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블랙위도우·원더우먼 격돌 가능성…벌써 50여편 개봉 연기, 여름 성수기까지 영향 미칠 듯
사실 극장가에서 3, 4월은 비교적 비수기지만 ‘기생충’의 아카데미 돌풍이 한국 영화와 한국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지던 시점에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밀폐된 공간에 밀집된 객석을 갖춘 극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중의 발길이 가장 급감한 장소 가운데 하나다. 결국 개봉 예정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했다. 3, 4월 개봉 예정작 가운데 벌써 50여 편이 개봉을 연기했으며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생충’ 흑백판을 비롯해 ‘사냥의 시간’ ‘결백’ ‘후쿠오카’ ‘뮬란’ ‘주디’ 등 3, 4월 개봉 예정 영화 가운데 벌써 50여 편이 개봉을 연기했다. 사진=‘결백’ 홍보 스틸 컷
아카데미의 기세를 탄 재관람 열풍에 맞춰 준비된 ‘기생충’ 흑백판을 비롯해 ‘사냥의 시간’ ‘결백’ ‘후쿠오카’ ‘뮬란’ ‘주디’ 등이 대표적인 개봉 연기 영화들이다. 할리우드 영화들도 대거 개봉을 연기하고 있다. 4월 개봉 예정이던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아예 개봉을 11월 25일로 여유 있게 연기했다. 이 영화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출연하는 마지막 007 시리즈이기도 하다.
상반기 최대 기대작 가운데 하나인 마블의 ‘블랙 위도우’는 5월 1일 북미 개봉 예정이고, 유니버셜의 기대작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도 5월 22일 개봉 예정이다. 아직 이 두 대작은 개봉 연기 계획이 없다. 다만 변수는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미국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한 데다 마블 시리즈를 좋아하는 한국과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열광하는 중국이 모두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 입장에선 개봉을 연기한 ‘뮬란’과 자회사인 마블의 ‘블랙 위도우’의 개봉 시점이 맞물리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6월 5일에는 DC의 ‘원더우먼 1984’가 개봉한다.
이처럼 애초 계획은 3월 말 ‘뮬란’, 5월 초 ‘블랙 위도우’ 그리고 6월 초 ‘원더우먼 1984’가 순차적으로 개봉해 한국 영화들과 봄 극장가에서 격돌할 예정이었다. 2019년 봄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로 시작해 ‘알라딘’으로 이어진 할리우드, 아니 디즈니 영화 앞에서 한국 영화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뮬란’이 개봉을 연기하면서 ‘블랙 위도우’와 ‘원더우먼 1984’의 개봉 일정도 사실상 안개에 싸여 버렸다. 물론 4월에는 마음 편히 극장에 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이 안정을 되찾을지라도 미국 등 해외에선 코로나19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영화계에선 5, 6월 극장가에 할리우드의 세 여성 히어로가 거의 동시에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대작들을 피하려 개봉 일정을 조정하다보면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것.
유아인 유재명이 출연하는 ‘소리도 없이’는 칸 국제 영화제 출품을 노리고 있어 5월 개봉이 유력하지만, 지금은 5월에 칸 국제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열릴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사진=‘소리도 없이’ 홍보 스틸 컷
이렇게 되면 5, 6월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들의 개봉 일정도 복잡해진다. 5월 개봉 예정작인 ‘정상회담’은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과 정우성 곽도원이 다시 의기투합한 영화다. 그만큼 기대치도 높지만 개봉 일정은 아직 불확실하다. 유아인 유재명이 출연하는 ‘소리도 없이’는 칸 국제 영화제 출품을 노리고 있어 5월 개봉이 유력하지만, 지금은 5월에 칸 국제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열릴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위협이 현실이 되고 장기화할 경우다. 이렇게 되면 모두 20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 한국 영화들의 개봉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상호 감독이 강동원과 손을 잡고 만든 ‘반도’는 ‘부산행’ 4년 뒤를 그린 영화로 많은 영화팬들이 기다려왔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역시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등 탄탄한 출연진을 갖추고 있다. 공유 박보검 조우진의 ‘서복’,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의 ‘승리호’ 등이 올여름 개봉 예정인 대작 한국 영화들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처럼 아예 11월 정도로 여유있게 개봉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차라리 속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다. 하반기에는 하반기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기대작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11월 6일 개봉 예정인 마블의 ‘이터널스’가 결정적이다. 드디어 앤젤리나 졸리가 마블 시리즈에 합류하게 돼 화제가 된 ‘이터널스’지만 국내에선 마동석 출연 영화로 더 유명하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