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18억에 낙찰받아 ‘최고가’…1950년대 이후 트로피는 공식적으로 ‘1달러’
2월 9일(현지시각) 할리우드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기생충’ 팀이 작품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사진=EPA/연합뉴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1926년 발족됐으며, 연기, 미술, 촬영, 감독, 녹음, 편집, 제작, 작가, 단편영화, 홍보, 집행위원회 등 모두 열두 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협회 회원은 감독, 배우, 작가, 제작자, 기술자 등 다섯 개 분야에서 모집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9년 처음 열렸다. 연예산업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시상식이며, 미국의 4대 연예대상인 에미상(TV방송상), 토니상(브로드웨이 연극상), 그래미상(음반상)은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떠 만들어졌다.
제1회 시상식은 비공개로 15분 동안 짧게 진행됐다. 배우, 감독을 비롯한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열렸으며, 모두 열다섯 명에게 트로피가 수여됐다. 최초의 최우수작품상은 무성영화인 ‘윙스’에게 돌아갔다. 당시 수상자 명단은 시상식이 열리기 3개월 전에 미리 언론에 배포됐으나, 제2회 때부터는 시상식 당일 밤 11시가 돼서야 언론에 전달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 규칙은 1940년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바뀌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에는 절대 수상자 명단을 발표해선 안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미리 발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1941년부터는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봉인된 봉투에 넣어 현장에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이런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아카데미상 역대 최다 수상작은 11개 부문을 수상한 ‘벤허(1959)’ ‘타이타닉(1997)’,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 세 편이다. 이 가운데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11개 부문 후보로 올라 전부 싹쓸이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오스카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인물은 총 26회를 수상한 월트 디즈니였다.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5회 수상했으며, 배우 가운데는 캐서린 헵번이 4회 수상하면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져갔다. 유일하게 수상을 거부한 배우는 1973년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말런 브랜도였다. 브랜도는 시상식에 자신을 대신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사친 리틀페더 공주를 보냈으며, 그로 하여금 수상을 거부하는 이유가 적힌 장문의 연설문을 낭독하도록 했다. 요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묘사하거나 다루는 방식에 항의한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상징은 ‘오스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황금빛 트로피다. 기사가 양손으로 십자군 칼을 쥐고 영화 필름 위에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때 영화 필름의 다섯 개 릴은 각각 배우, 작가, 감독, 제작자, 기술자를 상징한다. 그리고 십자군 칼은 영화산업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제작된 이 트로피의 높이는 34.3cm, 무게는 3.8kg이다. 청동(주석 92.5%, 구리 7.5%)으로 주조하고 그 위에 24k 금을 도금한 형태로, 제작비는 금시세에 따라 개당 400~900달러(약 48만~105만 원) 소요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금속이 부족해서 3년 동안 회반죽에 금색을 칠해서 제작하기도 했었다.
시상식에서 수여되는 50개의 트로피를 제작하는 데 드는 기간은 약 3개월 정도며, 각각의 트로피에는 수상자 이름, 수상 부문, 영화 제목, 그리고 수상년도 등이 새겨진 명판이 부착된다. 다만 트로피에 미리 부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상식 무대 위에서는 명판이 없는 미완성(?) 트로피가 수여되는데 이는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수상자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리 모든 후보의 명판을 만들어 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상자들은 과거에는 명판을 부착하기 위해서 시상식이 끝난 후 트로피를 아카데미에 다시 반납해야 했다. 그리고 명판이 부착된 완성된 트로피를 되돌려 받을 때까지 몇 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이런 번거로운 절차가 생략됐다. 시상식 직후 만찬이 열리는 ‘거버너스 볼’에서 즉시 명판을 부착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찬장에서 수상자들은 특별히 마련된 구역에서 트로피의 명판을 부착하며, 이날 사용되지 않은 명판들은 훗날 재활용된다.
그렇다면 ‘오스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941년 아카데미 회장을 지냈던 베티 데이비스는 자신의 전기에서 “나의 첫 남편인 하몬 오스카 넬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거릿 헤릭 아카데미 사무국장은 자신이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헤릭에 따르면 지난 1931년, 아카데미 도서관에 사서로 입사했던 당시 황금색 트로피를 보고 “어머! 오스카 삼촌을 닮았네요!”라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민머리의 트로피를 본 순간 대머리 삼촌이었던 오스카 피어스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오스카 트로피의 모델이 된 인물은 멕시코 출신의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며 감독이기도 했던 에밀리오 페르난데즈다.
오스카 트로피의 형상은 미술감독인 세드릭 기븐스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조각가인 조지 스탠리가 동상으로 제작했다. 트로피의 모델이 된 인물은 멕시코 출신의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며 감독이기도 했던 에밀리오 페르난데즈였다.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에 따르면, 당시 트로피를 디자인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델이 필요했던 기븐스에게 유명 멕시코 여배우였던 돌로레스 델 리오가 “완벽한 모델을 한 명 알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페르난데즈를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라고 하면 아마 상금일 것이다. 아카데미 수상자들은 과연 얼마의 상금을 받을까. 수상자들의 상금은 놀랍게도 ‘0원’이다. 한마디로 한푼도 받지 못한다. 시상식이 끝난 후 당장 오스카 트로피를 팔아버린다 해도 단돈 1달러밖에 받지 못한다.
하지만 수상의 가치는 결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할 터. 수상으로 얻게 되는 명예와 영광 등 무형적인 이득은 물론이요, 몸값도 껑충 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경우에는 출연료가 대폭 인상된다. 다만 이는 남자 배우들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조사에 따르면 오스카 수상 후 남자 배우들의 출연료는 81%가량 오르는 반면 여배우들의 경우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스카 트로피를 되팔 때 가격이 1달러인 이유는 아카데미 측이 명시한 엄격한 규정 때문이다. 1950년 트로피 판매금지 조항이 도입된 후부터 아카데미 수상자들(혹은 상속자들)은 임의로 트로피를 되팔지 않겠다는 조항이 명시된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야 트로피를 받을 수 있다. 서명을 거부할 경우에는 아카데미 측이 트로피를 보관한다.
그럼에도 혹시 트로피를 팔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경우 수상자는 먼저 아카데미 측에 트로피를 1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해야 한다. 이 ‘1달러 규정’은 사망 후 트로피를 물려받은 가족들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업계 전문가들은 1929년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지금까지 총 150개의 트로피가 암암리에 팔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규정이 도입된 1950년 이후의 트로피를 포함해서 이 가운데 절반은 암시장에서 거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금지 조항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일례로 2015년 ‘마이 갤 샐(1942)’로 뮤지컬 부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조셉 라이트의 조카가 트로피를 경매에 내놓았다가 아카데미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낙찰가는 7만 9200달러(약 8000만 원)였다. 이에 아카데미 측은 규정을 어겼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라이트 측은 수상년도가 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1942년이었다면서 위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국 분쟁 끝에 법원은 아카데미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라이트가 1951년까지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 소송 결과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오스카 트로피가 일반적인 ‘거래물품’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카데미 측의 바람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현 아카데미 최고경영자(CEO)인 도운 허드슨은 ‘할리우드 리포터’ 인터뷰에서 “트로피를 팔면 아카데미 트로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리고 이 소송 이후 아카데미 측은 트로피의 가격을 기존의 10달러에서 1달러로 내렸다.
아카데미 수상자들은 임의로 트로피를 되팔지 않겠다는 조항이 명시된 계약서에 서명한 후에야 트로피를 받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그렇다면 판매금지 조항이 도입되기 전에 시상된 트로피들의 경우에는 어떨까. 이런 트로피들이 경매에 나와 팔린 경우는 몇 차례 있었다. 사실 1950년 이전에 제작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크리스티 경매에서 팔린 1950년 이전의 오스카 트로피는 총 네 개였으며, 판매 금액은 총 150만 달러(약 17억 원)에 달했다. 2011년 한 경매에서는 ‘성조기의 행진(1942)’의 네이선 레빈슨이 수상한 최우수음향상 트로피가 8만 9625달러(약 1억 원)에 팔리기도 했었다.
오스카를 직접 판매한 배우로는 해럴드 러셀이 유일하다. 1946년 ‘우리 생애 최고의 해’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러셀은 1992년 뉴욕 경매에 트로피를 내놓았는데, 이유는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1950년 이전에 수상한 트로피였기 때문에 러셀이 이 상을 아카데미 측에 먼저 제공할 의무는 없었다. 이에 아카데미 측은 러셀에게 당시 2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4만 달러(약 4700만 원)를 제안했지만 러셀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러셀의 트로피는 한 개인 수집가에게 6만 500달러에 팔렸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11만 2000달러(약 1억 3000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당시 러셀은 “내 아내의 건강이야말로 감상적인 이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오스카는 없더라도 영화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시민 케인(1941)’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오손 웰스의 오스카 트로피도 경매 시장에 나왔다. 당시 낙찰가는 86만 1542달러(약 10억 원)였다. 경매를 진행했던 ‘네이트 D. 샌더스 옥션’은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마술사인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응찰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귀띔했다.
비록 웰스의 트로피는 집으로 가져가지 못했지만 카퍼필드는 오스카 트로피를 소장하고 있는 유명인 가운데 한 명이다. 2003년 카퍼필드는 경매에 나온 ‘카사블랑카(1943)’의 감독상 트로피를 23만 2000달러(약 2억 7000만 원)에 낙찰받았으며, 현재 이 트로피를 자신의 침실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역시 생전에 오스카 트로피를 구입해 소장하고 있었다.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40)’의 최우수작품상 트로피였다. 당시 잭슨이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받은 금액은 154만 달러(약 18억 원)였으며, 이는 오스카 트로피 가운데 역대 최고 금액이었다.
그런가 하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오스카 트로피를 구입한 후 다시 아카데미 측에 되돌려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클라크 게이블이 수상했던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4)’의 최우수남우주연상 트로피를 60만 7500달러(약 7억 원)에 사들인 후 아카데미 측에 반납했는가 하면, 2001년에는 베티 데이비스가 ‘제저벨(1938)’로 수상한 최우수여우주연상 트로피를 57만 8000달러(약 6억 8000만 원)에 낙찰받은 후 역시 아카데미 측에 돌려주었다.
오스카 트로피를 구입해서 아카데미 측에 반납한 다른 유명인사로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있다. 스페이시는 조지 스톨이 ‘닻을 올리고(1945)’로 수상한 음악상 트로피를 15만 5000달러(약 1억 8000만 원)에 사들인 후 아카데미에 돌려주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탈락자들 기분 풀어~ 아카데미의 통큰 선물 ‘스웨그백’ 후보에는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탈락자들에게는 위로 차원으로 ‘스웨그백(Swag Bag)’이라는 선물 가방이 제공된다. 다만 모든 분야의 후보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최우수 남녀주연상, 최우수 남녀조연상,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 오른 사람들에게만 전달된다. 매해 다르긴 하지만 보통 선물가방 안에는 해외여행 패키지, 고급 레스토랑 저녁식사권, 최신 스마트폰, 호텔 숙박권, 시계, 팔찌, 스파 이용권, 보드카, 피부 마사지 및 시술권(입술 필러 및 피부 박피 시술권 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24k 금으로 도금된 펜을 포함해 화장품 등 총 21만 5000달러(약 2억 5000만 원) 상당의 상품들로 구성된 가방이 제공됐다. 가령 세계 최초의 초호화 요트인 ‘시닉 이클립스’를 타고 12일간 떠나는 남극 여행권부터 스페인 등대 하우스 숙박권,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5성급 호텔 5박 숙박권까지 다양한 여행 상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멕시코 카보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인 ‘플로라스 필드 키친’에서의 무료 식사 2인권, 유명 인생코치인 제시카 맥그레거 존슨과의 전화통화권도 들어 있었다. 스킨케어와 스파 용품도 가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가고 싶은 스파로 선정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골든도어’ 스파 이용권과 2만 5000달러 (약 3000만 원) 상당의 미용시술 및 성형시술권(보톡스, 레이저 피부관리, 필링, 주사·필러 등), DNA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의약품 키트 등이 이에 해당된다. 뜻 깊고 의미 있는 선물도 제공됐다. 미국 및 아프가니스탄 군부대의 미망인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TAPS의 청금석 목걸이나 장애인 퇴역군인이 만든 목걸이 등이 그랬다. 다만 선물 가방을 받을 경우에는 미 국세청에 세금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몇몇 후보들은 아예 선물가방 수령을 거절하거나 혹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
‘두번 다시 실수는 없다’ 수상자 봉투 전달 회계사 에피소드 회계법인 PwC가 83년 동안 아카데미협회의 투표를 대리 진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올해 시상식에서 PwC 소속 회계사 세 명이 수상자 봉투 전달을 담당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 레드카펫 위에 서는 것은 비단 영화관계자들뿐만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임무를 맡은 회계법인 소속의 직원 세 명도 이들과 함께 레드카펫 위에 선다. 이들 손에는 각각 검정색 서류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다. 이 가방 안에 든 것은 수상자 이름이 적힌 봉투들이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회계법인이라, 언뜻 생각하면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등에는 수상자 및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회계법인이 따로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담당하는 회계법인은 런던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wC)’다. 부정 투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아카데미 측은 1935년부터 아카데미협회의 투표를 대리 진행하는 회계법인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선정된 업체인 PwC가 83년 동안 이 임무를 맡고 있다. PwC는 현재 수상자 명단 전달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투표수 집계, 수상결과 비밀 보장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시상식 당일 봉투 전달 임무를 맡은 PwC 소속 회계사들은 모두 세 명이다. 시상식 무대 위에서 봉투가 공개되기 전까지 수상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 명이 전부다. 심지어 수상자 이름이 적힌 카드를 인쇄할 때도 결과가 유출되지 않도록 인쇄소에는 모든 후보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다 인쇄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회계사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서류가방 외에는 수상자 명단이 적혀있는 그 어떤 종이나 물품을 소지하지 않고 참석하며,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분실 사태에 대비해 수상자 명단을 전부 암기하고 있다. 시상식 당일에는 수상자 이름이 적힌 봉투가 담긴 동일한 서류 가방을 들고 각각 LA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행사장에 도착한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교통 체증이나 사고에 대비해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동하는 경로도 각각 다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셋 중 한 명은 무사히 행사장에 도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행사장에 도착하면 두 명은 각각 무대 뒤편 양쪽에서 가방을 들고 서 있다가 시상자들이 무대로 나가기 바로 직전에 봉투를 건네준다. 이는 시상자들이 무대의 어느 방향에서 나가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제작자들과 함께 통제실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봉투 전달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이는 2017년에 발생했던 초유의 사태 때문에 강화된 규정이었다. 당시 최우수작품상의 봉투가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무대 위에서 원래 수상작이었던 ‘문라이트’ 대신 ‘라라랜드’가 잘못 호명되고 말았던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다가 멋쩍어졌던 ‘라라랜드’ 측이나, 영광스런 순간임에도 김이 빠졌던 ‘문라이트’ 측이나 기분이 상하긴 매한가지였다. 이는 당시 봉투를 전달했던 회계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당시 이 회계사는 옆구리에 봉투를 가득 끼고 있다가 시상자로 나섰던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최우수여우주연상이 적힌 카드(엠마 스톤-라라랜드)를 잘못 전달했고, 시상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카드에 적힌 그대로 호명하고 말았다. 무대 뒤에서 시상식 도중 트위터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비난을 면치 못했던 이 회계사는 결국 이듬해 제명당했다. 아카데미 측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PwC와 재계약을 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다만 PwC 측은 회계사를 세 명으로 늘리는 등 보다 엄격한 관리를 책임지는 새로운 조항이 담긴 계약서를 새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