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조커’ 비극 같은 세상에 희극의 종지부를 찍었다
영화 ‘조커’ 스틸컷
그 많고 많은 악인 가운데, 애초에 대중들의 공감이 형성될 틈도 없이 튕겨버리는 ‘괴짜 악인’이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다. 배트맨에게 기이할 만큼 집착하며 오로지 그의 유일한 호적수가 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악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일반인은 아마도 전무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반 대중들에게 조커는 그 비하인드에 구구절절한 이유가 붙는 ‘만들어진 악인’보다 ‘날 때부터 악인’의 이미지로 기억돼 왔다.
그리고 이 기억과 믿음을 배신하는 영화가 다음달 2일 개봉을 앞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다. 히스 레저나 잭 니콜슨과 같은 ‘선배 조커’를 기억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그들의 이미지를 빨리 잊을 수록 좋다. 자기파괴적이면서도 파격적인, 그리고 이제까지의 조커를 모두 뒤집어엎는 그 ‘기원’의 등장을 거부감 없이 맞이하고 싶다면 말이다.
영화 ‘조커’는 코미디언을 꿈꾸는 가난하고 우울한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이 조커가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웃음이 조절되지 않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서는 고담시의 빈민구역 아파트에서 살며 광대놀음으로 하루살이 벌이를 이어가는 몸이다. 누구에게도 친절한 한 마디를 들어 보지 못하고, 애정 어린 포옹도 받지 못하는 그는 마치 세상에 불필요한 덤받이처럼 여겨진다.
영화 ‘조커’ 스틸컷
담담하기에 더욱 폭력적인 이 영화의 결론은 “조커는 왜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나”라는, 배트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질문이 아닌 다른 주장을 풀어 나간다. “당신이라도 조커가 됐을 거다. 이따위 인생이었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악인으로서 사이코패스적 면모가 두드러졌던 히스 레저(다크나이트 트릴로지)나 잭 니콜슨(배트맨, 1989)의 조커와는 달리, 연쇄된 불행에서 비롯된 분노를 축적해 온 소시민이 개화시킨 미치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조커로의 변신에 다른 누구보다 더 큰 당위성이 주어진다. 극중 대중들은 그의 분노에 공감하며, 이 쓰레기 같은 세상을 뒤엎어버릴 ‘성스러운 악인’의 탄생을 축복한다. 사회에서 철저히 내몰려 있던 한 남자가 대중들의 공감과 관심을 양분 삼아 희대의 악인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일반적인 악인이라면 몰라도 조커의 기원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하기에는 다소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배트맨의 영원한 아치에너미인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탄생이 아주 약간의 친절과 애정, 그리고 이해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돼 버리는 탓이다.
어디에서도 환대 받지 못했고 친절한 한 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게 방아쇠였던 악인은, 너무나도 거대한 공감 버튼을 관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이것을 눌러 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종잡을 수 없이 혼돈했기에 매력적이었던 조커의 ‘조커스러운’ 면모가 깎여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6일 서울 용산구 CGV 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라이브 컨퍼런스에 참석한 토드 필립스 감독(왼쪽)과 호아킨 피닉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그러나 그럼에도 호아킨 피닉스가 재해석한 새로운 조커는 매력적이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라이브 컨퍼런스에 참석한 호아킨 피닉스는 “독특하고 특별한 조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기존 영화를 많이 참고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만의 조커를 설명했다. 오리지널 스토리에는, 오리지널 조커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조용하고 우울한 아서 플렉과 우아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조커를 온전히 한 사람의 힘으로 표현해 낸 그의 연기는 단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이미 아서는 조커로, 조커는 아서로 돌아왔거나, 돌아간 뒤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서 플렉에게 내재돼 있는 광기가 방아쇠와 함께 폭발하는 씬은 식상하더라도 전율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모든 감정을 폭발시킨 영화는 마침내 열린 결말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라이브 컨퍼런스를 통해 “확정적인 결말보다는 관객들에게 각자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라며 “관객들이 ‘조커’를 통해 스스로 해석하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애초에 조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놨었다. 그렇다면 영화 ‘조커’ 역시 그의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모를 과거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의 아쉬움은 희극과 비극 속 명멸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122분, 15세 관람가. 10월 2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