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독학으로 입단해 한국랭킹 1위 올라…“지금까지 압박감 느낀 상대 거의 없다”
한국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2월 10일부터 박정환 9단과 LG배 결승 3번기를 치른다.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건 2010년이다. 초등학교 4학년 꼬마가 어린이 대회 4관왕(정현산배, 대한생명배 어린이국수전, 조남철국수배, 전국체전)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신진서는 한 해 바둑대회를 평정하고 다시 어린이 대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후 아마강자들과 실전트레이닝을 하며 입단을 준비한 잠룡의 세월이었다. 입단 직전에는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수련했다. 한 원장은 “처음 봤을 때 이미 입단할 실력이었다. 도장에 있는 5개월 동안 계속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 보통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실력이 정체되는데 진서는 그런 면이 없었다. 한마디로 괴물 같았다”고 표현했다.
프로가 되어선 하찬석국수배 영재바둑대회를 3연패했다. 메이온배 신인왕전도 우승했다. 본격기전은 2015년 렛츠런파크배에서 첫 우승, 2017년 글로비스배, 2018년, 2019년 GS칼텍스배 우승, 2019년 맥심배 우승 등 여러 국내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올해 바둑리그에선 셀트리온팀 1지명으로 전승가도를 달려 KB리그의 역사까지 새로 쓰고 있다. 국내 최강을 자랑하는 실력이지만, 아직 세계대회 우승이 없는 점이 아쉽다. 2020년은 LG배, 삼성화재배와 더불어 응씨배, 춘란배, 몽백합배, 바이링배, 천부배까지 7대 메이저 기전이 모두 열리는 해다. 당장 신진서는 박정환과 2월 10일부터 LG배 결승 3번기를 치른다. 만약 이기면 만 19세 우승기록이다. LG배 우승에 대한 열망을 수치로 표현해달라고 묻자 신진서는 바로 “120%”라고 답한다.
2010년 초등 4학년 신진서는 어린이 대회 4관왕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한생명배 어린이 국수전 결승 대국 장면.
지난해 중국갑조리그와 올해 KB바둑리그 등 각종 리그 성적이 남다르다. 신진서는 “최근 리그전 대국이 많기 때문이다. 리그와 토너먼트를 가리지 않고, 모든 대국에서 더 집중하고 잘 두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계속 이기다보니 내용까지 좋아지는 느낌이다. 지난해 중국리그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올해도 갑조리그는 같은 팀(쑤보얼 항저우)과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2020년 신진서의 카톡 프로필(상태 메시지)에는 ‘참을 인’자가 있다. 대국에서 패하고 분한 마음을 참기 위해 썼다고 한다. “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실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면 참기 어렵다. 화가 안 날 수 없다. 한편으론 이때가 마음이 다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대국도 한 판 지면 잠도 못 잤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마음 수련이 잘돼서일까? 신진서는 “요즘은 잘 지지 않으니까…”라면서 웃었다.
공부할 때 인공지능을 많이 참조하지만, AI와 대국 거의 안 한다고 한다. “사고방식과 리듬이 달라 대국은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전체 승률이나 참고도는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 의존해선 안 된다”면서 “최고의 공부는 실제 사람과 두는 대국이다. 역대 초일류 기사들은 바둑을 대하는 자세와 생각의 깊이가 달랐다. 나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2013년 영재정상바둑대결에서 마주한 ‘양신’. 왼쪽부터 신민준, 신진서.
2020년 ‘양신’의 첫 대결은 1월 27일 최고기사 결정전 개막대국이었다. 왼쪽부터 신민준, 신진서.
신진서는 몸무게가 65kg이 안 된다. 키는 180cm를 넘긴 마른 몸매다. 그래도 저음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아주 굵직하다. “지금까지 바둑을 두면서 압박감을 느낀 상대는 거의 없다. 예전 이세돌 사범님에겐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에겐 공식대국은 많이 졌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이겨봐서 부담감이 별로 없다. 양딩신 9단이 현재 바둑기술면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다. 그래도 두려움 따윈 없다. 과거 천야오예 9단이 껄끄럽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심리적으로 넘어야 할 상대는 박정환뿐일까? LG배 결승을 앞둔 심정을 물었다. “그동안 많이 졌다. 결국 실력부족이다. 돌이켜보면 박정환 9단과 두면 마음이 급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 결승은 좀 느긋하게 두면서 생각하는 방향을 좀 다르게 가져보겠다. 자신감은 필수지만, 과도하면 독이 된다. 편한 마음으로 내 바둑을 두겠다.”
박주성 객원기자
‘양신 신진서·신민준 대결’ 과거와 현재 초반 50수 1보 [1보] 신진서 입단결정국, 초반 50수 2012.7.16. 제1회 영재입단대회 ●신민준 ○신진서, 236수 백불계승 신진서는 입단 결정국을 신민준과 두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을 물으니 가장 먼저 이 대국을 꼽으며 “복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흐름은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한다. 올해 2월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7년 7개월 전 대국이다. 당시 최고 영재들의 결전답게 초반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백14를 따내지 않고 폭을 넓힌 흑21은 당시에 두어진 고급행마였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AI들은 한술 더 뜬다. 흑21 대신 A로 고공비행하거나 심지어는 손 빼고 바로 백22자리로 바로 걸치라는 의견도 있다. 빠르다. 백50 다음 AI 추천수도 삼삼침입(C)이다. 이때까진 52.5 대 47.5로 선착의 효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중반 전투에서 신진서가 승기를 잡아 먼저 입단에 성공했다. 1패를 안은 신민준은 다음 날 열린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나 ‘양신’이 입단 동기가 되었다. 2보 [2보] 2020 첫 양신대결, 초반 50수 2020.1.27 제1회 최고기사결정전 ●신진서 ○신민준, 229수 흑불계승 함께 프로가 된 ‘양신’은 공식대회에서 총 스물두 번 겨뤘다. 전적은 신진서가 18승 4패로 많이 앞선다. 작년 말은 KBS 바둑왕전 결승전에서 격돌했다. 2020년 첫 만남은 이 대국, 최고기사결정전 리그 개막전이었다. 초반은 현대포석의 완결판을 보여준다. 소목 날일자 걸침, 흑7과 누르기와 흑11 입구자는 고전적인 행마지만, AI가 재조명해 되살아난 행마다. 백12와 같은 날일자에 손 빼고 흑13으로 빈 삼삼에 들어가는 수도 최신 트렌드. 이후 좌상귀 수순도 이젠 정석이다. 백은 귀를 차지하고, 흑은 중앙 두터움을 가졌다. 3보 [3보] 참고도 신진서와 신민준, ‘양신’은 현재 한국바둑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2020년 1월 랭킹은 1위가 신진서, 2위가 박정환, 3위가 신민준이다. 이 바둑은 신진서가 이겼다. 초반 백에게 이상행마가 나오면서 승률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후반까지 그 차이가 거의 그대로 갔다. 우변에서 백11이 너무 기분만 낸 수. 백A, 흑B를 교환하고 백C처럼 호구로 지키면 아주 긴 바둑이었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