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00만 원 미만 기사 150명 넘어 뭔가 해야겠다 생각…기전부터 만들 것”
2020년 1월 용성전 예선에 출전한 차민수.
1970년대 초 아마바둑계를 평정하고, 대학교 3학년에 프로 입단했다. 이듬해(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사업을 일으켰고, 포커 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쳤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주름잡으며 한 해 100만 달러를 벌던 시절도 있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긴 후엔 미주바둑협회에서 활동하며 다시 반상에 눈길을 돌렸다. 중국이 한국과 정식 국교를 맺기 전부터 중국바둑계 고위인사들과 친분을 쌓았고, 중국에 ‘우정배’를 창설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동안 한화 6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했다. 당연히 중국 내에선 최고의 타이틀기전이었다.
드라마 ‘올인’ 촬영 당시 이병헌과 함께. 사진=차민수 제공
“당시 중국 바둑계는 대회 총예산에서 협회가 9할을 가지고, 프로기사 상금과 대국료로 1할 정도 지급하는 구조였다. 내가 후원액 전부를 상금으로 주는 대회를 제안했다. 천주더, 화이강 등 집행부에선 모두 난색을 보였다. 그래도 ‘상금이 커져야 나중에 어린 천재들이 모인다’라고 설득했다. 결국 주관료 또는 운영비를 따로 30% 더 주는 조건으로 매년 1억 5000만 원씩 지원했다.”
중국 바둑계 원로들은 아직도 어려울 때 도와준 ‘펑요(친구)’ 차민수를 잊지 않고 있다. 천안문사태 직후 중국기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10년 넘게 떠돌이 프로기사 생활을 하던 장주주·루이나이웨이 부부를 도와서 한국에 정착하게 도와준 사람도 차민수다. 5년 넘게 중국기원을 설득하고, 한국 기사들에게 고개 숙였다. 그 결과 부부는 1999년부터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정착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아들 에디 차, 차민수, ‘코리안좀비’ 정찬성 선수. 사진=차민수 제공
최근 프로기사 최철한 9단도 포커플레이어 겸업을 선언했다. 차민수는 “포커는 입단대회가 없다. 바로 실력으로 말하는 세계다.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승률 80%는 넘겨야 한다. 연예인은 ‘끼’, 바둑에는 ‘기재’가 있다. 기재가 없으면 프로기사가 되어도 거기까지다. 바둑도 정상권에 갈 수 있는 인재는 입단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다. 포커에선 ‘카드센스’라 부른다. 카드 한 장만 보고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미래를 읽는 재능이다. 조훈현 같은 천재기사도 카드에는 재능이 없었다. 몇 번 해보더니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걸 느끼고 안 하더라. 최철한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하지만 승부가 정밀한 바둑기사 중에 카드센스가 있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라고 설명했다.
혹시 최철한을 내제자(?)로 받을 생각이 없는지 묻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일류가 두 시간 티칭에 500달러 받을 때 내가 1만 달러 정도 받았다. 이것도 1970~1980년대 이야기다”라면서 웃었다. “앉아 있는 자세, 손짓만 보면 실력을 알 수 있다. 포커도 진짜 프로가 되려면 바둑만큼 공부량이 필요하다. 공부 방법도 중요하다. 마음을 먹어도 전문용어로 가득 찬 영문 서적을 이해할 능력이 있을까? 어학실력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의 조언 한마디 유무에 따라 실력은 천지 차이가 난다. 현재 실전포커는 20여 종목이 있다. 한 과목을 숙달하는 데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이후 다른 종목 습득에 기간은 줄어든다. 카드센스가 있는 이가 5년 넘게 집중해서 파고들면 수입은 바둑보다 나을 수 있다.”
차민수는 바둑과 포커, 두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다. 2006년도 포커 월드시리즈. 사진=차민수 제공
되물었다. 기사회장이 무슨 힘이 있나, 뭘 할 수 있겠나. “기전부터 만들겠다. 우선 다섯 개 정도 생각하고 있다. 모두 예선 대국료가 있는 대회다. 프로라면 대국하면서 최소 생계는 유지해야 한다. 새로 만드는 기전은 참가자격을 세분화하겠다. 나이와 기량에 따라 대국료를 받고, 나간 보람이 있는 대회가 절실하다. 물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 삶의 자산이 사람이다. 재벌과 권력가와 친해도 평생 누구에게 부탁하고 산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인맥을 모두 동원해 대회부터 만들겠다.”
제도 개선도 이야기했다. “기사회장은 프로기사 권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생계형이 되어선 안 된다. 월급을 받으면서 기원에 입바른 소리를 하긴 어렵다. 알아보니 기사회장이 받는 급여와 활동비 등도 다 합하면 대략 몇천만 원이 나온다. 이 금액도 전액 기전 개최비용으로 보태겠다. 곧 프로기사 400명 시대가 온다. 프로기사가 은퇴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야 한다. 바둑리그 감독과 TV해설, 심판까지 현역 프로기사가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중국기원과 협의해 중국리그 문호도 더 열겠다. 궁극적으로 갑조리그를 능가하는 새로운 리그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목표다. 기사회장이 되더라도 독단으로 처리하진 않겠다. 각 연령층을 대표하는 부회장 자리를 따로 만들어 모든 사안을 함께 논의하겠다”라고 말한다.
당선확률을 묻자 “5 대 5”라면서 웃었다. ‘5 대 5 승부다’라는 임전 소감은 대국 전에 차민수가 가장 즐겨 쓰는 멘트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