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불어나자 주요 계열사 자산 매각…실적·실탄 탄탄한 CJ ENM 위상 높아져
CJ그룹의 상징이자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최근 자산 매각과 유동화를 통해 1조 1328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본사 등을 이주시켜 CJ타운을 건설하려던 가양동 부지 매각 대금 8500억 원을 포함해 CJ인재개발원 일부를 매각해 528억 원,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형태로 구로공장을 처분해 2300억 원을 끌어모았다. 가양동 토지 매각 대금은 내년 초에 2000억 원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매각 작업은 모두 12월 들어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CJ그룹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전이라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서 CJ푸드빌은 지난 6월 2025억 원에 투썸플레이스를 매각했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1004%까지 치솟으면서 알짜로 평가받던 투썸플레이스 지분을 팔았다. 해외 극장 사업 진출을 했던 CJ CGV 역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자금을 유치했다. CJ제일제당의 부동산 매각까지 더하면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당장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자산 유동화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매각 대금은 대부분 빚을 갚는 데 쓰일 전망이다. 당초 미래 사업 투자 등에 일부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전면 수정했다.
CJ그룹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이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부담 해소에 나섰다. 사진=CJ제일제당
# 당장 내년 갚아야할 차입금만 1조 4000억 원
이재현 회장은 2017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2020년까지 매출 10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 해외 매출 비중 70% 이상을 목표로 하는 ‘그레이트 CJ’ 전략을 추진했다. CJ는 지난해 매출 30조 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목표 100조 원을 달성하려면 매출을 3배 넘게 끌어 올려야 했다. 기존 주력 사업인 바이오·식품 등만으론 달성이 어렵다. CJ그룹의 선택은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였다.
CJ그룹은 생산라인 증설과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웠다. 2017년 브라질 단백질 소재 기업 셀렉타(2100억 원)와 지난해 미국 냉동식품 2위인 쉬완스(1조 5000억 원)까지 최근 3년간 M&A만 11건을 진행했다. 문제는 대규모 자금이 짧은 시간에 투입되면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자금부담이 뒤따랐다는 점이다. CJ그룹과 투자은행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CJ그룹 지주사인 (주)CJ의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16조 6000억 원이었다. 2015년 6조 8000억 원에서 약 2.5배 늘었다.
M&A작업에 앞장섰던 CJ제일제당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7조 700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11조 원대를 기록했다. 반년 만에 40%가량이 늘었고, 그룹 전체 차입금의 60% 수준으로 올랐다. 나머지 CJ그룹 계열사 13곳의 차입금 역시 적은 수준은 아니다. CJ그룹 재무제표 등에 따르면, 계열사들이 당장 내년에 갚아야 할 차입금은 모두 약 1조 4000억 원이다. 이 때문에 신용평가사와 증권가에선 올해 CJ그룹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CJ그룹은 M&A에 따른 성과를 통해 재무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쉬완스의 매출이 올해 6월 말부터 CJ제일제당의 실적으로 인식돼 상반기 매출 약 8500억 원, 이익 약 250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룹 전체의 재무부담을 덜어낼 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M&A 기업들이 본격적인 성과를 내고 빚 부담을 덜어내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CJ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최근 자산 매각 등 긴급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그밖에 지주사 CJ와 CJ제일제당은 인력도 줄이고 있다. 지주사 CJ는 인력 400명 중 절반을 계열사로 발령 냈다. 과거 지주사 일부 팀을 CJ제일제당 등 계열사로 이동시켜 인력을 조정한 적은 있지만, 지주사의 거의 모든 팀별 인원을 줄여 계열사로 보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CJ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아니다. 앞서 M&A 등을 추진하면서 지주사 인력을 확대했었는데, 투자 작업이 마무리 단계고 앞으로는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위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J그룹은 기존 공격적인 투자 경영에서 내실 다지기와 수익성 중심의 경영으로 선회했다. 사진=일요신문 DB
# 위기에 빠진 그룹 ‘구원투수’로 등판한 CJ ENM
그룹 전체가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계열사 중 CJ ENM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을 비롯한 일부 계열사들이 빚에 허덕이는 반면 CJ ENM은 돈다발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CJ ENM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3조 518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 급증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2530억 원을 기록해 39% 상승했다. CJ헬로를 LG유플러스에 매각하면서 8000억 원을, 스튜디오드래곤 지분을 넷플릭스에 팔아 1080억 원을 손에 넣었다.
CJ헬로 매각 대금은 당초 프리미엄 IP(지적재산권) 확대 등 콘텐츠 사업 강화와 디지털·미디어 커머스 사업 확대에 사용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룹 경영 환경이 바뀌면서 이 자금은 대부분 차입금을 갚는 데에 사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상 CJ그룹 차입금 상환의 열쇠는 CJ ENM이 쥐고 있는 셈이다.
특히 CJ제일제당이 CJ ENM에 매각한 부동산은 CJ인재개발원 두 동 가운데 한 동으로 고 이맹희 회장의 자택이 있던 부지다. 현재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제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CJ그룹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갖는 의미가 큰 장소다. 이를 두고 일부 CJ그룹 관계자들은 CJ제일제당은 그룹의 ‘맏형’이고, CJ ENM은 그룹의 ‘미래’로 평가한다. CJ ENM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 변화도 관심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압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미경 부회장은 올해 들어 점차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여전히 CJ그룹의 재무부담은 크지만 이번 자산 매각과 인력 조정 등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CJ그룹은 순차입금 규모를 연내 8조 원대로, 내년에는 7조 원대로 낮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18년 하반기와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간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거론됐던 재무부담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 위기 등은 일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