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소지해야 하지만 인증 절차 허술…최대 시속 30km 사고 급증 반면 대책 전무
11월 7일 기자가 선택한 라임 킥보드. 약 4분을 타고 2100원을 지불했다. 사진=최희주 기자
#요즘 대세 전동 킥보드 빌려 타보니…초등학생도 이용 가능
11월 7일 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으로 향하는 인도를 따라 킥보드 3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퇴근하는 행인들 사이를 차례로 피해가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뒤늦게 킥보드를 인지한 행인들은 서둘러 인도 한쪽으로 비켜섰다. 킥보드 꽁무니에 작은 야간등이 붙어 있지만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위험한 질주의 주인공은 모두 중학생. 운전면허가 있을 리 만무한 나이다.
이들이 사라진 인도를 따라 도착한 올림픽공원 인근에는 이미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여럿이 라임색 킥보드를 타고 있었다. 인도 한쪽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가 10대가량 있었다. 킥보드를 빌리려는 학생들을 따라 휴대전화에 ‘라임’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라임은 세계 1위의 공유형 전동 킥보드 업체다. 국내 시장에는 지난 10월 진출해 송파구와 강남구를 중심으로 500여 대의 킥보드를 운영하고 있다. 연말까지 1000여 대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회원가입을 마치자 휴대폰 화면에 ‘주행방법’이 떴다. ‘가속 레버와 브레이크를 이용해 주행하되 인도에서는 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주차 시에는 자전거 거치대를 이용하라’는 안내문까지 보고 나자 ‘유효한 면허증이 있으면 동의하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당일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의’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별다른 인증 절차는 없었다.
타고자 하는 킥보드를 고르고 본체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찍자 신용카드 정보 입력란이 생성됐다. 카드 번호를 포함해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자 이내 ‘띵’ 소리와 함께 킥보드의 잠금이 해제됐다. 앱 설치부터 실제 이용까지는 체감상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킥보드에 올라 가속 레버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자 곧장 킥보드 상단에 숫자가 올라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킥보드의 최대 시속은 30km. 출발 하자마자 상체가 뒤로 젖혀질 정도였다. 기자 옆에 서 있던 초등학생 2명은 매일 전동 킥보드를 타고 학원까지 간다고 했다. ‘면허가 있느냐’는 질문이 무색했다.
한문철TV에 소개된 킥보드 사고 영상. 아래 표시된 원이 킥보드의 후미등이다. 사진=한문철TV 캡처
#무면허 운전자 넘쳐 나지만…관련법 없어 지자체도 속수무책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도로교통법 제2조 19호에 따르면 배기량 50㏄ 미만의 원동기를 단 차는 모두 원동기장치 자전거다. 이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전면허나 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운전면허가 있는 성인이나 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딴 만 16세 이상으로 한정된다. 운행 역시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만 가능하다.
전동 킥보드를 이용한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8년 전동 킥보드의 판매량은 6만 건에 달한다. 구매뿐만 아니라 원하는 만큼 빌려 탈 수도 있다. 특히 1분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만큼 빌려 타는 형태의 공유형 전동 킥보드 사업이 대세다.
문제는 이러한 업체에서 이용자의 면허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 내 전동 킥보드 공유업체는 13곳으로 이 가운데 7곳은 면허가 없어도 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자가 이용한 라임의 전동 킥보드의 경우 운전면허증 인증 절차조차 없었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만 하면 연령 관계없이 누구든 이용 가능했다. 이 밖에도 킥고잉, 빔, 고고씽, 디어, 윈드, 다트 등의 업체도 실시간 인증 시스템이 없어 현장에서 면허를 갖고 있지 않아도 이용이 가능했다.
면허증을 사진으로 찍어 등록만 하면 되는 업체도 있다. 앞서 기자가 만난 초등학생 2명도 부모님의 면허를 이용해 최초 인증을 한 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 운전면허증 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을 올려도 킥보드 사용이 가능할 만큼 관리가 허술한 곳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용자는 면허증이 아닌 비둘기 사진만 찍어 등록했음에도 이용이 가능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로 위 ‘킥라니’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킥라니는 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성한 신조어로 인도와 차도 등에서 불쑥 튀어나와 사고를 유발하는 킥보드 이용자를 말한다. 과거에는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인 ‘자라니’가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이 킥라니가 새로운 골칫덩이로 주목 받고 있다. 실제로 전동 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사고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전국에서 400명이 다치고 9명이 사망했다.
늘어나는 사고에 비해 대책은 없는 현실이다. 무면허 운전자는 넘쳐나지만 실제 무면허로 적발된 사례는 일요신문 취재 결과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사고가 늘어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무면허 단속을 하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단속 자체가 어렵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초등학생용 전동 킥보드가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규제안 역시 없는 상황이다.
답답하기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전동 킥보드 수백 대가 지역 내 도로를 점거하고 있지만 관련법이 없어 어떠한 규제도 하기 힘든 까닭이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현재 전동 킥보드 공유 사업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구청에 별다른 신고를 하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하다. 도로를 불법 점거했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상위법이 없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무법 점거라고 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계도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법이 제정되는 대로 법적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로교통공단 미래교육처는 “관련 부처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국토부가 그 결과에 따라 개인이동수단의 주행 안전 기준을 만들 예정”이라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