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역수출은 아닌 미국 시장서 승부…가격 하락 리스크 딛고 시장 공략 성공할지 관심
하림그룹이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건 2011년 하림USA를 통해 미국 육계업체 ‘알렌패밀리푸드’를 인수하면서다. 알렌패밀리푸드는 1919년 부화장으로 시작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육계업체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영위기가 닥치면서 회사 재정이 악화됐고, 하림그룹이 인수했다.
당시 하림은 초기 고정자산 인수에만 4800만 달러(약 560억 원)를 투입했고, 사명도 알렌하림푸드로 바꿨다. 지난 5월에는 하림지주, 팜스코, NS쇼핑 등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각각 하림USA에 수십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하림그룹은 미국 시장에 1000억 원가량 투자했지만 아직 기대만큼의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림USA는 미국 진출 초기인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222억 원, 109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4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10억~20억 원 수준의 흑자를 거뒀다가 2018년에는 39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말 기준 하림USA와 그 종속기업의 총 부채비율은 562.59%에 달한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미국 육계 시장이 공급 과잉이라서 실적이 떨어졌지만, 최근 적자폭이 줄어드는 등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며 “유상증자로 투입된 자금은 도계장 등을 증축하고 리모델링하는 데 쓰인 투자자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미국 계열사 투자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하림타워. 사진=고성준 기자
최근 몇 년간 하림그룹은 일부 미국 계열사를 정리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하림그룹에는 하림USA를 비롯해 알렌하림푸드, 알렌하림팜스, 알렌바이오테크, 하림밀스보로, NS아메리카 등 미국 현지 계열사가 있었다. 이 중 알렌하림팜스와 알렌바이오테크는 2018년 알렌하림푸드에 흡수됐고, NS아메리카도 올해 청산됐다. 하림밀스보로는 법인의 형태만 존재할 뿐 진행하는 사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현재는 알렌하림푸드가 사실상 하림그룹의 유일한 미국 사업회사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부화장, 도계장, 농장 등의 기능을 하는 회사들을 하나로 묶어 사업조정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하림은 알렌하림푸드를 통해 미국의 육계 제품을 한국에 역수출하는 사업 모델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국내 양계협회의 거센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 하림그룹이 계열사 HK상사를 통해 미국 육계 제품을 수입한다는 의혹을 받자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HK상사는 2012년 말 하림그룹의 다른 계열사 그린바이텍에 흡수합병됐고, 김홍국 회장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하림의 미국 법인은) 거의 99%를 미국 현지에 팔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림그룹 관계자 역시 “알렌하림푸드는 미국 시장에 제품을 팔기 위해 인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직접 역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기에 알렌하림푸드는 결국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하림이 최근 미국 시장에서 적자를 본 이유는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 때문으로 전해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육계 제품 도매가격은 2018년 6월 1kg당 2.72달러(약 3190원)로 고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10월에는 1.85달러(약 2170원)까지 떨어졌다.
당초 하림은 알렌하림푸드를 통해 미국의 육계 제품을 한국에 역수출하는 사업 모델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국내 양계협회의 거센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하림지주 신사옥. 사진=박형민 기자
알렌하림푸드는 할랄인증 제품, 친환경 제품 등을 판매하면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국의 주요 육계 업체에 비해 규모면에서 뒤처진다. 그럼에도 하림 측은 미국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육계 소비량은 2018년 184억 4853만kg에서 2028년 197억 6614만kg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한국의 소비량도 10억 4600만kg에서 12억 207만kg으로 증가할 것으로 OECD는 내다봤지만 시장 규모가 미국의 10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또 하림이 한국에서는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수입 제품이 갈수록 늘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2016년 월평균 8302t의 계육 제품이 수입됐지만 2019년에는 월평균 수입량이 1만 1903t으로 늘었다. 게다가 하림그룹의 계육 판매 계열사 (주)하림은 올해 1~3분기 27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도 좋지 않다.
한 육계업체 관계자는 “국내 육계 시장은 수입 업체들에 시장 점유율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며 “국내 육계 제품의 25~30% 정도가 수입품이며 수입산 가격은 국내산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니 국내 육계 업체가 수출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다만 하림은 현지 업체를 인수한 것이기에 노력에 따라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미국 육계 업체들의 실적도 예년에 비해 부진한 편이지만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듯하다. 세계 최대 육류업체인 타이슨푸드의 육계 부문 매출은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120억 4400만 달러(약 14조 1613억 원)에서 2019년 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133억 달러(약 15조 6381억 원)로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8억 6600만 달러(약 1조 183억 원)에서 6억 2100만 달러(약 7302억 원)로 줄었다.
타이슨푸드 측은 “회사 인수 등으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상승했지만 영업비가 늘어나고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이익은 하락했다”면서도 “2020년에는 육계 부문 영업이익률이 6~8%(2019년 4.7%)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