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로 후임 총리 인준 절차 미뤄질 가능성 커…정치적 부담에도 16일 전 사퇴 방침
2019년 9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직자인 이낙연 총리가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1월 16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그동안 출마 여부, 지역 등을 놓고 장고를 거듭했던 이 총리는 정치 일번지 종로 출마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이 총리는 지난해 12월 30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종로 출마가 맞느냐’는 질문에 “대체로 그런 흐름에 제가 놓여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이 총리 측근으로 통하는 한 민주당 인사도 “당초 이 총리는 종로 출마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종로를 지역구로 하는 정세균 의원이 후임으로 되면서 자연스레 논의가 흘러갔고, 이 총리 역시 당이 원한다면 굳이 마다하진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 친문계 의원 역시 “이 총리의 종로 출마는 확정적이다. 당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총선 전략을 세우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스텝이 꼬일 전망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탄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리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극심한 마찰을 빚은 게 이유다. 의원직 총사퇴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는 한국당에게 정세균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정 후보자 인준 절차 진행을 여당과의 협상카드로 내밀 것이란 관측까지 나돈다.
곤란해진 건 이 총리다. 후임 인준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총리가 직을 내려놓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총리가 이런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출마할 경우 자칫 ‘국정보다 본인 선거가 먼저냐’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리 자리는 마음대로 사퇴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국정 공백이 염려되는 상황 속에서 사퇴한다면 국가는 내팽개치고 본인 선거에만 눈이 팔려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의 친문 의원도 “총선에 나올 경우 상대 후보가 이런 프레임으로 이 총리를 계속 공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우 박근혜 정부 총리직을 맡았을 때 사의를 표명하고도 후임 총리가 인준되지 않아 계속 재직한 바 있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한 김병준 후보자가 야당의 반발로 인준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였던 정홍원 전 총리 역시 비슷한 사례다. 그는 국무총리로서 약 2년간 재임했지만 그 기간 중 절반 정도는 후임 인준 무산으로 인한 것이었다. 정 전 총리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사임할 뜻을 밝혔지만 후임 후보였던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낙마하면서 임기가 늘어났다. 그는 결국 이완구 전 총리 인준이 마무리 되면서 총리 공관을 떠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선 이 총리 사퇴가 힘들 경우 선대위원장을 맡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플랜 B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이 총리가 지역구 유세를 다니며 지원사격을 하는 것은 그동안 여권 내에서 검토됐던 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국회 상황상 이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직자가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위한 사퇴 시한은 2020년 3월 16일까지다. 하지만 과연 이때까지도 총리 인준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온다.
이 같은 물음은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법 등을 통과시킬 때처럼 4+1 협의체가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배경으로 한다. 1야당인 한국당이 작정하고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한다면 민주당으로선 다른 야당의 협조 없인 마땅한 대책이 없다. 한국당 내에선 이 총리 발을 묶어두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최대한 늦추자는 꼼수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이런 논란을 뒤로 하고 이 총리는 1월 16일 전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를 염두에 둔 강공으로 읽힌다. 앞서의 이낙연계 민주당 인사는 “솔직히 말하면 이 총리도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지 않으면 대권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라면서 “당 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만 이젠 본인의 일정과 전략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