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이 회사가 이상하다. 동원그룹의 핵심기업인 동원증권은 지난 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동원증권은 최근 증권회사 중 처음으로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출발한 동원금융지주의 간판 회사다. 동원증권은 지난해 5백4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동원증권의 대규모 적자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 김남구 동원금융지주회사 사장(현 동원증권 부사장)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점. 김 회장은 동원그룹을 금융부문과 비금융부문으로 나눠 금융부문은 동원금융지주회사의 1대주주(37.42%)인 김남구 사장에게 넘겨주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
이런 대규모 적자는 동원그룹의 2세 경영자와 관계가 있다. 지난 2000년 6월 동원증권은 KTB네트워크에 대해 12%의 주식을 매집했다. 당시 KTB도 주식매집에 들어가며 두 회사의 경쟁 양상으로까지 번졌고 동원은 결국 “장기 투자”라고 발표하고 주식 매집에서 물러났다.
동원이 주식 매집을 하면서 KTB 주가는 1만3천∼1만5천원대까지 뛰었지만 이후 KTB 주가는 5천원대 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원은 5백3억원을 투자해 KTB 주식 7백34만 주를 사들였지만 최근 KTB 주가 기준으로는 시가평가액이 1백4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올해 동원증권의 적자 반전 이유는 아니다. 동원증권의 2002회계연도 적자반전의 가장 큰 ‘공신’은 하나은행 주식이다.
상품 운용 차원에서 지난 2월 하나은행 주식 1천45만 주를 주당 평균 1만1천3백78원에 사들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SK글로벌 사태가 터지면서 1백57억원의 손실만 본 것. 하나은행이 SK글로벌 사태에 물리면서 주가가 맥을 못추자 그 불똥이 동원증권으로 튄 것이다.
사실 동원증권은 지난해 8월엔 하나은행 주식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동원은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 발표 직전에 하나은행 주식을 매집해 차익을 올렸던 것. 김재철 회장이 하나은행 사외이사여서 동원증권의 하나은행 주식 매집이 ‘내부자 거래’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동원에선 당시 “하나은행의 주가가 크게 하락해 주요주주(당시 동원증권은 하나은행 주식 4% 보유)로서 하나은행 주식을 추가 매입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무역협회 회장 등 경제계 주요인사이자 하나은행 사외이사였던 김 회장으로선 고작 77만 주에 스타일만 구긴 셈.
이런 따가운 시선을 불식시킬 셈이었던지 동원증권은 올 초 하나은행에 대한 대규모 주식 매입에 나섰다가 더 큰 적자를 떠안은 것이다. 동원증권쪽에서도 이번 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은 하나은행 주식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동원증권이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하나은행이 SK글로벌 사태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됐다는 것. 하나은행 주식의 경우 상품유가증권으로 분류돼 유가증권 평가손이 당기순이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
반면 이들은 ‘장기 보유’중인 KTB 주식의 경우 투자유가증권 항목이라 자본 조정 항목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기자본에 마이너스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손익계산서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이번 대규모 적자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원에선 아직도 KTB 주식 보유의 목적이나 처분 시기에 대해서는 뚜렷이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동원에선 “적대적 인수합병 의도가 없다”고 공표한 만큼 인수 합병은 물건너 갔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재계에선 KTB 주식매집건을 김남구 사장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고 있는 분위기다. 2세 경영자로서 경영권 승계 작업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김 사장으로선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동원에선 지난해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합병되기 전 서울은행 인수전에 나섰다가 헛물만 켰던 적도 있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면서 벤처캐피털이나 은행 인수 등 금융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고 있지 못한 것.
일단 금융회사 인수작업이 계속 실패한 동원그룹은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내부부터 구조조정을 해놨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도 동원증권은 은행이나 보험사 인수설이 등장하면 한쪽 대상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사령탑을 맡은 김남구 사장이 과거 90년대 중후반 김정태(현 국민은행장) 동원증권 사장 시절의 동원증권 전성기 시절을 재현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