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M&A 업계 진출했다 실패…고향 집에 칩거, 건강 악화로 지난해 10월 숨져
CCTV에 잡힌 유정환 전 대표의 엽기 질주 모습. 차량 3대를 들이받았으며, 바퀴가 빠진 상태로 500m를 더 달렸다.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 방송화면 캡처.
2015년 세상에 충격을 준 ‘벤틀리 엽기 질주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강남구 도산사거리 일대에서 최고급 외제차인 벤틀리가 도로를 휘젓고 다녔다. 차량 3대를 연달아 들이받아 그 가운데 한 대는 전복되기까지 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벤틀리 차량의 바퀴가 빠졌지만 그 상태로 500m가량을 더 달렸다. 차량이 멈춰 서자 운전자는 갓길에 세워져 있던 아반떼를 훔쳐 타고 다시 질주하다 금호터널 인근에서 BMW와 충돌한 뒤 겨우 멈췄다.
운전자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MW에 타고 있던 여성 운전자의 어깨를 폭행하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옷을 벗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이런 충격적인 장면은 CCTV에 담겼고 방송에 그대로 나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 질주의 장본인이 평소 정직한 기업을 표방하며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섰던 유정환 전 대표였기에 충격은 배가됐다. 주변 평판이 상당히 좋았던 그에게 씌어진 마약 의혹과 엽기 질주 사건은 알려진 그의 모습과 상당히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에 체포된 유 전 대표는 횡설수설했고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특히 벤틀리 질주 이후에 피해 여성을 때리고,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옷을 벗고 항의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 부분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는 엽기 질주 이유로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소변과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필로폰으로 불리는 매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왔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유 전 대표는 2015년 1월 직원들에게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졸피뎀을 구해 오라’고 지시한 뒤 이를 전달받아 투약했다고 알려졌다. 벤틀리 ‘분노의 질주’도 마약성 수면유도제 졸피뎀으로 인한 환각 상태에서 벌어진 셈이다. 결국 유 전 대표는 2015년 5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등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유 전 대표는 사고를 낸 직후 대표이사 직을 내려놓았다. 유 전 대표와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유 전 대표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발 빠르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교체한 건 아니고 일단 위기 모면 식이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감옥에서도 옥중 경영을 했다고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 전 대표는 감옥을 나온 뒤 몽드드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각 대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으로 그는 M&A(인수·합병) 업계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M&A 업계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 출신 A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물티슈 업계 1위였던 만큼 실탄은 충분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암초에 부딪혔다. 번번이 실패하면서 그 많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막판에는 유 전 대표가 직접 수천만 원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까지 됐다고 한다.
결국 유 전 대표는 모든 돈을 잃고 그가 자란 화성시 송산면으로 돌아갔다. 화성시 송산면은 그의 부모 집이 있는 곳이다. 유 전 대표가 돈을 많이 벌었을 당시 부모에게 마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2층 집과 비싼 개들을 선물했다고 한다. 유 전 대표는 이 집 2층에 폐인처럼 틀어박혔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찾아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9년 10월 유 전 대표가 사망했다. 벤틀리를 타고 강남을 질주했던 그는 삶의 마지막을 조용한 시골 마을 2층집에서 맞았다고 알려진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 악화였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유 전 대표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고 입을 모은다. 한 주변 인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으로 달려갔다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장례식은 화려했던 생전 명성과 달리 조용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유 전 대표의 오랜 친구는 “그는 죽기 2~3년 전부터 사람들의 신망을 많이 잃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아 모두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 전 대표의 화려했던 연예계 인맥들이 잠시나마 발걸음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논란이 됐던 사업가 B 씨도 장례식장을 찾았고, 국정농단 관련해 화제가 됐던 C 씨도 꽤 큰 금액의 조의금을 냈다고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