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거물들 선거 앞두고 재단·조합 반짝 설립…‘역할’ 끝나면 개점휴업 적잖아
대선주자와 정·재계 거물들은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정치색과 지향하는 가치를 대중과 소통하며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선거용 홍보효과를 거두기도 하고 고위층 인사들과 인맥을 다질 수도 있다. 고 성완종 경남그룹 명예회장이 조직하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몸담았던 충청포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조직 의혹을 받았던 포럼동서남북 등이 대표적이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영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위원장, 이광재 여시재원장(왼쪽부터). 여시재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민간 싱크탱크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여시재 홈페이지 캡처
최근 주목성이 높은 재단은 단연 노무현재단과 여시재다. 두 재단 모두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의 참여가 돋보인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에는 친노 인사와 노무현 정부의 내로라하는 실세들이 대거 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시민 이사장이 재단을 이끌고, 전해철 의원, 박남춘 의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비롯해 시민사회 인사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2009년 설립된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생각과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력한다. 주요 사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기념활동, 사료편찬 및 연구, 노무현시민학교 운영사업 등이다. 2018년 재단은 대통령기념사업에 34억 4674만 원, 대통령추모사업에 3억 2461만 원, 회원사업에 4억 6466만 원을 사용했다. 재단은 추모사업 외에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방패역할을 해왔다. 2017년 국민의당이 권양숙 여사의 친인척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재단이 권 여사의 입장을 대신해 표명했다.
여시재는 ‘시대와 함께하는 집’ ‘시대를 어깨에 짊어진다’는 뜻으로 2015년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다. 조 명예회장은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샘드뷰연구재단을 통해 여시재에 300억 원을 출연했다. 재단은 통일한국과 동북아시아의 미래 변화를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여시재를 둘러싼 시선은 재단의 정치적 행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시재 이사회만 봐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대희 전 대법관,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정·재계 최고 실세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원장을 맡고 있다.
외부에서는 여시재 구성원의 정치적 행보에 이목을 집중한다. 2016년 여시재가 주최한 행사에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남경필 전 경기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여시재 소속 인사의 면면을 보면 재단의 정치색은 불분명해 보인다. 보수와 진보 진영 인사가 두루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진영논리가 아닌 다른 유대감으로 이들이 뭉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극우 진영에서는 여시재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친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여시재가 동북아 관련 연구를 하고 있고, 친중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이 재단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에서다. 여시재는 2018년 △중국의 변화, 선진사회 8대 요소 연구에 5억 6420만 원 △신문명도시 관련 연구 16억 4287만 원 △시산학이론 정립 등에 22억 4042만 원을 사용했다.
눈에 띄는 점은 한 중소제조업체인 Y 사가 여시재에 비상장주식 5억 원어치를 무상으로 출연한 점이다. 이에 대해 Y 사 측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이라 회사로서는 출연 배경이나 과정을 알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치 영향력 높이려고? 당차게 시작해 슬그머니 문 닫나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협동조합 붐이 일었다.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대안으로 협동조합은 사회적 공감대를 이뤘다. 정부는 300억 원 이상 예산을 편성하고, 일자리 5만 개가 늘어날 것으로 협동조합에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협동조합 업계에 따르면 적지 않은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세운 협동조합도 개점휴업 상태인 경우가 많다. 정치인이 협동조합을 선거운동 ‘병참기지’나 세를 불리는 데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운영하던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은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울림 홈페이지 캡처
보수계 정치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013년 ‘울림’이라는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선거 때에만 권리를 행사하는 소극적 개념의 유권자를 넘어 능동적인 참여주체로서 각성한 시민의 집합체를 지향하는 조합이다. 울림의 주요 사업은 조합원 사이의 공감의 장인 토론카페 운영, 정치 리더십 교육 강좌, 정책뱅크 등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 활동이 거의 없다. 조합 주소지 전화번호도 바뀐 상태라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다. 전직 울림 관계자는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2013년 감옥에서 출소한 뒤 돌연 경북 봉화에 귀촌, 봉봉협동조합을 세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민을 돕기 위해 농업과 도시를 연결하는 협동조합을 구상한 것. 봉봉협동조합은 김장용 절임배추, 밤호박 등을 직거래해 판매했다. 정 전 의원의 팬 카페인 ‘미권스’ 등 지지기반도 큰 힘이 됐다. 정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는 기치로 봉봉협동조합은 경북 2위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조합은 올해 초 운영을 중단했다. 봉봉협동조합 관계자는 “운영이 힘들어서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 홈페이지 비용도 부담스러워서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며 “해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총회를 열어야 하고 과정이 복잡해 영업 중단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변양균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3년 ‘미들클래스 소사이어티 사회적협동조합(MCS)’을 설립했다. MCS는 한국형 중산층의 모델을 연구하고 중산층이 갖춰야 할 품위 있는 행동규범을 확산시키고, 또 취약계층을 위해 사회봉사활동, 문화 교양강좌 등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취지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변 전 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 김지완 BNK금융 회장이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MCS는 현재 홈페이지를 운영하지 않는다. 다만 지속적으로 공공기관 등과 협력해 문화예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 MCS는 경기문화재단의 컨설팅 사업, 문화예술위원회의 인생나눔교실 멘토 및 교육 위탁사업을 맡았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