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명 옷 벗으며 ‘공급’ 과잉…검사장 출신은 양극화 심화
#두 달 사이 대형로펌 일제히 ‘전관 세팅’ 끝
정수봉 전 광주지검 차장검사, 권순철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서영민 전 대구지검 차장검사(이상 사법연수원 25기), 박광배 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 김태권 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상 29기), 이선봉 전 군산지청장(27기) 등등.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직후인 8월 초 이뤄진 인사에서 60명이 넘는 검사가 일제히 사의를 표했다. 동기 사이에서 인정받은 선두주자들도 대거 포함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한웅재 전 경주지청장(사법연수원 28기)까지 옷을 벗고 나올 정도. ‘인사에서 밀리거나, 회의감을 느낀 검사’의 무더기 사표 행렬이었다.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시장 논리는 전관 변호사 시장에도 작용했다. 갑자기 쏟아진 전관들에 대형 로펌들은 화색하면서도 평판을 신중하게 따져가며 부족한 라인업을 채우는데 집중했다. 두 달여 사이 대형 로펌에 갈 수 없는 검사장급 이상 전관 변호사들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리를 찾았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직후 검사들이 대거 옷을 벗고 변호사 업계로 뛰어들며, 전관 변호사 몸값이 낮아졌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입구. 사진=고성준 기자
1등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번에 다섯 명을 채용했다. 김석재 전 서울고등검찰청 형사부장과 차맹기 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장(이상 24기), 전형근 전 인천지검 1차장(25기), 김태권 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29기), 최종무 전 안동지청장(30기)이 그 주인공들로, 이 가운데 마약수사에 능통한 김태권 전 부장검사를 제외하고는 기획통에 가까운 라인업이었다.
4대 로펌에 속하는 나머지 로펌들은 한두 명 정도만 채용하는 데 그쳤다. 광장은 박장우 전 안양지청장(24기)과 특수통 박광배 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29기)을, 태평양은 기수 중 에이스로 평가받았던 기획통 정수봉 전 광주지검 차장검사(25기)를, 세종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파견 경력이 있는 금융통 신호철 전 고양지청 차장검사(26기)를 영입했다.
되레 나머지 10대 로펌들이 공격적인 영입으로 확장에 나섰다. 법무법인 바른은 송길대 전 수원지검 형사3부장, 이상진 전 부산지검 공안부장(이상 30기)을, 동인은 김한수 전 전주지검 차장(24기), 안미영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김준연 전 의정부지검 차장(이상 25기), 전승수 전 전주지검 군산지청장(26기) 등 네 명을 영입했다. 지난해 이시원 검사(28기)와 대검찰청 범정1담당관 출신 이영상(29기) 검사를 영입했던 율촌은 올해 안범진 전 안산지청 차장(26기)을 충원했고, 로고스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지휘했던 권순철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25기)을 영입하며 형사팀을 보강했다.
모두가 대형 로펌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권순철 전 차장검사와 함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담당했던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31기)은 개업을 선택했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한웅재 전 경주지청장(28기)은 LG화학 법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 서초구 법원로 일대 서초동 법조타운. 사진=최준필 기자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평이 나온다. 전에는 ‘묻지마 전관’으로 채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면, 후배들의 평이 좋지 않은 검사들은 대형 로펌들이 채용을 꺼려했다는 것. 그보다는 부족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나 검찰 수사 대응 때 ‘진짜 부탁’을 할 수 있는 평판 좋은 전관들에게 러브콜이 집중됐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몸값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2~3년 전에 비해 20~30% 떨어졌다는 게 공공연히 도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까지 부장, 차장검사 출신들은 세후 3억~4억 원의 연봉을 보장받았다면, 올해는 몇몇 러브콜이 쏟아진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2년 정도 연봉을 보장해주던 게 1년으로 줄어들었다.
앞서 언급된 한 간부급 출신 변호사는 “두세 곳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대부분 세전 3억 원 수준으로 제안했다. 다른 로펌에 간 동기 얘기도 비슷하더라”며 “예전과 달리 1년만 보장해주고 그 다음해부터는 일한 만큼 받는 구조로 계약했다”고 귀띔했다. 10대 로펌 파트너 변호사 역시 “3년 전 나올 때만 해도 2년 보장해 줬는데 요새는 1년만 보장해주더라”며 “연봉도 좀 줄어들었더라. 미리 나오길 잘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수년 전만 해도 세전 5억~6억 원을 받아, 실제로 3억 원 이상을 보장받았던 것이 20~30% 정도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올해 시장에 나온 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정말 채용 제안도 많지 않았고 로펌도 면접을 깐깐히 봐서 합격 소식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반가울 정도였다”며 “전관 변호사가 떼돈 번다는 건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워낙 많은 검사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있지만, 로펌들 수익이 악화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올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정도를 제외하면 굵직한 수사가 굴러가고 있지 않은 상황. 하지만 되레 10대 로펌에는 기존 검찰 출신들이 파트너급 변호사로 많이 포진해 있다 보니 ‘관료화됐다’는 평과 함께 손익도 나빠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검찰을 떠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로펌도 기업 등에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관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전관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또 최근에는 큰 사건이 없이 수익이 악화되다보니 영입에 더 신중했다. 미리 채용할 사람 한두 명만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그 외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사법연수원 10기 안팎의 ‘원로’급들이 여전히 파트너 변호사 등으로 남아있는 곳은 그만큼 수익 배분을 고민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4대 로펌 소속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많은 로펌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원로 변호사들을 정리하려 하지만 그게 마냥 쉬운 게 아니고 특히 김앤장같이 오래된 곳들의 경우 초반부터 함께한 몇몇 원로 변호사들의 입김이 여전히 상당하다고 들었다”며 “기존 변호사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보다는 영입을 안 하는 것을 선택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개업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해 앞서 개업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초반에 힘들긴 해도 특수통이나, 실제 검찰 수사 때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29~33기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끼고 함께 대응하는 실무용’으로 대형 로펌들이 찾기도 한다”며 “특수한 수사 영역에 장점이 있을 경우 개업을 하는 게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장급들 부익부 빈익빈…“전관 효과? 되레 마이너스”
그런 가운데 대형 로펌으로 갈 수 없는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의 상황은 양극화가 상당하다. 검찰에 남은 옛 동료들이 선후배로 고루 포진해 있는 사법연수원 25~32기와 달리 후배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 ‘평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평판이 안 좋으면 정말 사무실 유지에 급급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전관, 전관 하면서 영업을 하지만 지금은 선배라고 찾아가면 처음에만 차를 한잔 주지 그 다음부터는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은 똑같다”며 “사건이 언론에 나올 정도만 되면 조그마한 특혜를 받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 사진=박은숙 기자
후배들이 되레 ‘검사장급 변호사’들을 불편해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직에 있는 평검사는 “요새 검사장급 변호사들은 우리 같은 평검사 방에는 찾아오지도 않는다. 평검사일 때 지검장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저 예의를 갖춰 대하고 사건에서는 ‘그냥 남’이라고 생각하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건을 지휘하는 현직 차장검사 역시 “고검장급 전관 변호사라고 해서 특혜가 있을 거라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정말 친분이 있는, 인연이 깊은 분이 찾아오지 않는 한 도움이 안 된다. 만에 하나 현직에 있을 때 나에게 모질게 한 게 있는 상사가 전관이라고 찾아오면 되레 사건으로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전관 시장에서 후배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가 가장 중요한 직급이 ‘검사장’급으로, 잘못 선임하면 돈은 돈대로 들고 사건은 사건대로 망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윤석열 총장 취임 후 봉욱 전 대검 차장검사(19기), 김호철 전 대구고검장(20기), 박정식 전 서울고검장(20기), 한찬식 전 동부지검장(21기), 이금로 전 수원고검장(20기),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21기) 등 검사장급 이상이 대거 변호사 시장에 등장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후배 검사들을 너무 매몰차게 대해서 인간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했던 몇몇 검사장들은 벌써부터 사건이 없어 힘들어 한다는 얘기가 돈다”며 “인품이나 능력이 월등히 좋거나 정권과 가깝다고 소문난 분들은 기업들이 알아서 찾아가서 수십억 원도 가볍게 번다고 하지만 이제 그렇게 벌 수 있는 분도 많지 않다. 서초동에서 정말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