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신고로 6남매 구출, 거액의 돈다발도 발견돼…가장, 특정 종교와 관련돼 “지구 종말 기다린 듯”
이번 사건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은둔 생활을 택한 배경이 무엇이냐에 있다. 한편에서는 이들이 특정 종교 신도들로서 지구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다. 또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지하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강제로 감금된 것인지 역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네덜란드의 농가 지하실에서 9년간 숨어지내던 일가족이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농가는 숲으로 둘러싸여 마치 고립된 섬과 같았다. 사진=EPA/연합뉴스
지난 10월 5일 밤, 덥수룩한 머리에 지저분한 수염을 기른 한 깡마른 청년이 루이너볼트에 있는 술집인 ‘카페 드 카스텔라인’에 들어섰다.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있던 청년은 어딘가 모르게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8일 후인 10월 13일, 다시 이 청년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역시 헝클어진 외모에 혼란스런 모습이긴 마찬가지였다. 주민이 40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 까닭에 손님 대부분을 알고 있던 술집 주인인 크리스 베스터빅은 처음 본 낯선 청년을 이상하게 여겼다.
베스터빅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에게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즉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청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맥주 다섯 잔을 들이켠 청년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그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은 집에서 도망쳤으며, 네 명의 동생들과 함께 외딴 농가의 지하실에 갇혀서 거의 10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5남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으며, 이제는 이 생활을 끝내고 싶다고도 말했다.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청년의 말에 베스터빅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청년은 신분을 밝혔다. 그의 이름은 얀 존 반 도르스텐, 나이는 25세였다. 그러면서 경찰에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의 컴퓨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묘한 말도 덧붙였다.
청년의 진술에 따라 농가를 급습한 경찰은 그곳에서 거실 찬장 뒤 비밀 계단을 발견했다. 그리고 계단 아래 지하실에서는 청년의 동생들로 보이는 5남매와 뇌졸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한쪽에서는 수만 유로의 현금 다발도 발견됐다.
큰아들이 술집(사진)에 나타나 구조 요청을 하면서 네덜란드 은둔 가족의 실체가 드러기 시작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이와 관련, 로저 드 흐로트 시장은 “조사 결과 이들은 당국에 이주신고가 되어있지 않았으며, 최대 9년 동안 외부와 접촉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장소는 난생 처음 봤다”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딴 농가는 어딘가 기이한 구석이 많았다. 현장을 목격한 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이 농가는 숲에 둘러싸여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았으며, 근처에 다른 농가가 없었기 때문에 고립된 섬과 같았다. 텃밭에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마당에는 염소 거위 양 개들이 그리고 둥근 연못에는 오리들이 있었다.
지하실 벽에 걸려있던 커다란 화이트보드에서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그림과 숫자들이 발견됐다. 계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숫자들은 일반적인 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경찰은 “오히려 기이한 주술처럼 보였다. 숫자들은 온통 검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면서 “이를테면 ‘원을 그리면서 걸어라’와 같은 주문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조된 후 보호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5남매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30분마다 모여서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검정 잉크로 휘갈겨 쓴 이 낙서들은 법의학팀에 의해 분석되고 있으며, 경찰은 이 증거물이 다섯 명의 자녀들이 그동안 강제 감금되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경찰의 추측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남매들은 여태껏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심지어 지구 종말론을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6남매들은 대부분 지하에서 생활했으며, 때때로 마당에 나오는 것은 허락됐지만 울타리 밖으로 외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때문에 마을에서 6남매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9년 전 농가를 임대해준 노부부 역시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노부부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농가를 요제프 브루너(58)라는 사람에게 임대했다. 그런데 농가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라고 말했다. “월세는 늘 정확한 날짜에 입금됐다”면서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 역시 브루너라는 사람이 혼자 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그는 농가에서 6km가량 떨어진 자신의 목공소 뒤편에 있는 카라반에 거주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농가를 방문하고 있었다. 뛰어난 목공 솜씨를 가진 평범한 목수였다. 그와 함께 일하던 토니라는 이름의 목수는 그를 가리켜 ‘나무를 다루는 마술사’라고 불렀다.
6남매의 아버지인 게리트 얀 반 도르스텐의 페이스북. 마당에서 직접 만든 운동기구인 로잉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토니는 브루너가 평소 사생활에 대해서는 지극히 말을 아꼈기에 7년 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저 외딴 농가에서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농가가 어디에 있는지, 또 누구와 함께 사는지도 몰랐다. 때로 의심스런 부분도 있긴 했다. 토니는 얼마 전 브루너가 자신의 자동차에 두루마리 화장지 두 묶음을 싣는 것을 보고는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 역시 평소 수상한 점이 많긴 했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집 주변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거나, 대문과 울타리 높이가 갈수록 높아진 점이 그랬다. 한 마을 주민은 “마당 가까이 가기만 하면 브루너가 나타나 멀리 쫓아내곤 했다. 그는 쌍안경으로 항상 주변을 감시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웃 주민은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몇몇 주민들은 불법으로 대마를 재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라고 말했다. 우체부 역시 “한 번도 그 집에 우편물을 배달한 적이 없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고 진술했다.
가족들이 은둔 생활을 시작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무엇보다 6남매의 아버지인 게리트 얀 반 도르스텐(67)과 그의 친구로 알려진 브루너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도르스텐과 브루너가 그의 아이들을 감금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며, 이들의 친분은 2008년 브루너가 네덜란드 하슬레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도르스텐의 이웃에 살던 브루너는 오스트리아를 떠나면서 가족들과 연락을 끊었으며, 도르스텐 역시 1980년대 이미 모든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고 지내온 상태였다. 브루너의 동생인 프란츠 브루너는 그가 망상에 빠져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도르스텐은 비록 은둔 생활을 하긴 했지만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었다. ‘존 이글스’라는 가명으로 주기적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했다. 페이스북에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글을 올렸으며, 잠시 중단했다가 올해 1월부터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만 자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는 농가의 마당 사진이 다수 올라왔으며, 프로필에는 철학, 음악사,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주요 관심사로는 ‘북한’, ‘유기농 식품’, ‘우주’, ‘영성’ 등이 적혀 있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북한의 지도력과 사회체제, 그리고 식량생산 방법에 대해 맹비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번은 농가 마당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운동기구인 로잉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배경 음악으로는 클래식이 흘러나왔으며, “로잉머신이 완성됐다”라는 글과 함께 “작동이 아주 잘 되고 신체 여러 부위에 좋은 운동 효과를 준다. 이것은 이제 나의 일상적인 운동이 됐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밖에도 매일 태극권 훈련을 하는 사진도 올렸으며, 직접 만든 모카신 사진을 올리면서 자랑하기도 했다.
큰아들인 얀 존 반 도르스텐도 페이스북에 셀카 사진 등을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었다.
이에 경찰은 얀이 외부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브루너의 안이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얀을 자신의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한 것이 결국 오늘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얀은 브루너의 목공소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외부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소셜미디어 활동도 그 무렵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경찰은 도르스텐과 브루너를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건강을 해치고,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로 구금한 상태며, 과연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세상과 단절됐는지, 혹시 특정 종교 집단과 연관은 없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배후에 특정 종교 있나 기묘한 점이 가득한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네덜란드 경찰은 이들 가족이 특정 종교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먼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르스텐과 브루너가 한때 A 종교에 몸담았으며, 둘이 만난 것 역시 이 종교를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실제 도르스텐의 친척들은 그가 한때 A 종교 신도로 활동했다고 증언했으며, 한 조카는 “30년 전쯤 우리 부모님과 삼촌, 그리고 삼촌과 A 종교 사이에 많은 의견 차이가 있었다. 어느 순간 삼촌은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또한 여전히 A 종교 신도로 활동하고 있는 도르스텐의 동생인 더크 반 도르스텐은 “형이 A 종교 신도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형과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A 종교 측은 성명을 통해 도르스텐 가족들이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말하면서도 도르스텐이 1980년대 중반까지 신도였던 것은 맞으나, 1987년 탈퇴했기 때문에 지금은 신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한 도르스텐이 교회를 떠날 때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브루너가 A 종교를 통해 도르스텐을 만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브루너가 교회의 신도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네덜란드 경찰은 농가에서 발견된 거액의 현금 다발이 이 종교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한 경찰 관계자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때문에 그 돈의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A 종교 신도들의 기부금일 가능성 역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950년대 설립된 A 종교가 네덜란드에 전파된 것은 1965년이며, 현재 네덜란드에는 극소수의 신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