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대사+디테일 통해 선정성 배가시켜…임상수 ‘하녀’ 박찬욱 ‘아가씨’ 등과 일맥상통
‘기생충’은 15세 관람가로 기내 상영이 무난한 등급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영화 속 ‘단 한 번의, 그것도 짧은’ 정사신만큼은 15세 관람가가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2019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영상물등급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지적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작품성 있는 영화지만 관람 등급이 15세 이상인 게 적절한지 논란도 일고 있다”고 말했다.
별다른 노출 없이 선정적인 장면이 된 까닭은 그 장면을 매우 디테일하게 담아 낸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여기에 ‘시계방향’ 등 소파신에 등장한 몇몇 대사가 선정성을 급상승 시켰다. 사진=영화 ‘기생충’ 홍보 스틸 컷
2019년 10월 유튜브 채널 썸타임즈는 ‘기자 본격 취중토크 낮술 어떡하니 부산편 1탄’을 통해 ‘기생충’의 베드신 관련 내용을 다뤘다. 이날 방송에서도 한 기자는 “배우 조여정이 다른 영화에서 노출 수위가 높은 영화를 몇 차례 촬영했지만, 어쩌면 ‘기생충’ 속 정사신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매우 짧은 정사신으로 노출도 전무하다. 게다가 베드도 아닌 거실 소파에서 이뤄진 ‘소파신’이다. 날씨 때문에 캠핑이 무산돼 집으로 돌아와 거실 소파에 누운 부부가 짧게 육체적인 접촉을 하는 정도다.
그런데 매우 선정적이다. 이 한 장면 때문에 ‘영화 등급을 15금에서 25금으로 올려야 한다’는 댓글이 공감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을 정도다. 노출이 전혀 없는 이 장면이 선정적인 까닭은 매우 디테일하게 살아난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여기에 ‘시계방향’ 등 소파신에 등장한 몇몇 대사가 선정성을 급상승시켰다. 이처럼 ‘봉테일’의 저력은 그 짧은 정사신에서도 그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것.
사실 봉준호 감독은 정사신과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다. 2009년작 ‘마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선정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이 외의 영화는 대부분 12세 내지는 15세 관람가였다. 봉 감독은 영화비평잡지 FILO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충’ 소파신에 대해 “야한 영화를 보는 쾌감 같은 게 느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오직 이 장면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압박감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본래 의도”라고 설명했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생충’ 소파신과 가장 유사한 정사신으로 언급되는 장면은 바로 영화 ‘하녀’ 속 전도연과 이정재의 베드신이다. 역시 노출 수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두 배우의 움직임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다. 대사 역시 이정재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대사라 (베드신 촬영) 당일 아침에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이처럼 노출 수위보다는 디테일을 살리며 파격적인 대사를 활용한 ‘하녀’의 정사신이 ‘기생충’의 정사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영화 ‘하녀’ 속 전도연과 이정재의 베드신이 ‘기생충’의 정사신과 가장 유사하다고 언급되고 있다. 노출 수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두 배우의 움직임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다. 사진=영화 ‘하녀’ 홍보 스틸 컷
‘하녀’가 개봉할 당시 임상수 감독은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최고의 베드신을 찍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봉준호 감독과 달리 임상수 감독은 베드신을 적절히 잘 활용해온 편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 등의 영화에서 파격적인 베드신도 여럿 선보인 바 있다. 그럼에도 가장 노출 수위가 낮았던 ‘하녀’에서의 베드신을 스스로 최고라고 손꼽고 영화 팬들도 이에 동감하는 까닭 역시 ‘디테일’이다.
최근 몇 년 새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김민희의 출연이 확정된 상황에서 상대 배역을 신인 배우로 결정한 제작진은 오디션을 통해 김태리를 캐스팅했다. 그는 무려 1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당시 오디션 공고에 ‘노출 수위: 최고 수위,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능’이라는 표현이 추가돼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파격적이고 격렬하던 박찬욱 감독의 정사신은 ‘아가씨’를 통해 달라진다. 디테일을 강조하고 대사를 통해 선정성을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하녀’ ‘기생충’과 일맥상통한다. 사진=영화 ‘아가씨’ 홍보 스틸 컷
실제 ‘아가씨’는 상당 수위의 노출 연기가 이어졌으며 동성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은 이미 ‘박쥐’를 통해 파격적인 노출이 가미된 정사신을 선보인 바 있다.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도 적절히 정사신을 활용해왔다. 박찬욱 감독의 정사신은 ‘파격’과 ‘격렬’ 등의 단어가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올드보이’에서는 충격적인 ‘부녀 정사신’과 ‘남매 정사신’이 등장하고 ‘박쥐’에서는 송강호의 성기 노출까지 이뤄진다.
다만 ‘아가씨’는 조금 달랐다. 동성 베드신이라는 소재 자체는 파격적이지만 정사신 자체는 상당히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격렬하고 파격적인 베드신 대신 두 여배우의 감정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동선이 돋보였다. 또한 베드신에서 두 여배우가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선정성을 배가시킨 부분도 ‘하녀’ ‘기생충’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한국 영화 거장 감독들이 정사신을 다루는 일종의 흐름이 이렇게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