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체제 도입 후 KTX 적자 전환…“철도사고 원인 규명 먼저” 통합 관련 연구 용역도 ‘중단’
2013년 말 국토교통부는 철도경쟁시대를 선언하며 SRT 운영사 SR을 설립, 2016년 12월 SRT가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SR의 주주구성은 코레일 41.0%,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 31.5%, IBK기업은행 15.0%, KDB산업은행 12.5%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시 국토부는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국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만성 적자에 들어가던 국민 혈세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민간에게 수서고속철도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공공부문 내에서의 경쟁도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전했다.
SRT 운행 후 코레일의 실적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역에 정차한 한 KTX 열차. 사진=이종현 기자
SRT 운행 후 코레일의 실적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ALIO)에 따르면 코레일은 2015년 864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SRT가 운행을 시작한 2016년에는 2265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2017년과 2018년에도 각각 8555억 원, 105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SR은 2017년 321억 원, 2018년 371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측은 “그동안 고속철도의 수익으로 지방의 산간벽지 등 적자노선을 유지해 왔지만 알짜노선만 운행하는 SR 탓에 지역의 산간벽지 노선은 점차 줄어들고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분리된 KTX와 SRT를 통합해 운영을 일원화하는 것은 중복투자 비용을 최소화해 국민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KTX-SRT 통합은 문재인 대통령의 철도 공공성 강화 공약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지난 10월 “국토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으로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해 진행하던 (통합 관련) 연구 용역을 강제로 중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조에서) 공약을 이야기하는데 KTX-SRT 통합이 공약에 들어간 적은 없고 국정과제로 들어간 적도 없다”고 전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을 살펴보면 “녹색교통인 철도의 비중을 확대하고 공공성을 강화해 국민부담 경감을 추진하겠다”고 적혀 있지만 KTX-SRT의 통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대선 당시 주요 후보자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과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며 “일부 후보자들은 KTX-SRT의 통합을 명시적으로 적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통합 관련 문구를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는 “통합이 공약에 직접적으로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전 정부에서 잘못했던 정책들을 고쳐가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우리는 그 방법으로 통합을 이야기 중인 것”이라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 취임 초기에는 SR 개혁과 관련한 용역을 진행하면서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냈는데 현재는 관련 논의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국토부는 KTX-SRT 통합을 검토하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 산업구조 평가’ 연구 용역을 발주했지만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2018년 말 몇몇 철도 사고가 있어서 당장 통합 논의보다 사고 원인 규명을 명확히 하고 합병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지난 1월 2일자로 용역을 중단했다”며 “용역 재개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방향도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고 전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통합에 대해 “정부 정책에 따를 것”이라고 답했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도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SRT와 통합은 철도산업 구조개편으로 정부 정책 사항이지 파업으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향후 노사 합의가 이뤄지면 정부에 건의할 수 있다”고만 말했다.
당사자인 SR은 통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임원이나 간부급들은 통합에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며 “코레일에서 퇴직 후 퇴직금까지 받고 SR에 재취업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통합 후 코레일에서 제대로 근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2018년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권태명 SR 대표는 “산술적인 효율화보다 국민편익 증진이나 철도산업의 잠재적인 발전을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 구도가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 주관으로 다양한 평가와 분석을 통해서 정책이 결정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우회적으로 통합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권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이든 독자 경영이든 국민 편익이 극대화되도록 SR 운영에 집중하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0일 예정된 전국철도노동조합 총파업이 SR을 비롯한 철도업계 전반에 압박을 주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0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72시간 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서울역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국회에서도 통합에 대한 찬반 의견이 만만치 않다. 2018년 국정감사 당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철도공사가 통합 운영을 전제로 수립한 ‘통합 고속열차 운행계획(안)’에 따르면 (통합을 하면) 운행 횟수와 공급 좌석 수가 늘어나고, 매출액도 증가하며 평균 운행시간도 단축되는 등 많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반면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SRT 운행으로 인해 코레일의 선로 사용, 차량 운영비용이 절감됐고, SRT 위탁 수수료가 매년 1600억 원가량 들어와 SRT 개통으로 인한 코레일의 적자 폭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SRT가 없었다면 코레일의 마일리지제도, 할인제도, 객실 내 전원콘센트 설치, 와이파이 이용 등의 서비스가 개발돼서 공급이 됐겠느냐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KTX-SRT 통합은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였지만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관련 질의가 2018년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등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에 오는 20일 예정된 전국철도노동조합 총파업이 SR을 비롯한 철도업계 전반에 압박을 주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SR이 열차 정비, 시설유지보수, 사고 복구 등의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철도업계 관계자는 “코레일이 파업하면 손님이 SRT에 몰릴 텐데 열차를 정비할 사람이 없어서 SRT 운영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며 “현재 코레일 내에 임금체불이 있고, 노조는 임금체불에 대한 파업권을 갖고 있다 보니 코레일 사측도 노조를 크게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SR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아직 SR 입장에서 그 정도로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우리도 파업이 장기화되는 걸 원치 않는데 문제를 풀어야 할 국토부가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아 파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