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형사반장 “사망한 최 형사가 3시간 밖에 데리고 나가”…수사 핵심 관계자 “마녀사냥”
12월 11일 수원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이진동 2차장 검사가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재심과 관련한 브리핑 도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특히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반장이었던 심 아무개 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최 아무개 형사가 윤 아무개 씨(8차사건 범인)를 3시간 정도 밖에 데리고 나간 적은 있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최 아무개 형사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드러났을 때 최 형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12월 11일 화성 8차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8차사건으로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며 최근 재심을 청구한 윤 씨가 검찰에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수사 촉구 의견서를 제출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필요하다면 검찰, 경찰을 가리지 않고 당시 수사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8차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가정집에서 박 아무개 양(당시 13세)이 강간살해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검거된 윤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했다고 혐의를 부인하며 상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 기각됐다.
윤 씨의 재심을 맡은 변호인단(박준영 김칠준 이주희 변호사)은 11일 검찰 발표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증거가 조작된 정황을 공개했다. 변호인단은 특히 윤 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음모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이 찾아낸 감정결과표엔 16가지 핵종이 있지만, 최종 감정결과표엔 4가지 핵종이 빠져있다. 변호인단은 “40% 편차 내에서 일치하는 핵종의 수를 늘리기 위한 의도로 일부 핵종의 검사결과를 의도적으로 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이 찾아낸 감정결과표엔 16가지 핵종이 있지만, 최종 감정결과표엔 4가지 핵종이 빠져있다. 변호인단은 의도적으로 검사결과를 조작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당시 경찰 가혹행위에 이어 증거 조작 정황까지 드러났고 검찰이 직접 조사에 나선 가운데 당시 수사 핵심 관계자 A 씨를 만나 입장을 들었다. A 씨는 8차사건 당시 수사본부였던 태안파출소 소속이었다. 1990년 10월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윤 씨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고 지목된 최 아무개 형사와 장 아무개 형사를 부하직원으로 두고 8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
A 씨는 현재 장 형사에게 “언론 대응을 일절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경찰과 검찰 조사 대응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형사는 8차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윤 씨의 첫 자백을 받은 인물이다. A 씨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심 형사와 이 형사와도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A 씨는 “다 내 밑에 있던 식구들이니 내가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재 A 씨는 사실상 8차사건 수사 형사들의 대변인인 셈이다.
A 씨는 8차사건 당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A 씨는 “구타, 가혹행위 그건 말도 안 된다. 윤 씨는 체포 3시간 만에 자백했다”면서도 “당시 시대상을 미뤄봤을 때 ‘꿀밤’ 정도는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조사실에 직접 들어가 본 게 아니라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잠 안 자고 수사를 하기도 했다. 그때는 수사하면서 윤 씨만 안 자고 한 게 아니라 경찰들도 같이 안 자고 했다”며 “과거에는 흠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흠이 되는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 부분을 경찰과 검찰에서 파헤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A 씨는 “1980년대 초엔 범인을 만들라면 만들기도 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후반으로 오면서 그리고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경찰도 인권을 중요시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A 씨는 “죽은 최 형사는 몰라도 장 형사는 아주 여리고 착해서 누굴 때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장 형사가 윤 씨의 첫 자백을 받은 것에 대해선 “장 형사 고향이 형사계장과 같다. 형사계장이 동향인 장 형사를 특진시켜주려고 첫 자백을 받게 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왔으니 들어가기만 하면 자백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1월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 아무개 씨(52)와 이주희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가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한 윤 씨에게 조언 아닌 조언도 했다. A 씨는 “윤 씨는 재심에 유리하려면 장 형사가 아니라 최 형사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며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앞서 심 형사가 검찰 조사에서 최 형사의 가혹행위가 의심되는 정황을 진술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지만 윤 씨의 재심 청구는 특정 형사 개인을 두고 한 것은 아니다.
A 씨는 현재 경찰 수사를 불신했다. A 씨는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과 힘겨루기 하면서, 과학수사 능력을 보여주려고 옛날 일을 들췄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이춘재의 DNA가 조작된 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끝으로 “공소권도 없는 사건을 들춰내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다”며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고 결론이 나면 그때 가서 모든 진실을 소상히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장 형사와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11일 재심청구인 변호인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찰의 위법 수사 정황이 드러난다. 경찰은 수색영장 없이 윤 씨가 쓰던 방을 뒤졌고, 윤 씨의 현장 검증 또한 영장 없이 진행됐다. 윤 씨는 경찰에 1989년 7월 25일 연행돼 ‘감금 조사’를 받았다. 윤 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1989년 7월 28일 오후 11시 50분쯤 발부됐다. 3일 동안 윤 씨의 신병을 구속할 법적 근거가 없었던 셈이다.
한편 검찰은 11일 브리핑에서 “당시 수사 관계자의 신병 확보는 됐지만 아직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형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묻자 검찰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