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들만 꼬리자르기 식, 검찰 조직에 배신감…청와대 대응도 미숙 평가
김태우 전 수사관은 지난 7월 공익제보센터를 개소하고 유튜브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좋은 형님이고 후배들을 잘 챙기셨던 분입니다.”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과 고인이 된 백 아무개 수사관은 다른 듯 같다. 두 사람은 의도치 않았지만 정권을 뒤흔드는 뇌관으로 부상했다.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파견근무를 하다가 2018년 11월 검찰로 복귀했다. 그의 폭로는 정쟁의 중심이 됐고 1년 동안 검찰 수사의 큰 줄기가 됐다.
6급 공무원이던 김 전 수사관은 우윤근 전 주 러시아 대사의 금품 수수 의혹 보고서를 작성해 특감반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개인 비위라며 김 전 수사관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후 김 전 수사관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유 전 부시장 감찰무마사건 등을 폭로했다.
논란은 걷잡을 수없이 커졌다. 의혹이 꼬리를 물자 청와대는 개인을 대상으로 연일 입장을 내놨다. 입장문에는 ‘개인의 일탈’이며 비위 공무원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전방위 압박도 이뤄졌다. 청와대는 대검찰청에 김 전 수사관에 대한 징계요청을 했다. 그럼에도 김 전 수사관이 반발하며 폭로를 이어가자 추가 징계도 요청했다. 김 전 수사관 개인을 상대로 청와대는 법정 대응까지 나섰다.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임종석 실장 이름으로 김 전 수사관을 고발했다.
김 전 수사관은 징계와 청와대 해명에 반발했다. 대검은 감찰을 거쳐 징계위에 김 전 수사관의 해임을 요청했다. 김 전 수사관은 대검찰청의 징계에 대해 법원에 중지 요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2019년 1월 김 전 수사관은 결국 해임됐다.
김 전 수사관과 함께 일했던 지인들은 입을 모아 ‘청와대와 검찰이 너무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전 수사관이 반정부 유튜버로 활동하는 것도 억울함과 배신감이 큰 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수사관의 한 지인은 “김 전 수사관이 독하거나 모진 성격이 아닌데 상황에 몰려 이렇게까지 왔다. 본인으로선 지금의 노선을 선택하게 떠밀린 셈”이라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태우 형님은 따스하고 후배들이 좋아했다. 사석에서도 종종 봤는데 일이 이 지경까지 되고 다니 선뜻 먼저 연락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수사관들을 지키지 않는데 대해 불만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김 전 수사관과 고인이 된 백 아무개 수사관을 떼놓고 보기 어렵다.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가 한창이던 검찰은 전선을 확장했다. 동부지검에서 김 전 수사관이 고발했던 유 전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사건을 꺼내들었다. 또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해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등 고발 사건도 가져왔다. 2019년 11월 말께 중앙지검은 울산지검 사건을 가져왔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백 수사관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중앙지검 조사가 예정된 날 백 수사관은 지인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울산지검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백 수사관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백 수사관의 사망에 검찰 내부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검찰은 즉각 중앙지검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별건 수사로 백 수사관을 압박한 바가 전혀 없고,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참고인이던 백 수사관의 유서와 휴대폰을 이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급히 확보했다.
앞의 검찰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백 수사관이 검찰조사로 상당한 압박을 받아서인 것으로 본다. 친정이 이렇게 조직원을 압박하고 궁지로 몬 게 속상하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파견까지 나가고 승진가도에 오를 것 같던 수사관들만 꼬리자르기식으로 당했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수사관들이 친정인 검찰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감지됐다.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검사와 달리 수사관은 조직을 나가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더욱 조직에 충성하고 성실한 게 검찰 수사관들인데 검찰이 끝내 이들을 챙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두 수사관에 대한 검찰의 대응방식이 곧 검사와 수사관의 계급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의 대응도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미스럽게 청와대를 나가는 직원을 다독이지 못한 데서 화를 자초했다는 것.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태우 전 수사관 논란에 대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한 바 있다. 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비위 혐의가 있는 제보자 김태우의 진술에 의존해 검찰이 청와대를 거듭 압수수색한 것은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