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의혹 때 왕따, 이 세계 무서움 알게돼…지역구 당선돼 청년정치 새 길 열 것”
심요한 감독(35)이 청년 정치인을 다룬 영화 ‘비례대표(가칭)’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서핑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쥔 충무로 예비 스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 영화 신예 발굴 프로젝트 S#1(씬 원) 아카데미 1기로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심 감독과 청년 정치인의 만남을 주선해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
[일요신문] 지난 10월 2일 심요한 감독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화 하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년이 정치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은데 정치권 이야기 좀 해주시죠.” 백문이불여일견인 법이다. 청년 정치인을 직접 접촉해 보는 건 어떠냐고 역제안했다. 일면식도 없는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33)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1986년생인 김 의원은 서른 살에 최연소로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답변도 젊었다. “OK”가 돌아왔다. 딱 10초 걸렸다.
심요한 감독은 봉준호가 아니다. 그저 독립 영화계에서 꿈틀거리는 사람이다. 김수민 의원은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11월 5일 심 감독을 국회로 초대했다. 인터뷰는 의원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김 의원은 오신환 원내대표에게 부탁해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실을 통째로 빌렸다. 4시간 오롯이 인터뷰에 임했다. 한창 자라는 영화감독과 쑥쑥 커가는 국회의원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치권 뒷얘기에 한창인 김수민 의원(왼쪽)과 심요한 감독. 사진=박은숙 기자
#김수민 ‘묻을까봐’ 쉬쉬하는 사람들
영화는 허구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생명은 디테일에 있다. 화면에 담기는 소품에조차 영혼을 담는 게 영화인의 삶이다. 그런 영화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살아 숨쉬는 뒷얘기다. 심요한 감독은 국회 첫 입성의 기억을 김수민 의원에게 물었다. 놀랍게도 김 의원의 아킬레스로 불리는 ‘리베이트 사건’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20대 국회 개원 날이었다. 오전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이상한 게 당대표와 원내대표 뽑고 있는데 자꾸 기자가 내 사진을 찍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의원총회 끝나고 나가는데 모든 기자가 내게 우르르 몰렸다. ‘이 보도가 사실입니까?’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보도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내던져졌다.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는데 아무 것도 모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2016년 6월 9일 20대 국회 첫 본회의 직전 보도된 기사 때문이었다. 두 달 앞서 있었던 총선 때 김수민 의원이 일감을 준 대가로 홍보물 제작업체 등에게서 억대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의원 등을 고발한 데에 따른 보도였다. 영문도 모른 채 초선 최연소 비례대표는 기자들 앞에 홀로 서 있었다.
“국회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 손절이 엄청 빠르다. 철저하게 고립된다고 보면 된다. 언제 의원직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의원직 박탈과 함께 직장을 잃어야 하는 보좌진이든 동료 의원이든 그 누구도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 비례대표는 대체재가 많다. 내가 잘리면 다음 순번이 승계를 받으니까 그 누구도 신경 안 쓴다. 그때 정말 이 세계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2017년 1월 11일 왕따 조치가 일부분 해제됐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던 덕이었다. 그제야 곁을 주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김수민 의원은 “처음에 논란이 됐을 때 사진 같이 찍힐까봐 내 옆에조차 아무도 앉지 않았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오니까 그제야 동료 의원 몇몇이 나와 대화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2심 무죄가 되니까 그 숫자는 늘어났다. 그게 바로 여의도”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지난 7월 10일 대법원에서 무죄로 끝났다.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들
김수민 의원은 사수가 요원했다. 모든 게 처음이니 누구라도 필요했다. 여의도에선 그 누구도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 보통 사수가 있다. 일을 하나씩 가르쳐주면서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엔 그런 거 없다. 뭐 조금 알려주긴 하는데 진짜 비기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친정 국민의당은 창당 당시 골수 정치인이 적은 정당이어서 그의 ‘사수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냉혹한 정치 현실에 이제 적응 다 됐다며 환히 웃는 김수민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하나씩 스스로 깨칠 수밖에 없었다. 돌고돌아 자신만의 궤도를 찾아갔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은 진화를 거듭했다. ‘내일티켓’은 진화해가는 그의 민원 소통 창구다. 김수민 의원실 문에는 ‘스타트업 신문고’ 홍보물이 붙어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일 때 청년이 많이 포진된 스타트업 민원을 듣는 플랫폼을 마련한 그였다.
스타트업 신문고는 취지는 좋았지만 효율성이 떨어졌다. 민원을 하나씩 받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졌기 때문이었다. 의원은 한 명이다. 사안 하나 하나를 끝까지 붙들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게다가 민원은 대부분 법을 바꿔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김수민 의원은 스타트업 신문고의 폭을 넓혀 내일티켓으로 확대했다. 내일티켓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직접 제안하는 정책 입법 플랫폼이다. 민원인을 직접 입법 과정에 참여시켰다. 보이지 않는 ‘미승인 국회의원’ 여럿이 법안을 마련해 김 의원에게 주면 승인된 국회의원 김수민이 법안을 발의하는 체계가 마련된 셈이다. 지난 4월 5일 첫 결실을 맺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김혜준 씨가 설계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심요한 감독의 영화 ‘비례대표’에는 정치권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청년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담길 예정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는 청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김수민 의원의 실험은 청년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바늘구멍을 조금 넓혀 놨다. 청년이 직접 입법에 참여하며 정치가 무엇인지 체감하게 됐다. 이런 경험은 청년을 정치인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바늘구멍을 넓혀가는 사람들
심요한 감독이 영화 ‘비례대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답답한 정치 현실 때문이었다. 그는 “내 정치적 입장은 매우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저 ‘정치 혐오’만 늘어간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젊은 사람이 수혈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젊은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청년 앞에 놓인 벽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는 김수민 의원에게 내려진 특명과도 같다. 김 의원은 현재 고향 충북 청주에서 내년 있을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에는 비례대표가 아니다. 지역구다. 진짜 정치인이 돼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셈이다. 이 과정은 20대 국회 때 김 의원에게 쏟아졌던 비난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그에게 쏟아진 비난 가운데 하나는 기성정치에 대한 이중성 논란이었다. 청년을 대변하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권모술수, 영화는 저리 가라다” 등의 발언으로 기성 정치권을 비판했지만 정작 본인도 기성 정치를 답습했다고 손가락질 받았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1월 14일 있었던 국회 예산 소위의 ‘눈물’이 비난의 촉발점이 됐다. 김수민 의원은 이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소위 도중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서로 고성을 지르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 뒤 김재원 의원을 찾아가 사과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켜 고향 청주 예산 증액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차기 청주 출마를 염두에 두고 당선에 필요한 성과를 입증하려 열렬하게 뛴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이 사건이 차기 지역구 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기성 정치권의 흔한 ‘지역구 관리’가 청년 비례대표에게 나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김수민 의원 입장은 달랐다. 그는 “나를 향한 이중성 논란은 비례대표가 가진 역할을 축소 해석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인프라를 가지지 못한 사회 각계 대변자를 뽑는 게 비례대표의 첫 번째 목적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비례대표 목적에는 뽑힌 사람이 정치 제도권 안에 확실히 편입되도록 발판이 되는 목적도 있다. 비례대표는 한 번 하고 물러나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례대표가 지역구에 도전해 2선 의원으로 정치권에 안착하는 게 비례대표의 또 다른 목적이라는 게 그의 논리였다. 실제 그의 지역구를 향한 노력은 결국 청년의 정치권 진입을 넓히는 길이 되는 셈이다. 최근 청년 비례대표가 지역구에서 성공해 2선 의원이 된 사례는 없다. 19대 때 청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던 당시 새누리당 김상민 전 의원과 민주통합당 장하나 전 의원, 김광진 전 의원, 통합진보당 김재연 전 의원 등 모두 20대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비례대표 아니면 청년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청년 정치 공식이었다.
이 공식 앞에 김수민 의원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비례대표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발돋움하는 게 청년 정치의 새로운 길이 된다. 여전히 청년을 대변할 지역구 출신 자신과 또 하나의 청년 비례대표 후배가 생기면 청년 정치인의 파이가 더 커지는 까닭이다. 그는 기존 정치권 물갈이가 필요하다며 열변을 토했다.
“지금 정치권은 국회의원 배지 자체가 목표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국회의원 배지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여야 한다. 사회의 한 축을 대변하는 사람이 좋은 변화를 꿈꾸며 만들어 가는데 사용되는 도구일 때 빛난다.”
그는 이제 어엿한 정치인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는 어느새 정치인이 다 됐다. 그의 사무실이 증거다.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은 넓이 순으로 보좌진 9인 사무공간, 의원공간, 회의공간이 공간 지분 50%, 35%, 15% 정도를 차지한다. 김수민 의원실 구조만 유독 특이하다. 김 의원은 가장 작은 회의공간을 자신의 공간으로 쓰고 의원공간을 회의실로 꾸몄다. 보통 의원실 회의공간은 6명 들어가면 비좁다. 김 의원 회의실은 10명이 들어가도 넉넉하다. “난 어차피 외부에 있는 시간이 많아 내 공간이 클 필요가 없다. 회의실은 늘 분주하다. 더 분주한 공간이 더 넓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하는 그였다.
사람들은 정치를 가리켜 쇼라고 한다. 요즘은 “차라리 쇼라도 해라”라는 반응이 정치권을 뒤덮는다. 공천 못 받을까 몸 사리며 아무 것도 안 하는 정치꾼으로 가득해서다. 김수민 의원실 구조 역시 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회의원회관 의원실 300곳 가운데 김수민표 회의실만 유일하게 넓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심요한 감독은 누구? 심요한 감독은 최근 충무로에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다. 1984년생인 그는 2011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형 광고 기획사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회사원 가운데 가장 자유분방한 광고업계도 그에게는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영화쟁이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향했다. 그가 주머니를 뚫고 나온 건 2016년 일이었다. 그가 연출한 영화 ‘훌륭한 영화’가 2016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본선에 진출했다. 이듬해 서핑광인 그는 한국에서 생소한 서핑 영화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립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독립영화지만 배우 손종학과 신재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10년도 더 된 기아 레토나를 스스로 정비해 몰고 다니는 그는 영화진흥위원회 씬 원 아카데미 1기에 발탁돼 현재 영화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내년 2월 완성될 이 시나리오는 그의 첫 상업영화 도전작이 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