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들 월급쟁이 의사 고용, 장부 조작·매출 누락·비자금 조성…피해는 환자 몫
처벌을 받거나 수사 중인 요양병원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비의료인이 현직 공무원과 결탁해 병원 인·허가 비리를 저지른다. 자본가는 월급쟁이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한다. 편법으로 세운 요양병원에는 허위급여나 횡령 문제도 발생한다. 병원 수익금이 경영진 호주머니로 들어가 병원에 재투자가 되지는 않는다. 병원 경영의 악순환은 질 낮은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9월 경기도 김포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현장에서 대피한 환자들이 인근 주차장에서 병원 호송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연합뉴스
A 요양병원은 2018년 초까지만 해도 환자 200여 명을 두고 운영됐지만 현재 환자 수가 20명으로 줄어들었다. 심각한 경영난으로 직원의 임금이 체불된 데다 전기요금까지 내지 못해 일시적으로 휴업도 했다. 입원환자는 대부분 노인이어서 병원의 경영 위기는 환자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병원의 위기는 이권을 둘러싼 경영진의 다툼에서 비롯됐다. 병원 경영을 업으로 삼는 사업가들이 의사를 구해 요양병원을 세운 게 탈이었다. 경영진은 병원 재산을 담보로 2008년 수십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돈을 둘러싼 공동대표 사이의 견제는 공방으로 이어지고 관할 검찰청에 투서와 고소가 쏟아졌다.
결국 경영진들은 의료법인 운영권 매매 브로커를 통해 병원을 넘기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폭까지 개입했다. 하지만 병원 담보의 부채와 조건 등이 맞지 않아 운영권 양도는 불발됐다.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의 운영권 양도는 불법이다. 지금도 병원의 은행 채무는 18억 원이나 남아있다.
B 요양병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병원 경영진의 횡포에 참다못한 직원들은 7월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진의 비리를 폭로했다. 병원 노동조합은 전·현직 임원의 횡령과 배임이 의심되는 회계장부를 확보해 공개했다. 요지에 위치한 요양병원과 장례식장은 운영 수익이 상당하다. 하지만 영업을 할수록 병원 재정은 도리어 악화됐다. 노조 관계자는 “영업이 잘 되는데 수십억 원 이상 영업 손실이 난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B 병원 직원들은 경영진이 장부를 조작해 매출을 누락시키고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 사업은 건당 수백만~수천만 원의 현금거래가 이뤄져 비자금 조성에 활용됐다고 주장한다. 또 경영진 가족이 유령직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수천만 원씩 챙겼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경영진의 횡령 규모는 100억 원대로 알려지며 지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관할 경찰서는 현재 노조의 고발 건을 수사하고 있다.
당초 B 병원은 설립과정부터 특혜 의혹이 일었다. 병원 부지는 일반공업용지로 국가산업단지에 속했다. 산업집적활성화및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상 의료기관은 산단의 지원기관에 해당돼 산단 입주가 가능하다. 응급의료나 일반병원시설은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병원이 아닌 요양병원과 장례식장의 개설에 허가가 나자 특혜 논란이 제기됐다.
의사 윤리선언문. 사진=연합뉴스
문제가 된 요양병원은 대부분 자본가가 병원의 실소유주이자 경영자다.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다. 병원 사무장은 원내 행정 및 사무업무를 총괄한다. 하지만 주체가 뒤바뀌어 의사가 사무장 밑에서 일하는 경우를 사무장병원이라고 부른다. 의료법상 비의료인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다. 자본가가 돈을 대고 의사가 월급을 받으며 병원을 운영하다보니 의료행위 본질보다 사익추구를 우선하기 쉽다.
검찰 관계자는 “요양병원 시장이 전문 브로커와 꾼들 판이 된 지 오래됐다”며 “비영리법인 양수양도에 브로커가 끼고 의사는 얼굴마담이 되는 식이다. 이런데도 요양병원 관련 사건이 무죄나 약한 처벌을 받는 게 부지기수라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무장병원이 횡행하지만 견제나 관리망은 허술하다. 병원을 관할하는 지자체와 건강보험공단의 제재는 한계가 있다. 건보공단이 요양비리의 수사를 의뢰해도,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역 유지나 공직자 출신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요양비리가 반부패 공무원, 토착비리로 확대되기도 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9~2018년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피해액은 2조 5500억 원에 달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사무장병원에 의한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특별사법경찰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건보공단이 의뢰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특사경에 찬성률이 81.3%로 집계됐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사회 등은 특사경 찬성에 뜻을 모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사무장병원의 본질이 과잉진료나 허위진료가 아닌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사는 개원을 하고 싶어도 최소 몇 억 원의 거금을 들여야 한다. 개원할 여력이 되지 않는 의사가 사무장병원의 덫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사당국과 법원이 의료법상 책임을 들어 실소유주인 사무장 대신 고용근로자에 불과한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사무장병원 피해자 모임을 이끌던 오성일 원장은 사무장병원을 내부고발 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한 고발로 그는 재기가 불가한 수준의 채무를 떠안게 됐다. 의료현장의 제도적 모순을 바로잡기 오 원장은 법정다툼을 벌였지만 소송에서 패하고 결국 한국을 떠났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