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실태 조사와 함께 발표 ‘특목고=불공정’ 명분 더하고 반발 줄이기…교육부 “교육감 의견 수렴 후 결정키로”
10월 21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 사진=이종현 기자
11월 4일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곧 있을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에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맞춘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목고 폐지와 일반고 일괄 전환 방안이 담겼다. 이제까지는 재지정 평가 등을 거쳐 점수 미달 학교를 탈락하는 방식이 통용됐지만 이번에는 아예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뜯어 고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최종 발표까지 준비했다.
애초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의 발표 예정일은 10월 30일이었다. 하지만 예정일에 이 발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가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발표 예정일을 미뤘다는 이야기가 교육계에 돌았다. 특목고 폐지가 진보 진영의 오래된 숙원이긴 했지만 국민적 합의 도출엔 매번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올 2월 있었던 전북 전주 상산고 자사고 폐지 논란 때 목격됐던 국민적 반발은 교육부를 움츠러들게 했다.
올 2월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교육계에선 일종의 여론 떠보기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자사고는 5년마다 한 번씩 받는 재지정 평가에서 70점 이상을 획득하면 이후 5년간 자사고 지위를 이어갈 수 있다. 전북교육청은 일단 기준 점수를 80점으로 높였다. 여기에 상산고와 무관한 사회통합전형 점수에 12점, 교육감 재량점수에 12점을 배점했다. 교육감이 자사고 지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손에 넣은 셈이었다.
상산고가 받은 점수는 여론 떠보기에 좋은 점수였다. 0.39점 차이로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가 잠정 결정됐다. 상산고 총동창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집단 행동을 계속했다. 결국 7월 26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취소를 최종 부동의해 상산고의 자사고 지위가 가까스로 유지됐다. 교육부는 이 과정에서 합의 없는 일방통행이 가져올 후폭풍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이 사건 뒤에도 교육부는 특목고 폐지로 가는 국민적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내부적인 결론은 이미 내려놨지만 명분에 대한 묘수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1차 목표로 정해놓은 10월 30일이 됐지만 교육부는 특목고 폐지를 발표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 교수 사태는 교육부에 큰 선물이 됐다. 특목고를 나온 조 교수의 딸 입시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각된 까닭이다. 교육부는 조국 교수 사태에 따른 학생부종합전형 실태 조사에 한창이다. 학생부종합전형 비율과 특목고 출신 학생 비율이 높은 13개 대학의 입시 과정을 점검해 고교등급제 실재 여부와 교직원 자녀 특혜 여부 등을 따지고 있다.
교육부 내부를 훤히 아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어느 정도 마무리 돼가는 이번 학생부종합전형 실태 조사 결과에는 특목고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목고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교육부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여론전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는 11월 5일 특기자 전형을 특목고가 휩쓴다는 내용과 학생부종합전형 과정에서 특정 고교 유형 우대 정황 발견 등의 조사 결과 내용 일부를 공표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학생부종합전형 실태 조사 결과 발표날은 특목고 폐지를 발표할 수 있는 최적일이 된다. “특목고는 불공정”이라는 명분이 자연스레 완성되는 까닭이다. 결국 조국 교수 사태가 교육부 입장에서는 특목고 폐지의 대의명분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여론 눈치 때문이 아니다. 중요 정책을 발표하는데 교육감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는 ‘교육감 패싱 논란’이 있었다. 11월 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 이후로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국시도교육감 17명 가운데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진보 교육감이 최소 15명이기 때문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가 보여주기식 추가 절차란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아니다. 필요한 절차다. 또한 여론을 잠재우려 학생부종합전형 실태 조사 결과와 함께 발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이상 이야기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부는 이번 달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뿐만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 실태 조사 결과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등의 발표를 앞뒀다. 오는 14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이번 11월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돈의 시기로 기억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교육부 출입기자단은 교육부 나팔수? 교육부의 여론 눈치 작전에 발맞춰준 출입 기자단을 향해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10월 29일 교육부 대변인실은 출입기자단에게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발표 일정 관련 엠바고 안내’라는 문자를 보냈다.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브리핑이 당초 예정됐던 10월 30일에서 11월 7일로 변경됐다는 공지였다. 이 문자에는 “이와 관련해 최초 일정, 일정 연기, 연기 사유, 향후 일정 등 발표 시까지 포괄적으로 엠바고가 설정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뭐가 됐든 아무런 보도도 하지 말라는 일종의 보도 지침이 내려진 셈이다. 보통의 출입 기자단은 출입처가 대형 정책 발표 일정을 연기하거나 바꾸면 변경 이유에 대한 해설 기사를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교육부 출입 기자단은 교육부가 정한 ‘포괄적 엠바고’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극소수 매체만 일부를 보도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한 기자는 “교육부 출입기자단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교육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