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달 6월25일 신한은행과 합병을 앞둔 조흥은행의 신임 행장으로 외국계 은행 출신의 인물이 전격 발탁됐기 때문이다. 이는 관례를 깨는 일이었다.
조흥은행 출신도, 국내 다른 시중은행 출신도 아닌 국내 금융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혜성과 같이 나타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이번에 조흥은행장으로 선임된 최동수씨(57)였다.
최 행장은 2006년 신한-조흥은행이 합병할 때까지 조흥은행을 이끌어갈 과도기 수장으로 선출됐다. 최 행장의 선임을 두고 금융계에서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직무가 다른 행장들과 약간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커플 매니저’라고 부른다. 이는 신한과 조흥은행의 결혼날(합병)을 잡아둔 상태이기 때문에 조흥은행을 우량하게 만들어 신한에 시집보내야 하는 중책을 그가 짊어지게 됐다는 뜻이다.
과거 국민-주택의 합병과정에서 엿볼 수 있듯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은행의 ‘혼사’를 무난히 치르기까지 두 은행의 행장이 맡게 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 행장은 그가 중책을 맡았다는 점 외에도 또 다른 이유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그의 ‘독특한’ 이력이다. 최 행장이 조흥은행의 수장을 맡게 됐지만, 최 행장과 조흥은행의 인연은 30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지난 98년 외환위기 직후 조흥은행의 대주주가 정부로 바뀌는 시점에 조흥은행으로 영입돼 그동안 자금본부장을 맡아왔다. 물론 일각에서는 최 행장이 국내 금융계에서는 거의 ‘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조흥은행장으로 전격 발탁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 행장이 ‘조흥맨’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조흥 물이 덜 든’ 인물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3년 후 조흥은행과 통합해야하는 신한으로서는 ‘정통 조흥맨’이 버거웠을 것이라는 얘기. 실제로 이는 최 행장의 프로필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용산고-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최 행장은 지난 69년 미국계 은행인 체이스맨해튼은행에 들어가 무려 16년 동안이나 일했다. 이후 지난 85년에는 체이스맨해튼은행의 서울지점 부지점장이 됐고, 같은 해 호주의 최대은행인 웨스트팩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88년 이 은행의 서울지점장을 역임했다. 그의 직장 경력 중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계 은행에서 보낸 것.
이후 그는 94년 LG종합금융으로 자리를 옮겼고, LG의 폴란드 현지법인인 LG페트로은행장을 맡았다가 지난 98년에 조흥은행 상무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최 행장은 지난 99년 부행장으로 승진했고, 쌍용그룹 등 부실기업들의 여신처리와 자금운용, 구조조정 등 주로 자금부문을 담당했다.
이후 이번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앞두고 조흥은행 행장추천위원회로부터 단독 행장후보로 선정된 것이다. 신한지주측은 “선진 금융지식을 갖고 있는 최 전 부행장이 가장 적합한 행장후보라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그렇지만 신한지주측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필상으로만 보자면, 그가 합병을 앞둔 국내은행의 행장을 맡는다는 것이 다소 이례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까. 조흥은행 노조측은 최 행장이 행장후보로 선임된 직후 강력한 반대의사를 펼치며, 최 행장 출근 저지운동을 펼치기까지 했다.
노조측의 주장은 “조흥 출신이 아닌 외부 영입인사가 행장이 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 노조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최 행장은 지난달 초 행장후보로 단독 선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약 3주 동안을 은행에 출근하지 못한 채 ‘호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조흥은행 본점 인근의 호텔에 방을 잡고 은행 경영에 관련된 모든 보고를 받아야 했던 것. 그러나 그는 결국 지난달 25일 임시 주총에서 신임 행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특히 그는 선임 직후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내 목표는 돈 잘 버는 은행을 만드는 것”이라며 소신을 펴기도 했다. 그는 또 “신한이다, 조흥이다를 떠나서 돈 잘 버는 은행이 ‘적자’고, 못 버는 은행이 ‘서자’가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내세웠다. 국내 금융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최 행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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