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여러 번 국회 상정됐으나 보수 측 반대로 무산, 특별법의 한계 지적하는 목소리도
10월 21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 사진=연합뉴스
2018년 11월 19일 주승용 의원(전남 여수을)이 대표 발의한 ‘치유와 상생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안(여순사건 특별법)’엔 여·야 의원 106명이 동참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을 비롯해 일부 바른미래당 보수 성향 의원들도 법안 공동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은 여순사건으로 인한 민간인 집단희생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발의됐다. 주승용 의원 측은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법안 의결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의원 과반수 동의를 얻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16대, 18대, 19대 국회에서 상정됐으나 반대 의견에 부딪혀 번번이 자동 폐기된 바 있다. 20대 국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순사건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 다수는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면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됐다”면서 “이에 따른 국가의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승용 의원은 법안 발의 당시 “여순사건 진상이 규명돼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대립과 반목의 아픈 상처를 치유, 국민 통합과 상생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2017년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은 “여순사건의 본질은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이라며 “제주 4·3 사건, 거창사건, 노근리 사건이 각 특별법안이 제정돼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것과 비교하면 여순사건은 법도 없이 방치됐다.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했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측은 주로 보수 진영이다. 이들은 여순사건이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소속 군인들의 반란이라는 입장이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여순사건은 국가보안법 제정의 근본적 계기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도 “당시 국군 소속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항명했다. 진압 작전 이후 반란군 잔당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빨치산’ 활동을 이어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한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은 기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06년 구례에 준공된 여순사건 희생자 추모 위령탑. 사진=연합뉴스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에 참가한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순사건의 경우, 과거사법에 따라 진실규명을 전부 해내기엔 사건 규모가 크다”면서 “과거사법에 따른 진상규명으로 진실을 밝혀냈지만, 명예회복 절차를 밟지 못한 이들이 많아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민주평화당 의원실 관계자도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순사건 네 글자만 들어도 ‘그건 빨갱이들이 일으킨 반란 아니냐’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여순사건을 바라보는 정치권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전라남도는 11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위원장인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관련 초당적 협조 의사를 확인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에 이채익 의원실 측은 “초당적 협조 의사라기보다는 잘 소통하겠다는 뜻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사법을 한번 정리했기 때문에 여순사건 관련 내용(법안 제정)을 다시 한번 논의하긴 쉽지 않을 텐데 상황을 한번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여순사건 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반란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고 했다. 안보단체 관계자는 “희생된 민간인 중에 사회주의 진영에 몸담고 있었던 이들과 정말 무고한 민간인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