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후 의무복무 기간 위반하고 대형 로펌행…수사 대상 검사, 해외연수 명목으로 출국도
검사가 국외훈련을 받고도 의무복무 기간을 지키지 않거나 변호사로 개업해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사 해외연수의 공식명칭은 ‘국외훈련’이다. 1~2년 해외에서 체류하며 외국의 선진 법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 국외훈련의 취지다. 훈련대상자는 어학검정 시험, 근무성적, 교육훈련 이수 상황, 경력 등을 고려해 선발된다. 공무원들에게 국외교육훈련을 둔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학비와 체류비 등이 지원되는 공짜유학 기회는 자기 능력을 개발하기 좋다. 뿐만 아니라 해외체류는 자녀교육과 입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무부는 검사의 외유성 해외연수를 막기 위해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을 마련해 따르고 있다. 국외훈련 전후로 준비와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그 골자다. 규정에 따르면 검사는 훈련기간 동안 5차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훈련을 마친 뒤에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논문은 독립된 심사기구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이를 총괄하는 기관이 법무연수원이다.
국외훈련은 해외 선진법적용 사례와 범죄수사에 대해 연구하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해외연수까지 마친 검사가 역량을 발휘하는 대신 변호사로 개업해 문제가 된다. 국외훈련자는 복귀한 뒤 훈련기간의 두 배를 의무복무해야 한다. 의무복무 기간을 어기면 훈련비용을 도로 뱉어내야 한다.
운영규정은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차례 개정됐다. 그럼에도 국외훈련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5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장기 해외연수를 받고 의무복무기간을 위반해 퇴직한 검사들로부터 2010~2014년 미환수 된 교육비용은 4억 원에 달한다. 의무복무를 위반한 검사는 13명 중 12명으로 모두 서울고검 소속이었다.
국외훈련을 마치고 논문을 제출한 검사를 2017~2018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66명이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연수를 받은 검사는 43명으로 65%에 달한다. 타국의 수사기법, 법률시스템 연구라는 국외훈련 취지에 비춰 특정 국가에 편중된 연수는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됐다. 더군다나 사법환경이 우리와 다른 미국 연수 편중은 더 명분이 없다.
2015~2017년 연수를 받은 검사 중 의무복무 기간을 지키지 않고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취업한 3명의 사례도 발견됐다. 취업제한 대상인 매출 100억 원 이상 대형 로펌에 취업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들 중 2명은 소속 로펌 변호사 프로필 란에 국외 연수 사항을 기재해 홍보하고 있다.
해외연수 결과를 집대성한 논문을 살펴봐도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논문표절 검사 프로그램인 ‘카피킬러’를 통해 무작위로 표절률을 살펴봤다. 그 결과 표절률이 50%에 달하는 논문도 발견됐다. 논문의 상당 내용을 판례나 법규정 인용으로 채운 건은 부지기수였다. 기사나 타 논문을 인용한 사례도 많았다. 문장의 어미나 단어 구성을 바꿔 표절을 피해간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해외연수를 다녀와 작성한 논문인데 정작 우리나라 자료를 많이 인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검사는 다른 정부부처에 비해 해외연수 기회가 많다. 2015년 기준으로 부처별 국외훈련 인원을 보면 국세청은 32명, 경찰청은 37명, 법무부와 검찰은 33명이다. 전체 인원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13만 명인 경찰 조직규모에 비춰보면 수천 명에 불과한 검찰의 국외훈련 비율은 매우 높다.
국외훈련에 드는 비용은 단순히 해외 대학 학비뿐만이 아니다. 가족에게 제공되는 항공료, 체류비 등에 법률행정 공백으로 인한 비용도 상당하다. 국외훈련 검사가 늘면 업무를 수행할 검사 인원은 줄어든다. 검사의 정원은 법으로 정해져 있어 업무량이 많아져도 충원을 할 수 없다. 검사정원법에 따라 2019년 검사 수는 2292명이다.
검사의 해외연수가 도피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수사를 받거나 궁지에 몰린 검사가 도피성 해외연수를 간다는 것. 최근 대검찰청의 감찰과 여러 건의 고소로 수사를 받던 이규원 검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논란이 됐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으로 이 검사에 대해 감찰을 요청했다. 또 이 검사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다. 이 검사의 유학으로 감찰과 수사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곽 의원은 이 검사에 대해 출국금지 요청서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곽 의원은 “현 정부에서 검사를 해외연수 명목으로 출국시켜 수사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권력형 비리 은폐에 해당한다”며 “신속히 국내로 불러들여 강제 수사에 나서달라”고 입장을 밝혔다.
‘고래고기 환부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던 황 아무개 울산지검 검사도 캐나다로 해외연수를 떠났다. 2016년 경찰이 불법 유통업자를 적발해 고래고기를 압수했으나, 검찰이 도로 유통업자에게 압수물인 고기를 되돌려줘 문제가 됐다.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지만 검찰이 수사에 비협조적이고, 해당 검사는 해외연수까지 가며 경찰조사에 난항을 겪었다. 검찰은 황 검사의 해외 연수가 이미 사전에 예정됐던 일이라고 밝힐 뿐이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평생검사‘가 드문 이유 검찰청법상 검사의 정년은 63세다. 하지만 정년을 채우는 검사는 흔치 않다. 2019년 상반기까지 정년퇴임한 검사는 17명에 불과하다. 2017년 정현태 전 대전고검 검사 퇴임 때만 해도 그는 15번째 정년퇴임 검사였다. 평생검사로 퇴임하던 정 전 검사에 대해 검찰 사내방송국이 영상을 제작했고, 이는 검찰 내부에서 잔잔한 감동을 줬다. 승진가도에서 물을 먹으면 전관변호사로 변신해 큰 부를 쌓는 대신 검사로서 정년을 다 채운 검사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조직문화, 상명하복, 검사동일체라는 내부 분위기 탓에 정년을 채우지 않고 대형 로펌으로 향하는 검사는 한둘이 아니다. 개업식, 개업기사까지 전직 검사의 변호사로의 새출발은 부끄러운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인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판사나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확대되고 있다. 금재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