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수출용’ 약속 어기고 삼다수 점유율 잠식 우려…‘도내 기여’도 적다는 지적
‘제주 용암수’를 둘러싼 오리온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오리온 제주용암수 공장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는 담철곤 오리온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주도는 또 오리온 같은 거대기업이 제주용암수 취수에 나설 경우 고갈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이 원하는 취수량은 제이크리에이션의 현재 취수량을 훌쩍 넘는다.
제주도는 “제이크리에이션은 하루에 150톤(t)을 취수하는 데다 계약도 3~6개월 단위지만 오리온의 당초 사업계획서상에는 하루 1000t으로 시작해 2만t까지 요구했다”고 말했다. 제주용암수 특성상 하루 150t 정도 취수량은 바닷물이 계속 유입돼 큰 타격이 없지만, 하루에 1000t 이상 취수할 경우 유입되는 바닷물만으로 보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제주도 물정책과 관계자는 “오리온이 다량의 염지하수를 취수했을 때 지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며 우려 섞인 입장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제주도 출연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JTP) 산하 용암해수센터 관계자는 “제주도 육지로 들어온 염지하수의 보존량은 약 71억t으로 하루에 1000t씩 취수하면 1만 9000년을 사용할 수 있다”며 “물론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유동성은 있지만 취수를 하면 바닷물을 통해 곧바로 유입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산업단지 내에 허가받은 취수 가능량은 하루 1만 2000t”이라며 “제주도심의위원회에서도 이 정도의 취수량은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 역시 “고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업계에서는 제주도가 오리온의 진출을 꺼려하는 진짜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오리온 같은 거대기업이 ‘제주도 물’을 이용해 생수시장에 진출하면 기존 ‘제주도 물’을 활용한 삼다수와 경쟁이 불가피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삼다수에 피해가 가는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앞서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제이크리에이션의 경우 규모도 작고 판매지역도 국한돼 삼다수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거대기업 오리온 진출은 규모나 경쟁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것. 가뜩이나 최근 생수시장의 삼다수의 점유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수업계 관계자는 “제이크리에이션은 매출도 크지 않고 수요도 제주도에만 있어 제주도개발공사에 큰 타격을 주지 않지만 오리온은 규모 자체가 다르다”며 “오리온이 국내 생수시장에 진입할 경우 삼다수 판매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도 제주용암수의 출시는 삼다수에 위협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록 두 제품의 가격은 비슷하지만 무기질의 함량에서 제주용암수가 삼다수보다 좋기 때문이다. 12월 6일 각사 애플리케이션 기준, 삼다수와 제주용암수 가격은 100ml당 각각 86원과 88원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칼슘‧칼륨‧마그네슘의 1리터당 무기질 함량은 삼다수가 각각 2.5~4.0, 1.5~3.4, 1.7~3.5mg인 데 비해 제주용암수는 62, 22, 9mg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다만 삼다수와 제주용암수는 각각 ‘먹는 샘물’과 ‘혼합음료’로 분류된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합음료인 제주용암수를 ‘먹는샘물’로 보기 충분하다.
오리온이 제주도에 특별한 기여를 약속하지 않은 것도 제주도의 반발을 사는 부분이다. 제주도개발공사(JPDC)는 삼다수 판매에 따른 이익으로 지난 수년간 매년 제주도에 170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해 왔다. 또 JPDC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제주도의 정책사업과 임대주택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배당금보다 훨씬 큰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에서 출시한 ‘제주용암수’. 사진=제주용암수 공식 홈페이지
오리온이 제주용암수 국내 판매에 나서겠다고 한 것 역시 제주도를 발끈하게 한 대목이다. 당초 오리온은 용암수의 국내 판매보다 해외 수출에 역점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리온은 지난 11월 26일 제품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빅4 브랜드(삼다수와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 농심의 백산수, 해태htb의 강원평창수)가 국내 물 시장 점유율의 60%를 차지하는 구도 내에서 ‘빅3’에 진입하는 것이 제주용암수의 첫 목표”라며 노골적으로 국내 판매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그러면서도 “제주용암수의 국내 판매는 해외 수출을 위한 초석일 뿐”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제주도 측은 “오리온이 당초 사업계획을 알려왔을 때는 국내 판매보다 해외 수출에 신경 쓰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국내 판매에 열을 올리겠다고 나섰다”며 “처음부터 국내에서 판매할 목적이었다고 했으면 허가를 안 내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온은 국내 인지도를 쌓고 판매량을 확보해야 수출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우선 국내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 측은 “수출할 때 국내 실적을 증명할 의무는 없다”고 반박한다. 코트라(KOTRA) 역시 “식품을 수출하면 해외 시장에선 식품의 위생과 관련된 자료를 필수로 요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자유판매증명서’를 발급한다”며 “하지만 판매량과 시장점유율 등은 필요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오리온은 해외에서 대표 브랜드인 ‘초코파이’로 이미 인지도와 유통 네트워크에 큰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음료 유통업 관계자는 “중국에선 위생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 생수가 인기가 높은데, 오리온의 진짜 타깃은 중국일 것”이라며 “우리나라 생수 시장 규모는 1조 원이지만 중국은 23조 원인데 중국에 수출할 때 ‘한국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올렸다’고 홍보해야 판매가 수월한 것을 노리는 것 같다”며 분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