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컨테이젼’ 등 신흥종교·바이러스 다룬 작품 온라인상영관 차트 재진입 ‘현실인 듯 아닌 듯’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국내로도 빠르게 확산된 2월 중순 이후 관련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다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국내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종교단체 신천지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신흥종교나 왜곡된 믿음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에 관심이 증폭됐다. 꼭 신천지를 모티프 삼은 작품들은 아니지만, 비뚤어진 교리와 맹목적인 믿음에 주목한 몇몇 작품은 ‘현실인 듯 아닌 듯’ 착각을 일으키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개봉 당시 239만 관객을 동원한 ‘사바하’는 완성도 높은 오컬트 영화로 주목받았다. 감독의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만든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뜻밖에 개봉 전부터 신천지로부터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정재 주연 ‘사바하’ 개봉 전 신천지로부터 항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소환되는 영화들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이정재와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 ‘사바하’다. 지난해 2월 개봉한 이 영화는 영생을 믿으면서 자신을 ‘불사의 존재’라고 설파하는 교주가 1980년대 강원도 일대에 세운 사슴동산이라는 신흥종교 이야기를 다룬다. 이정재가 맡은 박 목사는 신흥종교의 비리를 찾아내 고발하는 종교문제연구소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박 목사는 사슴동산을 추적하다가 수년간 반복해 일어난 살인 사건을 알아내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벌어진 미스터리와 마주한다.
개봉 당시 239만 관객을 동원한 ‘사바하’는 완성도 높은 오컬트(초자연적인 현상) 영화로 주목받았다. 2015년 김윤석·강동원 주연의 영화 ‘검은 사제들’을 통해 악에 맞선 가톨릭 사제의 이야기를 그린 장재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의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만든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뜻밖에 개봉 전부터 신천지로부터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 신천지는 예고편으로 공개된 박 목사의 대사에 주목했다. 이정재가 영화 도입부 대학 강의 장면에서 국내 이단 종교에 대해 설명하는 부문을 두고 ‘신천지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작진에 전달했다. 이에 제작사는 “특정 종교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신천지에) 전달했다”며 “하지만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이정재의 대사 부분은 다시 녹음해 수정했다”고 밝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정재도 당시 “영화는 특정 종교와 무관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제작진은 특정 종교와의 연관성이 없다고 못 박았지만 그와 별개로 최근 신천지의 실체가 속속 드러날수록 ‘사바하’를 향한 관심은 상승하고 있다. 맹목적인 믿음이 불러오는 파국을 다룬 이야기가 일정 부분 신천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다. 관심을 반영하듯 2월부터 포털사이트 ‘사바하’의 게시판 등에는 영화를 다시 보거나 새롭게 접한 누리꾼들이 신흥종교를 비판하거나 신천지와 비교하는 생생한 리뷰를 쏟아내고 있다. 사슴동산이라는 신흥종교의 교주가 영생을 믿고, 열성적인 젊은 신도들이 보이는 왜곡된 믿음의 면면이 묘한 기시감을 안긴다는 반응도 나온다.
OCN 드라마 ‘구해줘’의 원작은 영화 ‘부산행’의 연출가인 연상호 감독이 2013년 내놓은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다. 폐쇄적인 마을에 왜곡된 믿음이 퍼지면서 맞는 파국을 그리고 있다. 사진=NEW
#‘사이비’ ‘구해줘’ 미스터리 종교 ‘상상 아닌 현실’
사실 ‘사바하’뿐 아니라 신천지가 코로나19 사태로 이슈의 중심이 되면서 비뚤어진 종교적 믿음을 다룬 작품들이 잇따라 관심 대상에 올랐다. 2017년 시즌1에 이어 지난해 시즌2를 방송한 OCN 드라마 ‘구해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한적한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꾀어내는 사이비 교주, 그에게 현혹된 이들의 이야기다. 미스터리한 교리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인들의 집단 활동이 더는 영화에서 봐 온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이들 작품은 주목받고 있다.
‘구해줘’ 시즌2의 원작은 영화 ‘부산행’의 연출가인 연상호 감독이 2013년 내놓은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다. 폐쇄적인 마을에 왜곡된 믿음이 퍼지면서 맞는 파국을 그리고 있다. 종교를 전면에 다루지만 사실 종교 그 자체보다 인간이 품은 ‘믿음’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호평 받았다. 개봉 당시 연상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살면서 겪는 다양한 가치와 신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세상이 참과 거짓이라는 단순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하다”면서 “누군가에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납득되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신천지 이슈가 불거지면서 2009년 개봉한 남상미 주연의 ‘불신지옥’, 2013년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마스터’ 등의 작품까지 다시 찾아내 다양한 평을 내놓고 있다. 종교 혹은 신흥종교의 교주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2011년 개봉한 ‘컨테이젼’은 이제 ‘코로나 영화’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하다. 사진=영화 ‘컨테이젼’ 홍보 스틸 컷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이 벌어질 때 이를 먼저 다룬 영화들에 대중의 호기심이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종교 관련 영화들에 앞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먼저 주목받은 바이러스 관련 영화들도 있다. 특히 2011년 개봉한 ‘컨테이젼’은 홍콩 출장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집으로 돌아온 미국인이 돌연 사망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는 이야기다. 이제는 ‘코로나 영화’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컨테이젼’은 바이러스 재난에 맞선 이들의 분투를 그리는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SNS에 퍼트려 돌연 ‘가짜뉴스’로 대표되는 음모론이 더 큰 혼란을 만드는 과정까지 그렸다. 제작진은 사스와 신종플루 사태를 참고하면서도 재난을 대하는 미디어의 모습까지 비판해 현실감을 안긴다. 신종 바이러스로 서울의 인근 도시 분당이 초토화되는 장혁·수애 주연의 영화 ‘감기’(2013년)도 빼놓을 수 없다. 1월 말 IPTV 차트에 재진입한 두 영화는 한 달이 넘도록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하는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의 가장 최근 주간차트(2월 24일부터 3월1일) 순위에서 각각 5위와 12위에 올랐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