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 후보가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관련 비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유이긴 했지만, 세월호 사건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없었다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가 했던 ‘고맙다’는 말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된 뒤 그 빚을 갚는 게 도리다.
유족들이 바라는 일은 딱 하나, 제대로 진상을 규명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도 취임 전에 이루어졌으니, 당장 조사팀을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섰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청와대로 유족을 초청해 같이 눈물을 흘린 게 한 일의 전부였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대통령은 세월호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이건 대통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민 단국대 교수
혹시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이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어서다. 이게 억측이라 해도 대통령이 진상규명의 타이밍을 놓친 것은 분명하다. 지지율이 높던 정권 초기에 이런 일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임기의 절반을 그냥 흘려보냈으니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리는 게 아니겠는가.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외쳤던 이유는 검찰이 정권의 눈치만 보는 힘없는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검찰이 최서원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수만의 시민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난 이후였지 않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도 그래서 제기됐다.
행정부 소속 공무원인 검찰이 정권에 반하는 수사를 할 수 없으니, 고위층을 수사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권 초기 검찰개혁에 별다른 뜻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특수부를 확대해 적폐수사에 전념하게 했고, 그 결과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에 보냈다. 이 시기 문 대통령 극성 지지자(문빠) 누구도 검찰을 욕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에 임명됐을 때도 문빠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제 자한당 다 죽었어!’가 베스트 댓글에 오를 정도였다.
상황이 돌변한 것은 윤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면서부터였다. 검찰은 결국 조 전 장관의 부인을 구속시키고, 조 전 장관을 불구속기소 했다. 이 기간 내내 문빠들은 검찰을, 그리고 윤 총장을 비난했다. 청와대도 여기에 합세했다.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난 시점에서 청와대와 검찰과 성명전을 벌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급기야 그들은 검찰개혁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리는 일반적인 상식과 백팔십도 달랐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으니 그들의 힘을 빼앗아야 해.’ 이게 그들이 말하는 개혁의 목표였고, 공수처는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결국 공수처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 추가된 채로 말이다. 여기서도 타이밍의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임기 초에 검찰개혁을, 그리고 공수처를 만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이유가 뭐든 대통령은 그 시기를 놓쳤다.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질문도 한번 해보자.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고 자유한국당이 우병우를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민 단국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