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선 부회장 현대그린푸드 지배력 강화…백화점-그린푸드 지분 가치 격차 커 맞교환 미룬다는 분석도
2009년 8월 열린 신촌 영패션전문관 유플렉스 오픈식. 왼쪽부터 정교선 현대백회점그룹 부회장, 정지선 회장, 경청호 전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4월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현대쇼핑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직접 계열사 지분을 매입·매각했다. 정 회장은 은행에서 300억 원을 차입해 현대쇼핑이 보유한 현대A&I 지분을 매입, ‘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A&I→현대백화점’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홈쇼핑 주식 전량을 현대그린푸드에 매각한 자금으로 현대쇼핑이 보유한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매입했다. ‘현대백화점→현대쇼핑→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으로 이어진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두 형제는 각자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지배력을 강화했다. 정 회장의 현대A&I 지분은 52.05%에서 73.39%로, 정 부회장의 현대그린푸드 지분은 15.28%에서 23.03%로 늘어났다. 현대홈쇼핑의 최대주주도 현대백화점(15.8%)에서 현대그린푸드(25.01%)로 바뀌었다. 정 부회장은 현대홈쇼핑 지분 전량을 매각해야 했지만, 현대홈쇼핑에 대한 현대그린푸드의 지분이 15.5%에서 25.01%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정 부회장→현대그린푸드→현대홈쇼핑’ 지배구조가 공고해진 셈이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각자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를 앞세워 유통부문과 비유통부문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자, 재계에서는 계열분리를 점쳤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지분 맞교환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그린푸드 지분 12.7%와 현대그린푸드가 보유한 현대백화점 지분 12.05%를 맞교환해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난해 12월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그린푸드에 대해 “현대백화점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로서 지배구조 개선 및 배당확대 최대 수혜자”라며 “현대백화점은 정지선 회장, 현대그린푸드는 정교선 부회장 구도가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 지분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그간 현대백화점 경영과 거리를 두던 정 부회장이 현대백화점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계열분리설은 힘을 잃었다. 현대그린푸드, 현대홈쇼핑의 대표 및 사내이사를 맡아온 정 부회장이 백화점에서만큼은 미등기임원 부회장으로 근무하며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사내이사 선임으로 백화점 경영 참여가 예상됐기 때문. 백화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계열분리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보였다가,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이름을 함께 올린 만큼 애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두 형제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수면 아래로 아주 내려간 것은 아니다. 정 부회장은 올해 꾸준하게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매입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현대그린푸드 지분은 23%에서 11월 말 기준 23.67%까지 늘어났다. 지난 11월만 해도 다섯 차례 장내매수를 통해 13만 773주를 매입했다.
더욱이 정 부회장의 현대백화점 사내이사 선임 목적이 형제 공동경영 강화뿐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개정된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2018년 3월부터 보수총액 5억 원 이상의 미등기 임원의 연봉이 공개되며 정 부회장이 현대백화점으로부터 5억 86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것이 알려졌다. 이에 정 부회장이 미등기임원임에도 보수를 받아가는 것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현대백화점그룹은 다음해인 지난 3월 정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형제 공동경영 강화보다 보수 공개에 대한 면피용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
두 형제가 당장 형제 공동경영 노선을 선택한 것이 맞교환해야 하는 지분의 가치 격차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의 지분을 맞교환할 경우 두 회사의 주가 차이로 정 회장이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12월 4일 종가 기준 현대백화점은 주당 8만 500원, 현대그린푸드는 1만 2150원이다. 현대그린푸드의 주가가 현대백화점에 비해 현저히 낮다.
때문에 정 회장 소유의 현대그린푸드 지분 12.7%(1238만 275주)와 현대그린푸드가 보유한 현대백화점 지분 12.05%(281만 9226주)를 맞교환할 경우, 가치가 낮은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넘겨야 하는 정 회장 입장에서 765억 원이 넘는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더욱이 현대그린푸드는 최근 실적 또한 좋지 못해 주가 반등을 노리기 힘든 상황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한 7906억 원, 영업이익은 9.3% 감소한 300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리바트, 에버다임 등의 자회사 실적 부진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간 계열분리는 현대그린푸드 실적이 오를 경우 가능하다. 그린푸드 주가가 올라야 주식 맞교환으로 인해 정 회장이 부담하는 추가 자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불편한 동거는 현대그린푸드 주가가 오르거나 현대백화점 주가가 떨어질 경우 막이 내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계열분리 계획을 검토한 바 없다”고 짧게 답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