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충분”하다지만 매장엔 없어 공적 판매 두고 정부-현장 엇박자…헛걸음한 시민들 ‘발동동’
2월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마스크 문제와 관련해 언급한 발언들이다. 정부는 마스크 판매업자의 수출을 생산량의 10%로 제한하고 마스크 당일 생산량의 50% 이상을 우정사업본부와 농협중앙회 및 하나로마트, 공영홈쇼핑 및 중소기업유통센터 등 공적 판매처로 출고하기로 했다. 2월 27일 일요신문은 팩트체크에 나섰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창고형 할인매장 지하주차장에 늘어선 대기 줄. 매장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9시가 되기 전에 이미 대기인원이 500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구입하면 개당 1000여 원의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사진=제보자
40대 직장인 A 씨는 2월 27일 아침 일찍 자택 인근 창고형 할인매장을 찾았다.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훨씬 전부터 줄을 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일찍 집에서 나와 8시 40분 무렵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실 A 씨는 지난 23일에도 이곳을 방문했다. 오전 8시 55분에 도착해서 줄을 섰지만 그는 501번째였다. 매장 직원들이 계속 줄을 선 인원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바로 앞 사람이 500번째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501번째임을 확인했다. 다행히 매장 직원은 이날 640명까지 구입이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10여 분이 지난 뒤 대기자는 640명을 넘었고 매장 직원은 이제 줄을 서도 구입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그렇게 KF94 대형 마스크 3개입 포장 5개를 1만 6980원에 살 수 있었다. 낱개로는 15개이니 개당 1132원이다. 온라인에서 4000~5000원에 거래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확실히 저렴한 구입이었다.
27일 아침 다시 창고형 할인매장을 찾은 A 씨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정부가 이날부터 공적 판매를 하기로 한 만큼 시민들이 마트보다 약국 등 공적 판매처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게다가 일요일인 23일과 달리 27일은 평일이다.
실제 그 많던 대기 줄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만 직원의 설명은 절망이었다. 벌써 다 팔렸다는 것. 매장 직원은 “8시에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번호표 받은 분들만 오픈한 뒤에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9시는커녕 이미 8시에 상황이 종료된 것이니 7시 무렵에 왔어야 안정권이라는 의미다. 25일에는 아예 마스크가 입점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날 7시에 방문했다면 헛걸음이었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2월 27일부터 마스크 당일 생산량의 50% 이상을 공적 판매처로 출고하다 보니 창고형 할인매장이나 대형마트 입점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일 수 있다. 2월 26일 오전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브리핑을 통해 “내일부터는 일반 소비자 구매를 위해 약국을 통해 150만 장, 우체국·농협 등을 통해 200만 장 등 총 350만 장을 매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다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스크 수급 안정 추가조치 태스크포스(TF) 회의’를 마친 뒤 “공적 판매처 출고분 가운데 240만 장은 전국 2만 4000여 곳의 약국에 100장씩 공급하며, 110만 장은 읍면지역 우체국 1400곳과 서울·경기 외 지역 농협 1900곳에 우선 공급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잔여분은 추후 공영홈쇼핑 등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며 1인당 구입 가능 수량은 5매로 제한된다. 가격은 생산원가와 배송비를 합쳐 합리적인 수준으로 권고한다고 밝혔다. 마스크 판매는 이르면 27일, 늦어도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2월 27일 오후 일요신문은 사회팀 기자를 전원 투입, 서울 곳곳의 약국을 찾았지만 아무도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했다. 어느 약국에선 “정부 말 믿지 마세요. 3월 돼야 들어올 거예요. 수십 군데 주문 넣어도 안 줘요. 정부는 말만 하고 안 줘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약국에선 “안 그래도 정부에 따지고 싶을 만큼 화가 나요. 계속 마스크 찾는 분들이 몰려오는데 언제 어떻게 준다는지 아무런 공지도 없어요. 빨라야 3월 5일은 지나야 마스크가 들어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우체국과 농협도 비슷하다. 3월 2일부터 판매한다고 밝힌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우체국과 농협은 정확한 일시도 밝히지 못한 채 3월 초는 돼야 공적 판매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청와대와 정부와 현장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동안 시민들은 희망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어렵게 찾은 마스크를 파는 약국. 외부에 ‘한정 수량 입고 KF94 마스크’라고 적혀 있고 정말 물량이 있었다. 다만 5개 한 묶음에 2만 원, 개당 4000원이었다. 사진=신민섭 기자
어렵게 마스크를 파는 약국을 찾았다. ‘한정 수량 입고 KF94 마스크’라는 반가운 문구가 프린트 된 A4용지가 약국 유리벽에 붙어 있었다. 정말 있었다. 그런데 5개 한 묶음에 2만 원이다. 개당 4000원. 약국 점원은 “공적 판매분이 아닌 제가 어렵게 구한 것으로 온라인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다”며 코팅된 종이를 하나 보여줬다. 같은 마스크를 파는 온라인 쇼핑몰 사진으로 거기에선 가격이 2만 5000원을 넘었다. 개당 5000원 이상이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공급 물량은 충분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개당 4000~5000원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벽부터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줄을 서면 개당 1132원도 가능하다. 코로나19 대란 이전에는 개당 700∼800원 수준이었다. 충분한 물량을 적정가에 팔아야 한다.
“약국 등에 가면 언제든지 마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도 맞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 말을 믿었다가 속았다는 반응이다. 이르면 27일, 늦어도 28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판매가 이뤄진다는 정부 약속과 달리 현장에선 3월 초에야 판매가 가능하다고 항변한다.
2월 27일 마스크 구하기 대작전의 결론은 “마스크가 국민 개개인 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다. 아무 소용없는 취재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