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원불교 성지에서 영광에 핵폐기장 유치를 찬성 하는 주민들과 원불교 교인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원불교측에선 배후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원불교핵폐기장비대위 | ||
“정부의 사주를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얘기다.”(한국수력원자력)
전라남도 영광군이 시끄럽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의 발전 부문이 떨어져 나온 (주)한국수력원자력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사성폐기장 관리시설 건설의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인 전남 영광지역 주민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의 갈등으로 번진 문제는 영광에 성지를 두고 있는 원불교 종단까지 가세하면서 ‘민-민싸움’에서 ‘원불교에 대한 종교탄압’으로 까지 사태가 확대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원불교측이 지역 주민간의 내분으로 이 상황을 번지도록 한 이면에 ‘정부(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가 있다’는 ‘배후 조종설’까지 들고 나옴에 따라 갈등의 폭은 더욱 깊어질 조짐이다.
이에 따라 원불교측은 최근 언론에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광고를 내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원불교 종단측은 한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게재했다. ‘종교성지 난동에 대한 원불교 국내·외 교구장 성명서’라는 제목의 이 광고에서 원불교측은 “정부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원불교의 근원성지에 난입한 사건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자 종교탄압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번 난동의 배후세력인 산자부 장관이 퇴진할 것과 주동자 색출처벌, 핵 폐기장에 대한 정부의 대국민 정책 등을 요구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원불교가 이 성명 광고를 낸 직접적인 동기는 이달 1일 원불교의 종교 성지인 영광군 내 영산성지에서 벌어졌던 난동사건 때문. 영광에 핵 폐기장 관리시설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 주민들이 원불교의 성지에 난입, 양측간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유치를 두고 지역 내 주민과 주민, 주민과 종교단체, 주민과 정부, 종교단체와 정부간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핵 폐기물 처리를 두고 고심하던 정부는 폐기물 관리시설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전남 영광군을 가장 유력한 지역 중 하나로 택했다. 이유는 이미 이 지역에 핵 발전소 6개가 들어서 있다는 것 때문.
그러나 정부의 계획이 전해지자 지역 주민들은 핵 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끊임없는 공방을 벌여왔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방사성폐기장 관리시설 유치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우리 지역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핵 폐기장반대 영광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구성해 ‘절대 세울 수 없다’고 맞섰다.
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핵 폐기장’이라는 문제를 두고 찬반론으로 갈린 것. 이들의 주장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찬성파들은 이미 이 지역에 핵 발전소가 가동중이라는 점을 내세워 이 기회에 정식으로 핵 폐기장 관리시설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 폐기장 유치위의 강구현 사무국장은 “핵 발전소가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됐고, 실제로 공장이 생긴 지 20여 년 동안 폐기물이 영광군에 저장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확실히 폐기장 관리시설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은 핵 폐기물 관리시설은 안전성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핵 폐기장 반대 비대위의 노병남 사무처장은 “최근 (주)한국수력원자력이 일본의 사례를 들며 안전하다고 TV광고 등을 하고 있으나, 이는 전부 다 거짓말”이라며 “안전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핵 폐기물과 함께 살고 싶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얼핏 이 문제는 단순히 안전과 환경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보이지만, 그 내막에는 정부가 핵 폐기물 관리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대해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부분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간의 입장 차이도 이면에 깔려 있다.
정부는 영광군을 후보지로 선정하기에 앞서 향후 10년 동안 핵 폐기물 관리시설을 세우는 지역에 대해서는 총 2조원대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지역발전의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자금을 앞세운 사기적 행각’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것.
그러나 지역 주민들간의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던 이 문제가 느닷없는 종교탄압으로 번진 것은 지난 1일이었다. 원불교는 그동안 핵 폐기장건립 반대 비대위와 함께 핵 폐기장 시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시했다.
이날은 핵 폐기장 시설 건립에 찬성하는 유치위원회가 영광군청 앞에서 집회를 가진 날이었다. 유치위의 관계자에 따르면 유치 찬성 집회를 하던 중에 원불교는 영광지역 주민도 아니면서 무슨 권리로 찬성이다 반대다 하는 입장을 표시하느냐는 얘기가 오갔고, 이를 따지기 위해 원불교 성지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이 종교탄압 주장의 빌미가 되고 만 것. 원불교 하명규 기획조정위원장은 “7백여 명의 사람들이 16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난데없이 영산성지에 침범했고, 이를 말리던 원불교인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 위원장은 “이들은 2시간에 걸쳐 종교 유적지를 마구 파손하는 등 난동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경찰도 20명 이상 다쳤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치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원불교측의 과장이 지나치게 심하다”며 “유치위측이 원불교측 인사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뜻을 전했으나, ‘저기 거지들 들어온다’ 는 등 폭언을 해 목소리를 높이던 중 약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유치위측은 번번이 반대를 하는 원불교에 대해 ‘지역 주민도 아니면서 왜 지역 일에 끼어드느냐’는 시선이 이 같은 문제로까지 불거진 것.
그러나 이 문제는 곧장 원불교의 최고 협의회에 전달됐고, 원불교측은 강력 대응 방침을 정했다. 특히 이들은 영광에 핵 폐기물 시설을 짓기 위해 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유치위원회를 배후에서 조정했으니, 엄밀히 말해 정부가 종교단체를 탄압한 것이라는 입장을 펴고 있다.
원불교 관계자는 “이번 일은 단순히 지역 주민들이 종교 성지에 난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날 난동을 부린 사람 중에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부 배후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전대욱 과장은 “정부가 반드시 영광에 이 시설을 세워야한다는 입장도 아닌데 우리가 그런 치졸한 수법을 쓰겠느냐”며 “지역 주민들의 갈등이 정부로 비화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