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업계 ‘생소한 이름’이라는데...“코스닥 시장에서 ‘전주’ 두고 활동”
지난 9월 6일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규근 총경 사진. 최근 검찰에 체포된 정 옛 녹원씨엔아이 대표는 이 사진을 찍어준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버닝썬 게이트의 정점에는 ‘경찰총장’이 있었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믿을 만한 경찰총장만 있으면 수습된다는 승리와 유인석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화근이었다. 경찰총장으로 불리며 승리와 유인석의 뒷배역할을 했던 실세 경찰은 윤규근 총경이었다. 윤 총경은 청와대에 파견돼 백원우 민정비서관 밑에서 일했다. 파견 해제 후 윤 총경은 경찰청 인사를 총괄하는 핵심 자리로 영전했다.
정상훈 전 녹원씨엔아이 대표의 이름이 세간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버닝썬 사태 때다.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와 윤 총경을 연결해 준 ‘사업가’가 그였기 때문이다. 버닝썬 수사가 한창일 때도 정 씨의 이름이나 사업이 문제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7월 녹원씨엔아이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9월 정 씨가 구속되며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정상훈 전 대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국’이다. 바이오, 화장품, LED 등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했는데 사업 아이템은 모두 중국 수출에 호재가 있던 분야다. 정 씨 이름은 2010년 이후 코스닥 시장에 등장해 여러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전자 공시를 종합해 확인 가능한 것만 해도 폴리비전(현 바이온), 포티스, 큐브스, 웰스베이, 앤로메딕스, 에버브릿지투자 등이다.
정 씨의 신상은 베일에 가려 있다. 겨우 나이 정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전부다.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도 정 씨의 이름을 생소하게 여겼다. 소위 업계에서 유명한 ‘선수’는 아니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정 씨는 2015년을 전후해 코스닥 시장에서 광폭행보를 보였다. 정 씨가 2015년 녹원씨엔아이의 최대주주인 쏘마그로스투자조합(쏘마조합)에 돈을 태우고 경영권을 인수해 대표로 취임했다. 쏘마조합은 이 아무개 씨가 대표로 있는 민간투자조합. 쏘마조합은 2012년 녹원씨엔아이를 매입했다. 이후로도 이 대표와 정 씨는 여러 차례 손발을 맞춰왔다. 또 다른 상장사인 폴리비전에서도 이 대표와 정 씨는 임원을 맡았다.
이 대표는 여러 투자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마리투자조합, 더블유글로벌1호조합 등이다. 이 대표는 투자조합을 통해 유지인트, 중앙오션 등 코스닥 사에 대해서도 지배력을 갖고 있다. 투자조합을 통해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고 M&A(인수·합병)를 하는 방식이다. 목돈을 굴리는 이 대표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명문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인 이 대표는 민간 경제연구소를 거쳐 코스닥 시장에 등장했다.
이 대표와 정 씨뿐만 아니라 이들이 몸담았던 코스닥 업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내 및 사외이사를 맡아온 김 아무개 변호사와 김병혁 WFM(더블유에프엠) 대표다. 김 대표는 정 씨가 녹원씨엔아이 대표를 지내던 시기 사내이사를 맡았다. 또 최근 조국 펀드와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오른 우국환 전 WFM 대표가 물러나고 김 대표가 신임 대표를 맡고 있다.
검찰은 정 씨가 녹원씨엔아이 대표로 재임하던 당시 중국에 거점을 둔 ‘강소정현과기유한공사(강소정현)’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을 횡령했다고 의심한다. 녹원씨엔아이는 정 씨가 대표에 오른 이후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 의약품과 LED 조명이 사업목적에 신규로 추가된 것.
사건의 발단이었던 2015년 녹원씨엔아이는 재무구조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2015년 6월 녹원씨엔아이 주가가 돌연 급등했고, 늑장공시를 해 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타법인 출자에 대한 이슈가 있었지만 제때 이를 공시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녹원씨엔아이는 2015년 9월 강소정현의 지분 51%를 70억 5000만 원에 인수했다. 당시 녹원씨엔아이가 홍보한 자료에 따르면 강소정현은 LG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 출신 연구진들이 설립한 회사다. 김선균 강소정현 대표는 이후 녹원씨엔아이의 6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자신의 회사지분을 팔고 받은 돈으로 다시 녹원씨엔아이 주식을 사들인 셈이다. 통상적이지는 않은 경우다.
코스닥 시장에서 투자조합이 마구잡이식 M&A를 하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전문성이나 기업가치 제고보다 단기 차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투자조합이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하고, 대표와 이사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수합병이나 호재성 재료를 활용해 주가가 뜨면 조합을 해산하거나 지분을 매각한다. 투자조합이 돌연 투자금을 빼면 주가가 급락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정 씨 역시 코스닥 시장에서 활동하며 돈을 대주는 ‘전주’를 두고 큰돈을 벌었다는 의혹을 받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도 정 씨 이름을 못 들어 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지금까지 보도된 것과 수사 과정을 보면 M&A를 주도해온 것은 맞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