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라오스정부 ‘인재’ 결론에 SK건설 “과학적 근거 결여”…삼환건설 도급도 의혹
2018년 7월 발생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로 주민들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내셔널리버스 캡처.
라오스 정부는 2018년 10월 라오스 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로 최종적으로 43명이 사망하고, 28명이 실종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오스 정부가 수색을 중단하며 그동안 파악된 피해자까지만 집계됐기 때문이다. 사고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은 6000명 이상일 것으로 파악됐다. 호적 전산화가 미흡한 라오스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은 SK건설이 기획하고 정부가 힘을 실어준 대표적인 사업이다. 2011년 최초의 민관협력 사업으로 홍보된 라오스 댐은 SK건설이 시공을, 한국서부발전이 운영과 관리를 맡았다. 두 회사는 별도의 법인인 PNPC를 세우고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통해 유상으로 차관 955억 원을 지원했다.
한국서부발전이 10월 25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라오스 세남노이 보조댐 붕괴 경과 보고’ 문건에 따르면, 사고 발생 사흘 전인 2018년 7월 20일 세남노이 저수지 조성을 위해 축조한 5개의 보조댐 가운데 하나의 중앙부에 11cm 침하가 발생했다. 22일에는 댐 상단부 10곳에 균열 침하가 발생해 복구 장비를 수배했다. 사고 당일인 23일에는 댐 상단부가 1m가량 침하했다. 공사를 총괄하는 합작법인(PNPC)은 대피 협조를 요청하고 마을 이장들을 통해 주민 대피를 시작했다.
사고 진상규명 과정에서 공분이 일었다. SK건설은 홍수의 범람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지 활동가들의 상황 파악 내용과 기업의 해명이 상충됐다. SK건설과 서부발전이 사고 징후를 파악하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 또 사고발생 직후 주민 구조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라오스 현지 마을 이장들이 대피 협조 요청을 받지 못 했다는 인터뷰 내용이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의 시민단체는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대응 한국 시민사회 TF’를 꾸리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시민단체의 질의와 진상규명 촉구에 SK건설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SK건설은 시민사회단체와의 면담을 거부하고 정보공개 요청에도 침묵하고 있다.
라오스는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철저한 통제 속에 진상조사를 해 왔다. 올해 3월에는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분통 치트마니(Bounthong Chitmany) 부총리가 “사고 지역의 토질 환경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 추진 전에 분석을 철저하게 했더라면 댐 건설 사업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조댐 설계가 기준에 미달했다”고 언급해 화제가 됐다. 시공과정의 과실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라오스 국가 조사위원회는 붕괴사고에 대한 독립 전문가 위원회(IEP) 조사결과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볼 수 없는 ‘인재’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IEP는 사건 발생 전 며칠간 집중 호우가 쏟아졌지만, 붕괴가 시작됐을 때 댐 수위가 최고 가동 수위에도 도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흙으로 쌓은 보조댐에 미세한 물길이 생겨 누수로 인한 내부 침식이 발생했고, 기초 지반이 약화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SK건설이 주장해온 해명에 상반되는 결과다.
SK건설은 라오스 정부 조사결과에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박했다. SK건설 측은 “IEP 조사결과는 사고 전후 실시한 정밀 지반조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등 과학적 근거가 결여돼 있다”면서 “라오스 정부의 요청에 의해 초기부터 참여한 한국정부조사단도 IEP의 결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SK건설이 라오스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에 반박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 국가의 진상조사에 이해관계자인 기업이 목소리를 높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정부조사단의 정체에도 관심이 모였다. 확인 결과 청와대 국무총리실, 수출입은행 등 유관 부처는 조사단을 파견한 적 없다고 밝혔다.
라오스 댐 붕괴로 6000명 이상이 가족과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됐지만 구호활동이 부족해 주민들은 최소한의 삶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온적 정부태도 왜? SK건설 하도급 논란
정부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세피안 댐 사업은 공적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 정부의 추진으로 이뤄진 사업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진상규명이나 해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기존의 해외 참사 대응과는 다른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일관해왔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SK건설이 시공을 맡은 라오스 댐 사업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걸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댐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복구 장비를 수배한 데에서 논란이 됐다. 당초 SK건설이 사태를 수습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 일요신문 취재결과 SK건설은 도급 업체 한 곳과 계약을 해 장비, 인력 동원 등 사실상 전반적 업무를 모두 맡겼다. 문제가 된 도급업체는 ‘삼환기업’이다. 댐을 짓는 초대형 공사인데 하청 업체 한 곳에 일괄 하도급을 맡긴 것을 두고 건설업계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삼환기업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동생 이계연 씨가 2018년 초 대표이사를 맡아 화제가 됐다. 그렇다보니 정부가 라오스 댐 붕괴에 대해 공식입장조차 내지 않는 걸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재계에서는 SK건설이 청와대와 라오스 사태에 대해 직접 소통하며 대처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국제적으로 큰 사건이다 보니 SK건설이 청와대와 소통하며 사태 해결을 하고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SK건설과 도급 계약을 맺은 삼환기업은 2013년 11월 착공해 2017년 9월 준공하고 국내로 철수했다. 세피안 댐 사고가 일어난 2018년 7월에는 이미 전문인력과 주요 장비가 라오스 공사 현장에 없었다. SK건설로서는 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능력이 원천적으로 없었다.
건설업계는 SK건설이 삼환기업에 도급을 준 것 자체가 이례적이란 입장이다. 종합건설사인 삼환기업은 SK건설과 동급이기 때문에 하도급이 아니라 공동도급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같은 급인 두 종합건설사가 사업을 따내고 이를 수행하면 공동도급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해외공사는 종합 면허와 상관없이 하도급을 받을 수 있다. 댐과 보조댐 등 7개를 짓는 공정을 우리가 맡아 했지만 이를 일괄하도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SK건설 측은 “라오스 정부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IEP에 진상조사를 의뢰했고, 우리도 별도의 조사를 벌였는데 가설에 의해 진상을 파악해본 결과를 진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보상은 일부 선지급 된 부분이 있고 구호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삼환기업에 도급 건에 대해서는 “하도급 부분은 건설업계에서 대부분 행하는 수준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6000명 이상 이재민이 발생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주민들이 제대로 된 구호를 받고 있는지 우리 정부와 사회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사망자가 있고 범죄자가 있는 전형적인 사회적 참사다. 검찰과 정부는 우리 기업의 과오에 대해 좌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한중일 ‘메콩강 전력’ 패권다툼에 소수민족 ‘새우등’ 동남아 최빈국 라오스 주민들은 전통적 산업인 농업, 어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다. 자원이나 자본 확충이 어려운 라오스 정부는 전력수출을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삼는다. 라오스에는 4200km의 메콩강이 흐른다. 메콩강에 수력발전소를 세워 태국으로 전력을 수출하는 전략이다. 세남노이 댐은 당초 1990년대 후반 동아건설이 추진했으나,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자금조달 문제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당시 댐 건설 부지 인근 주민들은 보상도 없이 강제로 이주됐다. 세남노이댐 인근 주민들은 소수민족인 나헌족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NGO(비정부기구) 단체인 인터내셔널 리버스에 따르면 어업을 생계로 삼던 주민들은 대부분 커피농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댐 건설 중단 이후 주민들은 다시 원 거주지로 돌아와 어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SK건설이 2013년 댐 건설을 재추진하며 다시 삶의 기반이 흔들렸다. 세계 시민사회에서는 메콩강을 전력개발의 병참기지로 삼는 중국, 일본, 한국의 패권다툼이 사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NGO로 태국에서 활동하는 메콩와치의 도시유키 도이는 “이번 사태는 한국 정부가 직접 투자를 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직접투자는 아니지만 일본도 펀딩을 통해 간접 투자를 했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