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1년간 제대로 된 조치 없이 2차 가해”…부원장 “피해자 주장 모두 거짓”
전국 법전원 젠더법학회 연합 성명서 일부. 사진=전젠연 제공
전남대 로스쿨에서 학생 간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은 11월 20일 전국 13개 대학 로스쿨 젠더법학회 연합 성명서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성명서 내용은 전남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A 씨가 지난해 12월 한 교수가 주최한 술자리에서 같은 과 학생 B 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학교에 도움을 구했으나 1년 동안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으므로 학교가 서둘러 피해자 보호 조치 규정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A 씨는 뒤늦게 사건을 공론화한 배경에 대해 “방학 동안 그 일을 잊어보려 애를 썼지만 3월 개학 이후 다시 B 씨를 학교에서 마주치게 됐다. 괴로운 기억들이 떠올라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남들에게 아무 일 없는 듯 보이고 싶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3월 교내 인권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인권센터는 4월 대학원에 B 씨에 대한 징계요청서를 제출했다. 대학원 징계위원회는 5월 중순이 되어서야 B 씨의 징계를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A 씨가 B 씨를 형사 고소했으므로 사법기관의 결정에 따라 징계를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징계위원회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분과는 분리해서 이뤄지고 있다. B 씨는 지난 10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A 씨는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학교는 피해자 보호 조치에 관한 규정이 없어 두 사람을 강제적으로 분리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다만 B 씨에게 ‘A 씨를 마주치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고 동일 과목이 2개 이상 분반으로 나뉘는 경우 A 씨와 B 씨를 서로 다른 반에서 수강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 씨는 현재도 B 씨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22일 전남대 법전원 학생부원장이 A 씨에게 보낸 문자 내용 중 일부. 사진=A 씨 제공
이 같은 조치에 A 씨와 시민단체는 반발했다. 성추행 사건을 다룬 기사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광주 여성민우회는 11월 23일 대학원에 공개토론회 개최를 취소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A 씨 역시 “토론장에서 성폭력의 존부는 따지지 않겠다고 했으나 1, 2학년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임이 드러나는 것이 어떻게 2차 가해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당사자의 거센 반대에도 학교는 공개토론회를 강행하는 듯했다. 학생부원장은 토론회 전날인 11월 25일 A 씨에게 장소와 시간이 적힌 문자까지 발송했으나 그날 오후 관련 기사가 보도되자 준비 부족을 이유로 토론회를 연기했다.
A 씨는 11월 2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학교가 피해자분리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으면서도 가해자 중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A 씨가 2018년 12월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대학원 소속 교수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털어놨지만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해 해를 넘겨 3월 인권센터를 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생부원장은 지난 6월 A 씨와의 면담 자리에서 “B 씨가 휴학하고 군대 갔다 오고 우리 학생(A 씨)이 이것저것 취하해주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징계 철회와 고소 취하를 하면 B 씨에게 휴학을 권유해보겠다는 뜻이었다.
한편 A 씨는 학교의 미온적 태도에 전직 대법원장을 배출한 B 씨의 집안 배경이 영향력을 준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A 씨는 “학교는 피해자인 나에게 오히려 적대적이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생각하여 피해자의 입을 막는 것인지, 아니면 B 씨가 전직 대법원장의 친인척이라는 사실이 교수님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B 씨는 C 전 대법원장과 4촌지간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대 로스쿨 재학생들에 따르면 B 씨의 집안 배경은 교내에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B 씨는 학교생활을 하며 이런 사실을 얘기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C 전 대법원장이 실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학생부원장은 11월 28일 이러한 의견에 대해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말하는 한편 “A 씨의 주장과 성명서는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젠더법 연합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피해자가 홀로 작성한 것이다. 연합회 누구도 나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 내용은 모두 허위이거나 왜곡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C 전 대법원장은 11월 27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B 씨와 친인척 관계인 것은 맞지만 그런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자신의 존재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는 일이다. 알아서 할 일이다. 처벌 받을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