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인기·파급력 먼저 입증 후 방송가 ‘역수입’…일회성 문제는 여전한 숙제
가수 양준일이 지난 12월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2019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 - 나의 사랑 리베카, 나의 사랑 양준일’ 행사 및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1990년대 가수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방영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부터다. 토토가 이후 이들은 각종 케이블·종편 방송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이들의 활약은 단순히 방송 출연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술집, 식당 등도 그들의 노래와 1990년대의 분위기를 내세우며 영업에 나서는 등 대중에게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들의 방송 활동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치거나 방송 이후 불거진 논란으로 중단되는 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출연한 연예인들의 일부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잊혔으며, 오랜만에 정식 방송 출연이 성사됐어도 그 직후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는 등 물의를 빚어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탓에 당시 방송가 관계자들은 “오래도록 연예계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데려왔다가 일이 불거지면 프로그램까지 욕을 먹는다”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케이블이나 종편 방송을 제외하고 ‘레트로 스타’들을 적극 기용하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처럼 파급력이 큰 방송에서 먼저 나서서 대중의 반응을 확인한 뒤에야 다른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결정하는 식이었다.
그룹 태사자. 사진=김형준 인스타그램
그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름부터다.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불리는 SBS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방송 프로그램 전문 유튜브 채널(SBS 케이팝 클래식)이 그 매개체가 됐다. 과거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이 채널은 개설 초기만 해도 큰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다른 방송사에서도 몇 번 시도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어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방송가도 예상하지 못한 ‘대박’이 터졌다. 1990년대 후반 세기말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가요 프로그램이 30~40대에게는 향수를, 10~20대에게는 경악이라는 상반적인 감정을 한 번에 불러일으키면서 온라인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끈 덕이었다. 초창기에는 시청자 수가 최대 50명도 되지 않던 채널이 순식간에 동시 접속자 2만 명을 기록하는 등 관리자도 놀랄 정도의 반응이 이어졌다.
데뷔 28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가수 양준일(51)도 온라인 탑골공원의 수혜자다. 그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무대 영상이 올라오면서 ‘시대를 잘못 탔던 비운의 가수’라는 별칭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온라인 탑골공원이 시작된 2019년 8월, 양준일의 무대 공연이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폭발했다.
이들의 호응이 그대로 방송가로 옮겨지면서 JTBC 음악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을 시작으로 ‘뉴스룸’ 등 방송 출연에 이어 CF, 패션업계에서도 양준일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이 같은 호응을 발판 삼아 지난해 12월 31일 데뷔 이래 첫 팬미팅을 한 양준일은 현재 국내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탑골공원’ 방송 장면. 사진=SBS 케이팝 클래식 유튜브 채널 캡처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1997년 데뷔 보이그룹 태사자 역시 온라인에서 먼저 관심을 끈 가수다. 세기말 레트로 스타들에 관심이 쏟아질 무렵인 2019년 9월께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H.O.T.나 젝스키스가 ‘무한도전-토토가’를 통해 다시 한 번 무대를 채운 것을 본 대중이 다른 아이돌 그룹들의 현황을 궁금해 하면서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태사자이기도 하다.
양준일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방송가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연예계 활동을 접었던 리더 김형준도 매니지먼트사와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본격적으로 정규 방송 활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출연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방송가에서는 ‘토토가’ 이후 또 한 번 불어닥친 레트로 열풍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토토가’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방송에 앞서 온라인으로 이미 충분한 인기와 영향력을 입증한 뒤 역수입되는 것이기에 이전보다 위험 부담이 적어졌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이 꼽은 장점이다. “이 스타를 출연시키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라는 첫 번째 걱정을 덜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온라인상 인기로도 덮을 수 없는 ‘일회성’과 ‘단발성’ 문제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휘발성이 강한 방송계의 특성상 한 명이 뜨고 나면 곧바로 또 다른 ‘뉴 레트로 스타’를 찾아야 한다. 오히려 꾸준히 방송을 해 왔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연예인들 가운데서 새로운 얼굴을 찾는 것보다 힘들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한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는 “일반적인 대중이 원하는 것은 옛 스타가 추억 속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서서 추억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므로 향수와 호기심이 증발하고 나면 그들의 앞으로 행보엔 큰 흥미가 없다”며 “그러니 예전과 달리 온라인상으로 먼저 인기가 입증됐다 하더라도 업계에선 이전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만 반짝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