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계열사와 달리 ‘한국노총’ 선택 눈길…노동계 ‘기대’ 반면 “삼성 의도 없이 500명 조합원 확보 불가능” 시각도
지난 16일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삼성전자 노동조합 출범식. 사진=박은숙 기자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 13일 신고증이 나와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았다. 진윤석 삼성전자 노조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권익은 우리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회사가 시혜를 베풀 듯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진정한 노동조합 설립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확한 조합원 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재 5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조합원 1만 명을 1차 목표로 삼고, 18일 삼성전자 전 사업장에서 동시다발 선전전을 펼치는 등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노조 설립과 관련해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삼성전자 노조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달리 민주노총 대신 한국노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에스원, 삼성전자서비스 등 계열사 9곳 중 8곳의 노조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투쟁 등에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진윤석 위원장은 “한국노총에 속한 SK하이닉스 노조 집행부와 만나 여러 비교를 한 끝에 투표로 한국노총이 삼성전자 노조에 더 맞는 상급단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말 진 위원장이 한국노총을 먼저 찾아, 노조 설립까지 1년 가까이 함께 논의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노조를 바라보는 노동계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변화의 시발점이라는 평가와 함께 사측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는 노조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삼성에서 관리 차원에서 노조 설립을 선수쳤다는 말은 나온다”며 “‘관리의 삼성’에서 노조 설립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삼성 문제를 오랫동안 지적해온 노동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노조파괴 문건이 드러나고,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임직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삼성은 국민들 눈치를 보며 노조를 인정했다”면서도 “삼성에게 ‘무노조경영’은 여전히 지상과제다. 삼성 계열사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 여건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직원들에 대한 사찰과 감시는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삼성에서 노조원 500명은 말이 안 된다. 삼성 사측 의도가 없이는 50명도 모으기 힘들다. 노조에서 활동하는 이들 모르게 사측의 보이지 않는 개입이 있을 수도 있다. 관리에 들어가 활동에 제약을 만들어버린다”며 “결국 한국노총의 문제라기보다는 삼성의 작품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노조 외에 삼성전자에 존재하던 3개 노조 중 2개는 조합원 수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1개도 30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웰스토리, 삼성물산, 삼성에스원 등 다른 계열사 노조들도 조합원 확보나 활동에 제약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삼성엔지니어링 노조의 경우 노조원이 한 자릿수로 매우 적다. 지부 활동이 어려워 2017년 창립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 노조 조합원 수가 500명 수준으로, 다른 계열사들보다 많다. 하지만 삼성전자 전체 직원 10만 6000명에 비하면 0.4%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다른 계열사 노조는 조합원 비율이 3% 정도 된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한 삼성 계열사 노조 위원장은 “노조 설립 이전 연락은 따로 없었다. 설립 발표 이후 대표단과 진윤석 위원장 측이 통화를 하고 일정 조율해 만나자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갈라져 반목하는 것은 경계했다. 다른 계열사 노조 위원장은 “기존 노조들도 삼성전자의 노조 설립을 환영하고 있다”며 “우리로서는 사측과 함께 싸우고 삼성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립 전 따로 의견을 나누지 않은 점에 대해 한국노총 측은 “설립 이전 상급단체가 달라 기밀유지 부분 등 조심스러운 점이 있어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또한 기존 삼성 계열사 노조들과 소통창구도 따로 없었다”고 밝혔다.
다른 기업 노조 위원장은 “이제 시작하는 노조에 프레임을 씌우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이들이 앞으로 회사를 변화시키고, 직원들의 권익을 위해 어떻게 활동하는지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삼성전자 노조 설립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과 연관을 짓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22일이 2차 공판기일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항소심의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원심을 뒤집었다.
앞서의 노동계 관계자는 “양대 노총 산하에 편입되진 않았지만 삼성전자에는 이미 3개의 노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삼스럽게 한국노총 가입 노조라고 대대적인 언론 홍보에 나섰다”며 “하필 시점이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앞두고서다. 재판부도 재벌적폐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의 가장 큰 적폐 중 하나는 무노조경영이다.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이벤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