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대법원 재상고’에 병무청·법무부 판단, 국민 여론까지…“장밋빛 아닐 것”
가수 겸 배우 유승준의 국내 비자 발급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유승준의 손을 들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판사 한창훈)는 15일 오후 2시 유승준이 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 발급 거부 취소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유승준은 2015년 총영사관에 재외동포(F-4) 비자 발급을 요청했으나 총영사관 측이 이를 거부하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앞서 지난 7월 대법원은 원심의 유승준 측 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승준의 사증 발급 과정에서 LA 총영사관 측이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고 법무부의 2002년 입국금지결정만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으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발급 거부 처분을 하면서 처분서를 작성해 유승준 측에 교부하지 않고 전화로만 통보한 점 역시 현행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절차상 미비와 재량권 불행사라는 위법 사실이 존재하므로 적법한 절차를 통해 비자 발급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요지. 파기환송심 역시 대법의 결정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법원의 판결은 유승준의 비자 발급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판단하라는 것에 그쳤을 따름이고, 입국금지 결정 자체의 처분성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유승준은 지난 9월 17일 SBS ‘본격 연예 한밤’에 출연해 처음으로 자신의 병역 기피 논란을 해명했다. 사진=‘본격 연예 한밤’ 캡처
이런 이유로 단순히 유승준의 승소 사실만으로 그의 ‘17년 만의 입국길’이 열렸다고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유승준은 LA총영사관 측에 다시 한 번 F-4 비자를 신청하고, 총영사관 측은 철저히 절차에 맞춰 ‘재량권’을 행사해 이를 심사한다. 법률적인 측면에서만 따진다면 적확한 절차를 거친 뒤 총영사관 측이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이에 따른 처분서만 교부한다면 이후 유승준이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
이처럼 절차상 문제를 지적할 수 없다면 유승준 측이 주장해 온 ‘형평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유승준 측은 지난 9월 20일 파기환송심 첫 변론기일에서 “유사한 다른 케이스와 비교해서 입국 금지 처분을 받은 것은 유승준 본인만이 유일하다. 매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만큼 형평성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법원 역시 병역의무 위반으로 인한 입국 금지와 비자 발급 거부라는 제재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 공익과 유승준 개인에 대한 비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과 원칙이 동일한 사례에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파기환송심에서는 이 점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대법원에서 파기의 이유로 삼은 판단은 비자 발급 과정의 절차적 위법일 뿐이므로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파기환송심에서 거론되지 않았을 뿐, 이후 비자 발급을 재신청하는 과정에서 유승준 측이 얼마든지 이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유승준이라는 사람을 개인 아닌 공인으로 볼 경우 그가 주장하는 형평성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유승준 입국금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유승준의 국적 포기 사례가 ‘사건’이 아닌 ‘사태’로 번졌던 것은 당시 공인으로서 그가 가진 위상 탓이었다. 1990년대 연예계를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온 유승준이 자의적으로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 의무를 면탈하려 한 것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병무청이나 법무부로서는 그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17년간 입국금지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와 더불어 유승준이 거듭 신청하고 있는 비자의 성격 탓에 LA 총영사관 등 관계 부처들이 ‘발급 거부’ 입장을 굽히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서 파기환송심 변론 기일에서 영사관 측은 “일반 관광 비자로도 얼마든지 국내 입국이 가능한 유승준이 굳이 혜택이 많은 F-4 비자를 신청했다”며 “자기 주장처럼 한국인으로서 뿌리를 찾고 싶다면 관광 비자로도 목표 달성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승준이 신청한 F-4 비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 발급되는 것으로, 국내 거소 신고를 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하며 취업 및 기타 경제활동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승준이 국내 영리 활동을 위해 F-4 비자를 신청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사진=MBC 섹션TV 캡처
외교부는 15일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재상고 의사를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즉각 대법원에 재상고해 최종 판결을 구하겠다”며 “법무부, 병무청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병무청은 2002년 법무부 장관에 유승준이 재외동포 자격으로 입국하고자 할 경우 영리활동을 할 수 없게 하거나 이 사안이 불가능할 경우에 한해 입국 자체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2002년 2월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결정했다.
앞서 상고심 선고 당시에도 법무부는 “병무청장의 의견과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유승준의 입국은 대법원의 재상고심에 이어 외교부, 법무부, 병무청 그리고 국민 여론까지 고려하는 비자 발급 재심사를 거쳐야만 확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찬수 병무청장이 지난 10월 4일 국회 국방위원회 병무청 국정감사에서 직접 “아마 (유승준의) 입국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며 “병역기피를 위해 국적을 변경한 사람에 대해선 출입을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설명해 유승준의 입국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는 법무부의 결정이므로 총영사관의 비자 발급이 이뤄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해당 비자에 따른 입국 허가로 순탄하게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사안도 단순히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해 외교부나 총영사관에 한해서만 결정하지 않고 병무청, 법무부 등 관계 부처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유승준의 입국길이 마냥 장밋빛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