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EY한영 종속회사 회계 처리 이견…주총 시즌 앞두고 기업들 긴장
한미약품그룹이 회계처리를 놓고 감사인과 이견을 보인 가운데, 주총 시즌을 앞둔 기업들이 유사 사례 발생 가능성을 두고 노심초사 중이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미약품 회계논란 배경은 ‘지배력’
한미약품그룹 논란은 한미약품의 회계 처리를 두고 발생했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 41.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한미약품을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사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새롭게 한미사이언스 외부감사인으로 선임된 한영은 그간 관계사로 분류해온 한미약품을 종속회사로 바꿔 연결처리해야 한다고 봤다.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에 대해 실질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
반면 한미사이언스는 그간 지분율이 50% 미만인 한미약품을 관계사로 분류한 것은 문제가 없었다고 맞섰다. 한영의 해석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가 8년 치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한다. 이에 한미 측은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이 공동운영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연석회의’에 판단을 요청했다. 더욱이 이 연석회의에서는 감독‧감리 당사자인 금융감독원도 참여해 금융당국 의견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의 첫 번째 질의는 지난해 말 반려됐다. 재질의를 통해서야 지난 1월 29일 연석회의에서 관련 내용이 논의됐다. 다만 연석회의에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회계기준원은 한미와 한영에 대해 ‘회계기준서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발송했다.
회계기준원의 한 관계자는 “지배 여부는 여러 부분을 모두 확인해봐야 하므로 질의서만 봐서는 사실과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지배력에 따른 연결처리 여부는 기업의 판단이고, 감사인은 이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계기준원이 감독당국이 아니라 조사권한이 없고,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기업이 제출한 질의서를 보고 하나의 기준을 내세워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미사이언스는 회계당국이 중재를 통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질의를 넣게 된 배경에 한영과의 이견도 있지만, 한영 입장에서도 새로운 감사인으로서 추후 지정 감사제로 오는 감사인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 선제적으로 그간 해온 것을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며 “노력하면서 갈등이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절차 중 하나로 질의했다. 결과적으로 회계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한영이 한미 입장을 수용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오는 3월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비슷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은 남았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한미약품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사외이사 재선임이 이번 회계논란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 한영은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을 종속회사로 변경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한미약품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미약품 등기임원 8명 가운데 3명이 한미사이언스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미약품 사태, 빙산의 일각? 과도기 혼란 예상
재계에서는 한미약품 사태와 비슷한 사례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금융당국 또한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회계개혁 정착지원단’ 회의를 개최해 전‧당기 감사인 간 의견불일치 문제에 관한 현황을 확인하고, 갈등 최소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당기 감사인 간 의견불일치 문제는 감사인 교체가 빈번해지면서 회계처리에 대해 전 감사인과 현 감사인의 의견이 달라 전기 오류 수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전기 감사인과 당기 감사인의 의견이 갈릴 가능성이 커진 까닭은 올해부터 ‘회계개혁’의 일환으로 감사인 직권지정제 확대와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도입된 신외감법에 따라 감사인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며 당기 감사인이 기존 재무제표에 대해 깐깐한 잣대로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감사인 직권지정제는 감리 후 제재를 받은 기업이나 상장이 예정된 기업에 대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올해는 영업상황이 악화된 기업도 대상으로 추가됐다. 새롭게 시행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는 상장회사나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가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 선임할 경우, 이후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특히 감사인 지정 대상이 된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직권 지정 대상 회사는 635곳, 주기적 지정 대상으로 선정된 곳은 상장사 220곳이다. 시총 상위 100대 회사 가운데는 20곳이 주기적 지정 대상에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삼성생명, 미래에셋대우, 현대해상 등이다.
각 기업은 각자 상황이 다른 만큼 주총을 앞두고 그간 문제가 되지 않았던 회계 판단에 대해 회계기준원에 질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기준원은 특정 기업 회계에 대한 기준원의 판단이 전체 기업의 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기업의 자체적인 판단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제3자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 기업들의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회계기준원은 직접 판단하기보다 기업과 감사인의 판단에 맡기게 될 것”이라며 “한미 사례 이후 연결범위와 관련해 모든 기업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과도기를 겪고 나면 본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되고, 지금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