가 출혈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며 “길게는 5년까지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혁신해야 하며 원가절감 전략이나 취항 노선·서비스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규 항공사들이 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내년부터 거센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항공사는 FSC 2개, LCC 6개로 총 8개지만 신규 LCC 3개가 취항을 시작하면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이때 밀리는 항공사는 무너지거나 인수·합병되는 등 항공업계가 재편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허희영 교수는 “미국은 1980년대 항공 규제 완화로 많은 항공사들이 생겨났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강한 항공사만 살아남아 항공업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며 “우리나라 항공업계도 같은 시기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