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메시지’에 빠른 대응, 하지만 정경심 교수 영장 청구는 불가피 ‘수사 결과로 보여준다’
검찰은 정 씨가 코링크PE의 투자나 운용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예전에 비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칙론적 답변이 늘고 있다. 이는 지난 주말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검찰을 압박한 뒤부터 달라진 분위기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주도하는 수사에서, 대검찰청의 존재감이 이렇게 컸던 사건은 대검 중수부 폐지 이래 처음인 것 같다”는 평도 나온다.
#37일 만에 소환된 조국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휴일이었던 지난 10월 3일 오전 9시쯤. 조국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가 서울중앙지검청사에 출석했다. 지난 8월 27일 전국 30여 곳에서 동시다발 압수수색과 함께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37일 만이다. 당초 검찰은 통상의 절차대로 정 교수를 공개 소환할 방침을 밝혀왔지만 청사 1층 출석 시 불상사 발생 우려 등의 이유로 비공개 소환 방식도 검토한다고 입장을 바꿨고, 실제 소환도 비공개로 이뤄졌다. 정 교수는 취재진 눈을 피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곧장 조사실로 향했다.
10월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경심 교수가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취재진들이 빈 포토라인만 지키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검찰은 정 교수를 상대로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 각종 의혹 관련 구체적 사실관계와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첫 번째 조사는 8시간 만에 끝났다. 변호인 입회하에 조사를 받던 정 교수가 건강 상태를 이유로 중단을 요청한 것. 검찰은 귀가토록 조치했고, 추후 다시 출석시켜 조사할 방침이다.
정 교수는 오후 5시~5시 10분 사이에 청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이 정 교수 귀가 사실도 이보다 10분여 가량 뒤에 언론에 공개하면서 정 교수는 언론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검찰 측은 “정 교수가 건강 상태를 이유로 조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해 귀가시켰다”는 원칙적 입장만 내놓았는데, 이 때문에 수사 관련 피의자 조서 날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추가 조사가 최소 두 차례 이상은 더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정경심 교수는 펀드부터 문서 위조, 웅동학원 이슈까지 굵직한 의혹들에 다 관여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관련 검찰이 앞서 확보한 진술이나 증거들과 상반된 얘기를 할 경우 추가 증거 확보를 통한 검찰의 확인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한 차례가 아니라, 수차례 더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사팀 관계자도 “두세 차례 더 소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분위기 바뀌어
당초 정 교수를 상대로 사모펀드 및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 각종 의혹 관련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했던 검찰.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필요성 강조’ 발언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잇따라 검찰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검찰 수사라인이 내놓는 메시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팀 관계자는 “조사를 모두 마치는 대로 진술 내용을 분석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는데, 검찰 내부에서는 “기각됐을 때 후폭풍이 더 커지게 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기 시작했다.
재경지역의 한 간부급 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서초동 검찰개혁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사권자로 지시한다’고 메시지를 낸 것은 검찰에게 ‘선을 지켜라’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지금 수사팀 내부에서는 분위기가 초반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아무래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속영장 청구는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검찰 내에서 지배적이다. 정 교수의 증거인멸 행위만으로도 청구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자산관리사인 한국투자증권 소속 김 아무개 씨를 통해 검찰 압수수색 전 동양대 연구실 PC를 반출한 점, 서울 방배동 자택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이를 숨긴 점은 전형적인 증거인멸교사 행위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어차피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게 명백하다면, 수사팀 입장에서는 가진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예, 아니오’만 먼저 답을 얻어낸 뒤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 뒤 검찰 혐의를 부인하며 다투고 있어 구속이 불가피함을 법원에 제시하는 게 가장 확실한 영장 발부 카드”라며 “검찰의 패를 다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마 추가 조사도 빨리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 교수의 ‘건강’은 변수다. 법조계에선 정 교수가 첫 조사 전부터, SNS 등을 통해 건강상의 이유를 계속 거론한 것에 대해 “일종의 수사 대비 전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 교수는 앞서 9월 23일 자택 압수수색 당시에도 건강 악화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판사는 “조국 장관 부인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잉 수사 ‘우려’를 표한 사람이 아니냐”며 “영장전담 판사 입장에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고 건강 상태와 혐의 및 구속 필요성을 더 신중하게 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검찰의 영장 청구 일정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앞서의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하루이틀 빨리 영장을 치는 것보다, 무조건 영장이 발부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영장이 기각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영장이 발부되어야 강제 수사 개시한 검찰의 명분이 승리하고, 청와대가 더 검찰을 흔들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검찰청 청사에서 이동 중인 윤석열 검찰총장. 고성준 기자
#‘수사 건드리지 마’ 스스로 개혁하며 강력 수사 의지 표명
그리고 서초동 촛불집회 이후 검찰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초동 촛불집회를 언급하며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것에 대해 윤석열 총장이 재빠르게 조치를 내놓은 것.
특히 검찰은 10월 4일 피의자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은 자료를 통해 “피의자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하고 이를 일선청이 모두 지시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수사 중인 사건 피의자나 참고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검찰에 소환하면서 구체적인 출석일자 등을 미리 알려 언론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한 기존 수사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10월 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 폐지 △검찰 영향력 확대와 권력기관화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검찰 밖 ‘외부기관 파견검사’ 전원 복귀 후 형사부와 공판부에 투입 △검사장 전용차량 이용 중단 조치 등이 담긴 개혁안도 내놓았다.
대검찰청은 보도자료에서 “대통령 말씀에 따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 수사 관행, 조직문화’ 등에 관해 국민과 검찰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인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검찰개혁에 응할 테니, 수사는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물론,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까지 모두 소환됐지만 이 부분은 사실 검찰 입장에서도 수사에 항상 도움이 됐던 것은 아니”라며 “팔다리를 내주더라도 조국 장관 일가 수사는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검찰 내부를 다독이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그는 “지금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하지만 언론전이나 청와대와의 갈등 구조로 불거지는 상황에서 대검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수사팀 입장에서 불안할 수 있다”며 “이런 개혁 방안을 빠르고 정확하게 내는 게 지휘 라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는 곧 일선 검사는 물론 해당 사건 수사팀에게 ‘너네는 수사 결과로만 보여주면 된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