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이혜훈 통합플랜 첫 물꼬…한국당 ‘선 유승민 후 공화당’ 구도 그리지만 갈 길 험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헌정유린 타도 및 위선자 법무부장관 사퇴 촉구 집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 7월 바른미래당 내홍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계파 갈등 때문이었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로 구성된 비당권파는 손학규 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반면 손 대표는 ‘버티기’로 나섰다. 갈등을 넘어 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7월 1일 구성된 ‘혁신위원회’ 역시 계파 갈등을 재연하며 무산됐다. 8월로 들어서도 격랑은 마찬가지. 분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들이 제기됐다.
8월초 상황을 관망하던 자유한국당 중진 A 의원이 움직였다. 그는 바른미래당 B 의원과 자주 왕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통합 물밑 논의의 ‘첫 번째 라인’이다. A 의원은 “황교안 대표를 도와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수의 승리를 위해선 ‘통합’만이 길이라며, 통합 플랜을 전달했다. △한국당 당명을 바꾸고 △황교안 유승민 등 보수의 대권주자들이 다 모이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며 △총선 공천은 국민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하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 최근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올랐을 때, A 의원으론 김무성 의원(6선)이, B 의원으론 이혜훈 의원(3선)이 지목됐다. 양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김무성 의원이 11월 14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황교안 대표와 영남권 중진의원들과 오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조국 정국이 중후반을 넘어가던 9월 말, 바른미래당 유승민계-안철수계는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출범했다. 손 대표가 ‘추석 전 당 지지율 10% 미달 시 사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유승민계 최고위원을 징계하는 등 당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즈음 특강을 통해 “바른미래당에 와서 실패를 했다”면서 “결심해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사실상 탈당을 예고했다.
보수통합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이번엔 17대 국회 당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멤버가 다시 모였다. 중심축은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었다. 장외에서 시민단체(자유와 공화)를 조직하며 보수통합 운동을 하던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도 함께했으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영진 대구시장도 머리를 맞댔다. 보수통합 ‘두 번째 채널’이 가동된 셈이다. 여기서는 ‘첫 번째 채널’과 미세하게 다른 통합 플랜이 제시됐다. 유승민계가 비대위가 아닌 선대위에만 들어올 것, 국민 여론조사가 아닌 외부 공천위원으로 ‘혁신공천위’를 구성할 것 등이다.
술술 풀릴 것 같던 조율은 ‘외부 변수’에 의해 일부 브레이크도 걸렸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 개편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 측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될 경우 통합은 불리하다며 ‘선거 연대’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에 잠시 통합 논의가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총선 승리의 전제조건은 ‘통합’에 있다는 공감대가 다시 확산되면서 물밑 테이블 협상은 빠르게 진척됐다.
보수통합 ‘세 번째 채널’은 황교안 대표의 ‘특사’와 ‘중재자’ 라인이다. 대표적인 특사는 원유철 의원이다. 원 의원은 한 정치권 인사를 통해 유승민계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황 대표의 다른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한국당 중진 의원도 유승민계-안철수계를 직접 탐문했다고 한다. 이 중진 의원은 “유승민계, 안철수계 내부에서 서로 입장이 다르다”며 “통합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에 이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 보고, 황 대표에게 상세히 보고했다”고 귀띔했다.
10월에 들어선 양측 수장의 ‘공개적 밀당’이 시작됐다. 유승민 의원은 보수통합에 있어 3대 원칙(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제시했다. 또 “날만 잡히면 황 대표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적극성을 보였다. 이에 황교안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하고, 만남이 필요하면 만나고, 회의가 필요하면 회의체도 만들 수 있다”고 화답했다.
한국당 내에선 10월 말 황 대표가 보수통합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일었다. 당시 한국당은 ‘박찬주 전 대장 1호 인재 영입’ 논란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다. 국면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설익은 통합론을 발표할 수는 없었다. 지도부 한 관계자는 “황 대표의 기본 입장은 모든 보수 야권을 묶는 통합이다. 유승민계와 우리공화당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며 “다만 우선순위에 있어선 수도권 승리를 위해 필요한 유승민계가 먼저이고, 우리공화당은 후순위에 통합을 해야 한다는 등 여러 의견들도 있었다. 이처럼 내부 검토 탓에 발표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11월 6일 황 대표는 ‘보수대통합’ 제의를 전면에 드러냈다.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가치를 받드는 모든 분과의 정치적 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자유 우파의 모든 뜻있는 분과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위한 통합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통합 논의에 대해 ‘직간접적인 소통’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작업들을 언급한 것으로 읽혔다.
유승민 의원(왼쪽)이 11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황 대표 제의에 유승민 의원 측은 “보수를 근본적으로 재건하는 대화라면 진정성 있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화답했다. 반면 우리공화당 측은 “탄핵 찬성 세력과의 통합은 야합”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했다. 한국당의 구상대로 선(先) 유승민, 후(後) 우리공화당 통합 구도의 그림이 그려진 셈이다. 급기야 다음 날에는 황 대표가 유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제의를 하기도 했다. 통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거기까지였다.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올랐으나 양측은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국당 내 보수통합추진단장인 원유철 의원에 대한 ‘자격 논란’이 대표적이다. 유승민 의원 측은 친박계 원 의원이 통합 중재자로 나서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지난 2015년 2월 유승민 전 대표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됐던 당시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뛰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압박과, 이후 탄핵 정국을 거치며 관계가 갈라진 바 있다.
한국당과 변혁 내 통합 반발 목소리도 통합 작업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다. 김진태 의원 등 강성 친박계는 여전히 “유승민은 안된다”라고 외치는 상황이다. 변혁 측은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계 반대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안철수 전 의원이 정계 복귀를 통해 상황을 정리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 와중에 변혁 측은 대표직을 맡던 유 의원이 사임을 하고 신당추진기획단을 출범시키는 등 한국당과의 통합보다 신당을 통한 세력규합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지금의 한국당이 유 의원이 제안한 보수통합 3원칙을 결국 지키기 힘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국당의 경우 ‘통합 협의체’를 구성하며 통합 의지를 보였지만, 유승민 측의 협상 태도를 두고 불만 기류가 흐르는 양상이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